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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Aug 22. 2024

우정에 금이 가다 - 1

 12월 14일 (금)


 오후에 상담 예약한 손님이 왔다. 한 중년 남자를 뒤따라 사내가 들어왔다. 남자는 서글서글한 인상이나 사내는 험상궂었다. 두 사람은 일행이었다.

“어제 전화한 조석기입니다. 이 친구는 저와 함께 일할 사람이고요.”

“김두성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내는 생김새와 다르게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목례를 했다. 그의 손등에 파란 십자가 문신이 선명하게 보였다. 현우는 이 사내의 몸에 도배된 온갖 짐승을 상상하고는 움찔했다.

 “3천만 원이 필요한데 저 혼자로 안 되면 이 친구도 대출을 받았으면 해서 같이 왔지요.”

 현우는 대출 방법을 설명하였다. 두 사람은 연신 “예”라는 대답을 하고는 활기차게 나갔다.

 “이 친구의 통장까지 만드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그런데 대출을 받아서 뭐 하시게요?”

 동수가 경계의 눈빛으로 물었다. 사내 손의 문신을 보고서 아마 유흥비나 도박 자금 등의 용도로 짐작해서 물은 것 같았다. 아니면 동지애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사실 동수도 어깻죽지에 하트 모양의 문신이 있다. 쭈뼛쭈뼛하던 조석기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얼마 전 교도소에서 8.15 특사 가석방으로 나온 전과자예요. 저는 10여 년을 그곳에 있었고 이 친구도 비슷한 시간을 보냈지요.”

 그는 자신의 흑역사를 회상하는 것이 괴로운지 깊은 한숨을 토했다.

 “전에 저는 인테리어 사업을 했었는데 큰 부도를 맞았지요. 돈을 받지 못한 인부들이 집으로 몰려와 행패를 부렸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어요.

 그 와중에 사람을 죽이는 죄를 범해 12년을 선고받았지요. 처음에는 교도소에서 자살을 시도하며 죽으려 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도움인지 두어 번 실패했다가 신앙을 접하게 되었죠. 그리고 이 못난 아빠를 기다리는 딸들로 다시 마음을 잡았답니다.”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끈 그의 눈가에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그런 후 성실하게 재소 생활을 하며 건축 관련 자격증을 8개나 땄다고 했다.

 “그 결과 모범수로 인정받아 가석방 혜택을 받았어요. 이 친구도 마찬가지고요. 근데 돈 한 푼 없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하더군요.”

 그래서 출소 전 취업 전담반에서 소개받은 일자리센터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인테리어 사무실을 준비하면 센터에 가입한 기업의 일감을 주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출을 받아서 사무실과 인테리어 작업에 필요한 컴퓨터와 장비를 갖추려고 해요. 이것만 해결되면 센터의 일거리로 자립할 수 있거든요. 이 친구와 저는 고생이 되더라도 경비를 아끼기 위해 사무실에서 숙식하며 생활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부지런히 하다 보면 분명 희망이 생길 거라고 자신합니다.”

 그는 앞으로 일할 생각을 하니 암울한 먼 길을 돌아 긴 꿈에서 깬 것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기를 일으켜 세운 가장 큰 힘은 그새 훌쩍 커 버린 큰딸과 중학생인 작은딸의 응원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곧 함께 살자며 굳게 손가락을 걸었다고 했다.

 “한 번은 어릴 때 헤어진 막내가 ‘사실 나는 아빠가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이제는 정말 좋아’라는 말에 가슴이 무너졌지요. 지금은 딸들을 만나는 주말이 기다려지고 '힘내 아빠!' 전화 한 통에 용기가 솟습니다.”

 그는 붉은 눈시울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또 자기들의 기술로 집 고치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숙자 아저씨는 아동시설이나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재생 자전거를 나눠주는 재활용 활동을 한다. 이들은 집 고치기 봉사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도움을 받을 형편 중에도 오히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고통받았던 자들만의 동병상련인가!

 그때 현우 안주머니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이 작업을 하면서 그가 받은 전화는 거의 명함에 적힌 대포폰이다. 대포폰은 보통 책상 위에 놓였고 안주머니에는 실명폰이 있다. 현우는 지인과의 통화는 사무실에서 나와 복도나 옥상에서 했다. 

 전화한 사람은 누나였다. 이 부근을 지나다 연락했다며 잠깐 밖에서 볼 수 있냐고 했다. 그는 누나가 일부러 온 것을 안다. 며칠 전부터 밑반찬을 만들어 놓았다며 몇 번이나 갖고 가라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어서다. 사무실 위치를 숨기려 거리가 좀 있는 장소로 잡았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동수야, 누나가 이 근방에 왔다고 하네. 갔다 올 테니 상담 전화 부탁해.”

 동인이는 볼일이 있다며 한참 전에 사무실을 나갔다. 현우는 반가운 마음에 누나가 기다리는 커피숍으로 내달렸다.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니?”

 누나는 안쓰러운 눈길로 반찬통이 가득한 쇼핑백을 건넸다. 현우는 몰라보게 수척한 몸에 푸석푸석한 누나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밑반찬이야. 냉장고에 두고 먹어. 떨어지면 빨리 말하고.”

 “누나 소원이 반찬 가게를 하는 거라고 했지?”

 “뜬금없이 웬 반찬 가게?”

 누나의 음식 솜씨는 일품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맛이다.

 “아마도 반찬 가게를 열면 누나의 손맛으로 대박이 날 거야. 그건 내가 100% 장담해!”

 “말이라도 기분은 좋다.”

 “가게를 내려면 얼마나 들어?”

 “가게 얻고 쇼케이스 등을 설치하려면 몇천만 원은 필요할걸. 근데 왜?”

 “내가 하나 차려 주려고.”

 “네가 돈이 어디 있어서?”

 “엊그제 꿈을 꿨는데 로또 맞을 계시를 받았지.”

 “그래? 당첨되면 좋겠네. 그 돈으로 우리 현우 얼른 장가가고.”

 그는 어려운 자신보다 동생을 먼저 배려하는 누나의 마음에 울컥했다.

 “회사 일은 할 만하니? 힘들지는 않고?”

 “아니, 적성에도 맞고 동료들도 좋아서 만족해.”

 얼마 전에 현우는 중소기업 관리직으로 취직했다고 둘러댔었다. 

 

 엄마의 마트가 복 사장에게 빼앗기자 생계가 어렵게 되었다.

 누나는 가장의 책임감으로 대학을 중퇴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아픈 엄마를 돌보며 현우의 뒷바라지를 했다. 그런 누나의 헌신에 현우는 부응하지 못했다. 

 초·중학교 때는 상위권이었지만 아버지가 작고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공부에 흥미를 잃어 서클 활동에 몰입하였다. 그럼에도 소싯적 학업 성적만 믿고 명문대를 꿈꿨으나 원하던 대학에 고배를 마셨다. 

 그는 아들로서 기울어진 가세에 도움이 되고자 취직을 하려 했다. 그런데 누나가 반대하며 재수를 권했다. 초기에는 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다. 

 어느 날 친구의 손에 이끌려 당구장에 간 것이 화근이었다. 오묘한 당구 세계가 공부보다 훨씬 재밌었다. 잠들 때면 사각의 천장이 당구 다이로 보일 정도로 흠뻑 빠져들었다. 게다가 어설픈 실력으로 쓰리쿠션 내기 당구까지 쳤다. 용돈이 바닥난 그는 온갖 핑계와 거짓말로 누나에게 돈을 타냈다. 아직도 그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수능 총점에서 당구 점수를 뺀 수능 점수가 나왔다. 당구 덕분인지 수학의 삼각함수 문제만은 다 맞혔다는 것이 고작 위안이었다. 

 겨우 수도권 대학에 턱걸이로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변변찮은 직장마저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그에게 누나는 잔소리나 원망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더욱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그 중요한 시기에 왜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까!’

 누나는 혼수품도 거의 없이 결혼하였다. 심성이 착한 매형은 모든 사정을 이해해 주었다. 그녀는 맞벌이를 하며 능력 없는 현우를 대신해 엄마를 보살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매형에게 황달 증세와 체중 감소가 보이더니 어느 날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의사는 췌장암 말기라는 청천벽력의 진단을 내렸다. 전셋집을 빼서 몇 차례 대수술에도 불구하고 매형은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지금 그녀는 단칸방에서 남매를 키우며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다. 오늘 그는 엄마 이야기를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것은 누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현우는 이 기회에 그동안의 실망과 죄책감을 만회하려 벼르고 있었다.

 “시간 나면 집에 들르렴. 애들이 삼촌 보고 싶다며 난리야.”

 “며칠 후에 선물을 왕창 사서 갈게.”

 “선물은 무슨….”

 “아냐. 이제부터 삼촌 노릇을 제대로 할 거야. 두고 봐!”

 그의 허풍에 누나는 배시시 웃었다. 

 현우는 멀어지는 누나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불쌍한 우리 누나….’

 복받치는 아픔을 간신히 삼켰다. 

 "누나, 열흘만 기다려. 곧 내가 엄마를 모시고 누나에게 반찬 가게도, 집도 사 줄게. 앞으로는 장밋빛 꽃길만펼쳐질 거야."

 그는 수십 번, 수백 번을 외치고 또 외쳤다.

 

 사무실로 들어가려던 현우는 화장실에 들렀다 가려고 문을 지나쳤다. 그때 살짝 열린 문 사이로 소곤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귀를 문에 바짝 붙여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기 시작했다.

 “동인아, 이번 작업 끝나면 현수에게 얼마나 줄 생각이야? 만약 계획대로 40억을 손에 쥔다면 10억 정도는 줘야겠지?”

 현우의 온 신경이 동인의 대답에 쏠렸다.

 그러고 보니 이 작업에 합류한 이후로 배당에 관해 논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현우로서는 슈킹 금액이 얼마인지도 몰랐을뿐더러 먼저 묻기가 어색했다. 그래서 무척 궁금했지만 이때까지 참았다.

 “현수 형이 고생한 건 평생 직장생활을 안 해도 될 만큼 충분히 보상할게요.”

 동인은 이렇게 약속했었다.

 “작업 끝나고 바지 수당과 경비 제하고 셋이서 나누었는데….”

 동수가 들려준 말이다. 이걸로 유추했을 때, 당연히 상식선에서 배당할 거라는 기대를 가졌다. 물론 이 상식선이란 것이 주관적이라 애매모호하지만.

 “형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동인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저번에 영민이 놈 하는 거 못 봤어? 작업 후 배당받고는 바로 잠수 탔잖아. 남은 잘해 줘 봐야 다 소용없다고! 우리도 현수 형이 필요해서 쓴 거고 그 형도 돈이 탐나서 동참한 거니까 일한 만큼만 주면 돼.”

 “그럼 얼마 줄려고?”

 “40억이라면 4억. 반이면 2억.”

 차디찬 두 마디가 떨어졌다.

 “너무 작지 않겠어? 가만있지 않을 텐데.”

 “무슨 말이야? 이 일에 가장 중요한 작업비를 내가 다 대고 있어. 또 모든 설계와 작전을 누가 짜는데? 현수 형에게는 그 돈도 엄청 큰 거야. 월급쟁이로는 평생 만져 보지도 못할 돈을 버는 거니까. 솔직히 우리에게 고마워해야지. 글구 가만 안 있으면 어떡할 건데? 어차피 한 배를 탔는데 나발 불어서 자기 무덤을 팔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야? 배당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형은 입이나 조심해. 알았지?”

 끄덕이는 동수의 머리가 문틈으로 반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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