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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공 Nov 20. 2022

49재

삶과 죽음의 사이

영가의 49재 마지막 날이었다.

 은사 스님의 영가 축원 및 영가 천도재 등을 거행하는데, 스님은 온데간데없고 부처님의 거룩한 음성과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지장보살님도 오셨다. 장내는 거룩하고 장엄하고 찬란하기까지 했다.

영가의 가족, 그러니 부모님 및 남동생에 대한 위로와 애통한 마음을 어쩌면 저렇게 절절히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자신이 그 영가의 가족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스님의 눈물은 오히려 죽음에 대한 슬픔이 아닌 환희와 기쁨의 눈물이었다.

바라춤과 합창단까지 축제는 거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순간, 죽음에 대한 인식 변화가 왔다.

죽음은 결코 슬픈 것만은 아니었다.

누가 죽음에 대하여 저렇게 성대한 축복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사람이 태어날 때, 누가 저렇게 성대하고 기쁘게 축하해줬을까 싶었다.

태어나거나 죽는 것도 어떻게 보면 순간이고 선택이다.

한마디로 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태어나는 것도 부모를 잘 만나고, 때를 잘 맞추어 태어나야 잘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죽는 것도 태어나는 것 이상으로, 오늘처럼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오늘 49재 천도재는 거룩한 죽음 의식이었다.

멋지고 아름다운 축제였다.

그리고 그 영가는 정말 행복하게 왕생극락했을 것이다.

스님의 축원에는 그렇게 불렸다.

그런데 스님의 축원은 혼자서 축복으로 될 수는 없었다.

그건 마치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 나듯이, 장내의 모든 불자가 같이 부처님을 부르고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

다시 말하면 가락이나, 시조를 읊을 때는 혼자 하면 구슬프지만, 함께하면 장단과 흥이 난다.

리드미컬하게 묘한 울림의 소리로 변화시키며 흥겹게 진행되었다.

짝이 있고, 신도들이 함께하고, 합창단이 있어 더욱 조직의 힘이 돋보인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도 제자들을 모아놓고 설법을 하실 떼도 선문답을 하셨다.

먼저, 제자들에게 묻고 거기에 법을 설하신다.

즉 깨달음의 원리다.

그것이 오늘날 법회에 법문을 하게 되기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스님! 성지 사찰 순례는 잘 다녀오셨습니까?"

정공은 스님 방에 들어가, 큰절을 하며 안부를 물었다.

"예, 거사님 덕분에 잘 다녀왔어요."

"스님! 파키스탄에 물난리가 나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하던데 그 지역은 어땠나요?"

"소승이 간 지역은 중부지역이라 괜찮았어요. 남부지방이 난리 나서...."

"지구가 탈이 났기는 난 모양이야...."

스님은 혼자서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파키스탄도 이번 일은 전혀 예측불허로 속수무책이었다고 한다.

그곳은 사막으로 거의 일 년 동안 비가 오지 않는 지역인데, 요즘에 물폭탄 사례가 빈번하다고 했다.

"스님! 파키스탄은 이슬람교로 불교 유적이 어떻게 잘 보관되고 있는지 신기하네요."

스님은 파키스탄 라흐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부처님 고행상을 보러 가셨다고 해서 물었다.

"맞아요, 이슬람교는 불교 유적을 파괴하고 없으려고 했지요."

"그런데요?"

"일본 사람들이 애원하듯, 파키스탄에 로비활동에 들어갔죠."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요?"

"일본은 불교 국가잖아요, 그래서 남의 국가에 있는 소중한 불교 유산을 지키려고 애를 썼어요.

파키스탄에서 다리도 놓아주고, 학교나 병원도 지어주며 사회 봉사 활동을 많이 해줬어요."

"불교 유적을 살리기 위하여 그랬나요?"

"그렇죠, 일본은 경제대국이잖아요."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시 봐야겠군요."

"파키스탄에는 일본인이라면 넘버원이에요."

"그렇겠네요, 대대적인 물량공세에 녹아날 수밖에 없었겠죠."


"스님! 이번에 법회 날에 또 영가분 49재가 있네요."

"예, 우리 절은 신도분들 제사가 많은 편이죠."

"스님! 제사가 많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모르겠어요, 요청이 많이 들어오니 해드려야죠."

정공최근의 일이 생각났다.

"스님! 스님이 그렇게 열성적으로 축원을 하는데, 그 누가 오질 않겠어요?"

"그래요? 하긴 좀 열성적으로 하긴 하지만, 그때그때 따라 상황이 다르죠."

"상황이 다르면, 예를 들어 최근에 감동을 받은 그 영가의 49재인가요?"

"아! 그때, 거사님께서 말씀하신 그 영가 49재는 특별했어요."

스님의 뒷 이야기를 듣고 그날, 스님이 49재에 열성과 눈물로 애통해하는 마음을 이제야 알았다.

그 영가는 생전에, 30대 미모의 여인으로 시선을 남들로부터 한 몸에 받았다.

또한 가족에게는 사랑을 듬뿍 받고 기대와 희망을 주는 효녀였다.

그런데 자신의 몸이, 여성 특유의 생리 현상인 생리가 일반 여성 경우보다  좀 많아, 늘 신경이 써였다.

그래서 절친의 권유로 간단한 시술을 병원에서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술이 잘못되어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그 고통은 지속되며 오래갔다.

시술을 한 병원은 잘못된 게 없다고 했고, 동의서에 서명 날인하였기에 보상도 못한다는 거였다.

한마디로 어이없게 된 의료사고였다.

그 이후로 늘 계속되는 통증과 우울증으로 사는 게 더 괴로웠다.

부모님은 매일같이 창가에 서 있는 딸을 위로하며, 걱정을 크게 했다고 한다.

혹시 모를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얼음 위에 걷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경계를 잘해왔는데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순식간에 딸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 것이다.

졸지에 딸을 잃은 부모님, 누이를 잃은 남동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빠졌다.

이러한 비통함과 애절함을,  스님이 49재에서 다시 재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슬픔의 표현이라기보다, 슬픔을 씻어내는 의식이었던 것이다.


"스님! 49재와 제사는  차이가 있나요?"

"그렇죠, 비용도 비용이지만 요청하시는 신도에  따라 다르죠."

"어떻게요?"

"제사는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을 기준으로 하는데, 대체로 큰 차이는 없어요."

"49재는 비용이 더 많이 들겠네요?"

"비용은 신도분들  자의적이죠."

"7번 제사를 하니, 7번 제사상을 차리고 비용도 그만큼 많이 들어가겠네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의대로 받죠. 중요한 것은 영가의 왕생극락 인도이니까요."

"그래도 스님께서 열성을 다한다는 것은 소문으로 많이 쇄도하는 것이 아닐까요."

"소승은 일체 신도들에게 권유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많은 요청이 들어왔습니까?"

"그건, 병원 장례식장에서 알려줬지요."

"어쨌든 요즘은 애통한 슬픔의 순간에도 상업주의가 만연하는데, 스님께서는 개의치 않고 오로지 영가에 열정과 정성으로 일관하니 정말 감동적이에요."

"과찬의 말씀, 그냥 소승이 할 도리를 다할 뿐입니다."

은사 스님은 그렇게 무와 공의 법을 몸소 실천하는 분이셨다.

그리고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 사귀면 백 명 중에 열 명밖에 못 사귀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 안 드는 사람 상관없이 사귀면 백 명을 다 사귈 수 있다'라고 하셨다.

즉 마음의 문을 열어야,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있고 내가 편안하다는 것이다.

수행자는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칭찬이나 비난에도 걸림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간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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