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아련히 떠오르는 절과 비구니 스님, 어머님께서 자주 절에 다니는 것을 많이 보았다.
스님, 또한 집에 간혹 오셨다.
어머니가 다니는 절은 집에서 3km 정도 떨어진 야산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천태종으로 비구니 주지스님이 오랫동안 절을 지키시다, 돌아가시자 스님의 딸이 업을 물려받았다.
비구니 스님으로 대를 이었다고 말이 분분했다.
그러나 도시고속도로가 나면서 절이 철거되고 스님의 딸도 어디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게 되었다.
그 이후, 어머니는 그 근처에 새로운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정공도 어머니와 함께, 그 절에 갔었다.
정공은 절에 가면 늘 느끼는 게 있었다.
부처님이 항상 부드러운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부처님은 가는 절마다 한결같이 그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마당에는 연못이 있고 연꽃도 있었다.
지금도 연꽃 있는 절에 가면 새삼스럽게 연꽃을 유심히 살핀다.
그리고 어쩌면 연꽃잎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보면 어머님 말씀이 생각난다.
"여자는 자고로 접시에 물방울이 굴러다니듯 해야 한다."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도 "어머님! 어쩌면 피부가 이리 곱고, 뽀얗게 희세요?"라고 물었다.
"다~아~ 부처님 은덕이지, 뭐..."
어머님 생전, 아내가 어머님 모시고 목욕탕에서 했던 대화라고 했다.
그렇게 고왔던 어머님이셨지만, 5남매 자식을 키우느라 지난 세월이 무척 힘겨웠을 것이다.
힘든 세월, 역경 속에서도 불타의 믿음으로 이겨내신 어머님 덕분에 우리 형제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님! 스님 말씀을 듣고, 생각나는 게 있어요."
"무엇입니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그 조각상이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처럼 비슷하게 여겨져요."
"그렇죠, 서양에서는 그것이라면 동양에서는 반가사유상이죠."
"문화적으로 서로 다르기에 어느 것이 훌륭하다니, 더 좋다는 말은 못 하겠어요.
다만, 제가 동양사람이다 보니 일단 반가사유상이 더욱 와닿는 것 같아요."
"그래요, 맞는 말씀입니다. 거사님은 아주 공정한 사람이네요."
정공은 스님에게 그렇게 말을 했지만, 속 깊이 감동적으로 와닿는 불교 예술은 이 세상에 어디에도 견줄 것이 없다고 생각해 왔다. 자신이 미술적인 지식 및 정서가 부족하기에 자신 있게 나서질 못할 뿐이다.
"스님! 제 소견이지만, 불타의 예술은 부처님의 무한한 자비심에서 우러나오는 같아요."
"그렇죠, 적멸보궁의 끝없는 자비심이죠."
"어쩌면 무한한 어머니 사랑 같아요."
"맞습니다. 선사들께서 그린 불화나, 불상 모두가 한결같이 온 우주를 감싸는 부드러움과 온화함이죠."
"어머님은 항상 우리를 아무 꾸밈없는 어린아이로 대하고 아플 때나, 괴로울 때 어머니 손이 약손이 되죠."
"고려 불화에 관음상이 선재를 응시하는 것이, 어머니가 우리를 지켜주는 자비의 힘을 느낄 수 있어요."
"고려 불화라면 서구 방필 수월관음도를 말하는 것이죠?"
"그래요, 하늘과 바다, 바위를 배경으로 한 관음은 화려한 궁전과 나무, 수많은 불보살로 장엄한 극락세계로 아미타여래보다 더 인간적이고 친밀하며 내면적인 순간을 반영하죠. 이것은 어떤 인위적인 대상도 없이 자연 속에서 그저 존재 자체와의 만남을 말하고 있어요."
"어머니의 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말이죠."
정공은 포근한 어머니의 품 안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어머니 젖가슴을 더듬거리며 젖을 빨 때, 머리를 쓰다듬는 가녀린 어머니의 손길이 생생히 전해져 왔다.
그 손길과 부처님의 수인은 다를 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스님은 붓다의 미소에 대해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간절한 그리움과 깊은 종교적 체험 속에서 불교예술이 발견한 것이 미소라고 한다.
놀랍게도 고통을 인간의 보편적인 조건이라고 설파하는 종교가 고통이 아닌 미소에서 자신의 상징을 찾은 것이다. 영원히 고통에서 벗어난 자, 열반의 즐거움을 누리는 자라면 가질 법한 적정 삼매의 고요한 미소를 짓고, 그래서 '적멸의 즐거움', 곧 미소는 불상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고 한다.
"스님! 저도 불상에 새겨진 미소는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행복한 미소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어떻게 돌을 다듬어 저렇게 섬세하고 유려한 곡선, 세련된 기교를 부릴 수 있단 말인가요,
그저 넋을 놓고 바라만 볼 뿐입니다."
"부드럽고 유연한 손은 마치 피가 통하는 듯 사실적이면서도 편안하고 여유로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네요."
"특히 보살상은 실눈을 하고서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고 있어요. 참한 조선미인인 쌍꺼풀이 없는 눈에 선이 고운 눈썹을 가리고 있었는데, 불상의 얼굴에도 그렇게 가늘고 긴 눈썹이 그려져 있지요."
"정말, 동양적인 얼굴에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간 두 눈을 반쯤 감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이 그래요."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지만, 턱을 괸 손가락마저도 부드럽고 편안하게 느끼질 않아요?"
"그렇습니다, 모든 긴장이 풀어져 완전히 이완된 몸처럼 마음도 편안하고 자유롭게 느껴져요."
"살짝 숙인 고개, 가는 허리, 겹겹이 포개진 하의 자락을 따라 물 흐르듯이 흐르는 부드럽고 유연한 곡선은 너무나 섬세하고 정교해서 아무나 모방할 수 없는 미적 경지를 보여 주고 있어요."
스님은 더 이상 불교예술을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하며, 무궁무진하고 무한한 곡선의 예술은 끝이 없다고 했다.
"스님! 제가 올해에는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사찰과 불상을 찾아갈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찰순례이네요. 느껴보세요, 섬섬옥수와 같은 불타의 손길을..."
"사찰순례하며 절 풍경도 좋지만, 창건 배경, 불상이나 불화 등 역사도 함께 배우는 기회로 삼으세요."
절을 나오면서 정공은 스님 말씀을 다시 가슴속에 새겨 보며 스님께 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 사찰 순례를 통해 불타의 거룩한 가르침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전법사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그 바람이 무엇이든지 상관없다. 불타에 다가서는 일이라면...........
그리고 법당에서 염불 하는 소리가 귓전에 와닿는 것을 들으며, 정공도 염불을 외웠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실상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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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걸음 옮길 때마다 마하반야바라밀을 외우고 들숨날숨하며 호흡을 잘 활용하니 걸음도 가벼웠다.
마치 몸과 마음이 허공에 뜬 것처럼, 하늘하늘 법당으로 석탑으로 돌고 또 돌았다.
참으로 신묘한 일이었다.
숨 쉬는 것이 이렇게 편하고 기분이 좋아지며 행동하는 것이 무아지경에 이르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갑자기 부처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선남자여! 그대는 들을지니~ 만약 백천만억의 한량없는 중생이 여러 가지 괴로움을 받게 되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