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철이 다가오면 어린 양들은 도망쳐요
It's hunting season and the lambs are on the run
신은 생명을 만들고 보듬았다.
반면 탄생의 부산물인 어린 양들은 오류로 여겨졌다. 그리고 서서히 잊혀지고 버림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누군가 문득 어린 양을 쳐다봤다.
어린 양은 웃고 있었다. 웃듯이 웃으며 웃는 것처럼. 불현듯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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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책 읽기를 싫어한다. 글자를 읽는 게 불편한 거다.
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책을 넘기면 팔락이는 소리와 함께 글자가 펼쳐진다.
눈은 활자를 인식하고 내용을 풀어낸다. 풀어낸 문장을 해석하고, 내용은 정보로 전환되어 머릿속에 입력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피로감을 느낀다.
반대로 책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자녀의 성장을 지켜보는 부모가 그렇다. 부모는 책 읽는 자녀를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칭찬을 들으면 아이들은 그 무엇보다 달콤함을 느낀다.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늘만큼, 땅만큼 좋아요.’ 이려나.
소설 [사냥철이 다가오면 어린 양들은 도망쳐요]에는 다음의 내용이 나온다.
[가을의 일몰이 웅웅 거리고 있었다.
하늘은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지평선 아래로 물들어갔다.
색감과 별개로 양들은 불어오는 바람결에 스친 냄새로 계절을 파악한다. 계절이 바뀌면 양들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무리 전체가 움직이며, 고요한 대지가 울린다. 수백 마리의 발굽이 땅을 밟는 소리가 리듬감 있게 울려 퍼진다. 그 안에 털이 부드럽게 스치는 소리도 간간이 들린다.
무리의 뒤쪽에는 어린 양들이 한 대 모여있다. 삼삼오오 떠들며 걷는 순간은, 그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다. 어린 양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다. 그들은 서로 장난치며, 때로는 뒤쳐졌다가 다시 뛰어 무리를 따라잡곤 했다.
한참을 걷다가 양들은 커다란 절벽과 마주친다. 갑작스레 나타난 험준한 지형에 무리 전체가 우뚝 멈춰 섰다. 견고하고 마른 풀떼기가 바스락거리는 절벽이었다. 바위 틈새로 자란 마른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경고하듯 소리를 냈다. 보기만 해도 위태로워 보였다.
절벽 표면에 날카로운 돌들도 보였다. 흙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자, 양들의 털이 곤두섰다.
무리의 앞에 선 어미 양들은 절벽이 익숙하다는 듯이 절벽 길을 걸었다. 어린 양들은 망설였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절벽 끝에 서서 땅 쪽을 바라보자, 발을 헛디뎌 죽은 양들의 시체가 즐비했기 때문이다. 썩어가는 털과 뼈, 그리고 독수리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어미 양들은 움직이지 않는 어린 양들을 보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재촉하는 소리를 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어서 건너지 않으면, 양을 쫓는 무언가가 양들을 따라잡을 게 뻔했다.
그때였다. 무리 중 한 어린 양이 어미 양을 따라 선뜻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양은 가볍게 절벽을 넘나들었다. 작은 발굽이 바위를 디딜 때마다 돌멩이들이 떨어져 나갔지만, 어린 양은 가볍게 절벽을 넘나 들었다. 이 모습에 어미 양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인간 사회에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는 욕망으로 채워져 있다.
부모는 자신의 유전자를 지닌 자식이 고전 속에 등장하는 천재일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산다. 기대는 일종의 갈증과 같아서 현실에서 그렇지 않음이 증명됐더라도, 자식에 대한 믿음을 주기적으로 마시며 산다.
이런 기대감으로 인류는 절멸하지 않고, 후손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바칠 수 있었다.
그 덕일까, 인류는 책을 통해 욕망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말초적 자극 따위가 선사하는 쾌락을 넘어,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게 됐다.
그렇게 단순한 기록물인 책은 끝내 신이 되었다. 수많은 어린 양들은 신이 되기 위해, 그리고 신이 될 자신을 받들 부모를 위해 책을 펼쳤다.
절벽 걷기를 하는 양처럼, 실로 달콤함에 다가서려.
사진 : davide rag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