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사냥철에 양들은 도망쳐요. 2부
초음이 시작되면서 더위를 피할 겸 글을 쓰러 카페로 나섰다.
연은 집에 남아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집을 나서고 5분 정도 지났을까, 공책을 놓고 온 것이 생각났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 문을 열자, 방 안은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바람이 집을 훑고 지나갔는데, 커튼이 흔들리며 빛이 들어와 집 전체를 비추었다.
집이 작아서 한 줌의 빛이면 내부가 전부 드러났다.
내 눈앞에는 침대 위에서 연과 어떤 남자가 몸을 섞고 있는 게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남자는 곧바로 근처에 널브러진 팬티를 집고는 입으려고 애썼다.
급하게 입느라고 한 발로 퉁퉁 뛰자, 방 안이 울렸다. 그 팬티는 몇 분 전까지 내가 입고 있던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연과 섹스하기 위해 벗어던졌던 것이었다.
눈앞의 남자가 내 팬티를 입은 모습을 보자, 머릿속에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샘솟았다.
평소 같으면 화가 나면 어떻게 통제할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표현이 거름망을 거치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남자는 팬티만 걸치고 차렷자세로 서 있었다. 고개는 숙이고 있었고, 키가 컸는데, 몸을 최대한 오므리자 몸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문이 열린 상태로 내가 소리 지르자, 문을 넘어 소음이 밖으로 터져 나갔다.
잠시 후 문 밖으로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남자는 갑자기 집을 뛰쳐나가려고 했다.
남자를 잡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가 내 옆으로 지치려 하자 난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붙잡았다.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 계속 달렸다. 그날 남자에게 했던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심한 말이었을 거다.
연은 앞에 놓인 이불을 끌어안은 채 침대 위에 가만히 있었다.
자신의 알몸을 가리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나는 남자가 나가고 바로 대상을 바꿔 남자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연에게 쏟아냈다. 그럼에도 연은 반응하지 않았다.
묵묵히 내 분노가 수그러들 때까지 듣기만 했다.
그녀가 반응이 없자 화도 점차 가라앉는 것 같았다. 역시나 문 밖으로 계속해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발소리를 내지 않고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우리는 방 안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은 자신이 끌어안은 이불과 저 멀리 문쪽에 서 있는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연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은 그녀를 처음 마주했을 때와 달랐다.
아마 그녀를 보던 내 눈도 처음과 달랐을 거다.
침묵이 이어졌다.
날은 더웠다.
이불을 끌어안고 있는 연은 더웠을 것이다.
그녀가 이불을 내리고 먼저 움직였다. 그녀가 일어서자 커튼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햇빛이 다시 비쳤다. 햇빛은 그녀의 다리 사이를 비췄다. 사타구니부터 허벅지 안쪽까지.
그곳에 흘러내리는 액체가 은은하게 반짝였다. 이 반짝임을 연도 보았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인생에서 두 번째 화를 터뜨렸다.
두 번째 역시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저항 없는 그녀에게 저주를 퍼부었던 건 기억난다.
연에게 화를 퍼붓고 집을 나갔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밤이 되자 문 앞까지 돌아왔지만, 다시 나갔다.
모텔과 피시방을 전전했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집에 돌아왔었다.
돈이 다 떨어진 탓이었다. 집 안은 나간 날과 비슷한 상태였다.
다만 평소에 서랍에 꽂아둔 책과 공책의 순서가 낯설었다. 바뀌어 있는 것 같았다.
방이 어두워서 커튼을 걷던 중 문자가 왔었다. 연이었다.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며칠이 지났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집은 여전히 낯설어 보였다. 나의 ‘적절한 관계’는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