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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진 leeAjean Sep 20. 2024

[소설] 18화_"이따 봐요."

소설_사냥철에 양들은 도망쳐요 2










22


 술기운을 빼기 위해 물을 계속 마시다가 입이 허전해지는 게 느껴졌다. 담배가 생각났다. 주머니에 구겨둔 담뱃갑을 꺼내 들며 은별에게 물었다.


 “한 대 태우고 올까?”


 “아아, 최근에 끊었어.”

 은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잘만 피우다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래?”

 나는 되물었다. 손가락으로 담배를 집어 미리 입에 물었다.


 “나중에 시집가야지. 만약 임신했는데 갑자기 코에 바람 넣고 싶어지면 큰일이잖아, 미리미리 끊는다고 생각하려고.”


 “대단하네. 나도 줄여 봐야겠다.”

 난 건성으로 말했다.


 “말 만이지?”

 은별도 내가 대충 대답한 것을 눈치챘다.


 “당연하지.”

 난 킥킥 웃으며 바를 걸어 나왔다. 시간이 꽤 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새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게를 나오고 대충 벽에 기대서 담배 피울 곳을 찾았다. 


 이미 취한 상태라 벽에 기대지 않으면 넘어질 것 같았다. 흡연자들이 잔뜩 모여있는 3층 정도의 상가가 보였다. 쪼그려 앉아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가 벽에 기댄 채 담배 피우는 사람도 있었다. 


 마침 벽에 기댄 사람이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비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리를 벗어나면서 바닥에 걸쭉한 가래침을 뱉었다. 


 벽에 다가가며 가래침을 피하고 벽에 기대었다.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거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여전히 시끄러운 거리다. 


 한쪽에서는 술 취한 행인들끼리 시비가 붙었는지 욕지거리가 들렸다. 지나가는 사람 몇몇은 핸드폰을 꺼내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불러도 딱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자, 나도 모르게 담배를 피우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서둘러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때 어딘가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음악은 바의 안쪽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Hey Jude> 였다. 스무 살 때 많이 들었던 음악이었다. 


 지금은 듣지 않는다. 거리가 시끄러운데도, 음악이 선명하게 신기했다. 소음과 음악을 번갈아 가며 들었다. 피던 담배를 퉤, 하고 뱉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이번에는 천천히 피워야겠다. 담뱃불의 작은 열기가 찬 공기가 부딪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불 좀 빌려주세요.”

 키가 작은 여자였다. 이 여자는 어른스러운 흰색 롱코트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얼굴은 앳돼 보이는 것이 겨우 고등학생 같았다. 


 여자는 추웠는지 양손은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두고, 앞 쪽으로 튀어나온 손가락 사이에는 담배 한 개비가 끼워져 있었다. 겨드랑이 사이에 담배만 삐죽 나와 있으니 우스웠다.


 

 “저 말고 다른 사람한테 빌리세요.”

 내가 말했다. 괜히 이 분위기를 끊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그냥 빌려줘요.”

 여자는 가까이에 붙고는 콧소리를 섞어가며 말했다. 


 괜히 시비에 걸리기 전에 빨리 빌려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팔을 뻗어 손으로 바람을 막고, 불을 붙여줬다. 여자는 능숙하게 바람을 빨며 불을 받았다. 그러면서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걸었다.



 “혼자 궁상맞게 뭐해요?”


 “혼자는 아니에요.”


 “일행은 어딨는데요?”


 “저기 보여요?”

 나는 손가락을 뻗어 2층의 바 창문 쪽을 가리켰다. 


 여자는 내 손가락을 따라 바를 쳐다보았고, 그곳에는 마른안주를 집어먹는 은별이 보였다. 은별은 나를 보고 있었는데, 자신이 지목된 것을 보고 양손을 흔들어 보였다. 적당히 바보 같은 웃음은 덤이었다.


 “쟤랑 같이 왔으니까 불 빌렸으면 적당히 가세요.”

 은별의 모습을 훑어본 여자는 다시 말을 걸었다.


 “딱 봐도 둘이 아무 사이도 아니네요.”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여자는 잠깐 머쓱한 듯이 가만히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 소린이에요. 이따 저분이랑 다 마시고 저랑 한잔하실래요?”


 여자는 손을 앞쪽으로 뻗으며 말했다. 악수하자는 것 같았다.


 “그건 또 무슨 말이죠?”

 내가 물었다.


 “무슨 말인지 아시잖아요.”

 내가 손을 잡아주지 않자, 여자는 손을 겨드랑이 사이로 다시 끼워 넣었다. 그리고 끼워 넣은 손을 주머니에 넣고 핸드폰을 꺼냈다. 


 “그럼 번호라도 찍어 주세요.”

 여자는 끈질겼다. 


 계속 거절하면 붙들고 있을 것 같아서 핸드폰을 받았다. 


 아마 추운 날씨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 것도 있었다. 그때 창문 너머의 은별과 눈이 마주쳤다. 


 은별은 나를 놀릴 때 나오는 특유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이 양 옆으로 커지게 웃는 표정이었다. 일단 번호를 찍어줬다. 이 모습에 은별은 더 크게 웃는 것 같았다. 


 아마도 저기서 더 웃었다간 바의 사장한테 쫓겨날 게 뻔해 보였다. 아니 그냥 쫓겨나는 걸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지도.



 담배를 마저 태우고, 바가 있는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순간 머릿속에 여자의 모습이 맴돌았다. 아마 옛날 같았으면, 다시 돌아서 여자와 대화를 나눴을 텐데.


 “이따 봐요.”


 돌아보지 않으려 했는데, 여자의 목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돌아봤다. 여자는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아쉽게도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은별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다. 은별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는 각도였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바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노래가 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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