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사냥철에 양들은 도망쳐요 2
<Hey Jude - Beatles>
Hey Jude, don’t let me down
이봐 주드, 무서워하지 마
You have found her, now go and get her
넌 그녀를 찾았어, 이젠 나가서 그녀를 잡아야만 해
Remember to let her into your heart
기억해, 그녀를 네 마음으로 들여보내야 하는 걸
Then you can start to make it better
그러면 넌 다시 나아질 수 있을 거야
So let it out and let it in hey Jude begin
그러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 다시 시작해
You’re waiting for someone to perform with
넌 함께 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지만,
And don’t you know that it’s just you
너도 알고 있잖아, 그게 바로 너라는 걸
Hey jude, you’ll do
주드, 네가 해야 해
The movement you need is on your shoulder
네가 할 일은 너의 어깨 위에 있는 거야
Nah nah nah nah nah nah hey Jude.
노래에 남은 감성을 좋아한다.
꽂히는 노래가 생기면 수백 번은 반복해서 듣곤 했다.
노래의 멜로디에 맞춰 나타나는 상상 속 모습은 늘 새롭다.
특히 이 노래를 좋아했다. 외국어로 돼있지만, 발음과 높낮이의 뉘앙스가 존재하니 상관없다.
음악에 온 생각을 집중시키면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수 번의 반복 끝에 더는 상상이 펼쳐지지 않을 때 비로소 해석된 가사를 찾아본다.
어떤 노래는 해석본을 보고 실망하기도 한다. 원하지 않은, 상상과 다른 것이기 때문에 그럴 거다.
하지만 이 또한 상상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들어본다. 화자가 무슨 감정을 가졌는지 느껴본다. 때론 감탄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가사를 알고 난 후부터 처음의 상상은 그려지지 않는다.
떠올리려고 애써보지만, 상상이 진화했을 때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처음의 순간이 스친다.
이처럼 어떤 노래건 처음 들었던 순간과 마지막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Nah nah nah nah nah nah hey jude’
이 노래를 마지막으로 들었던 순간은 이랬다.
병원 복도에 울리는 노래에 잠시 정신을 팔고 있었다.
이어폰으로 듣고 있던 노래와 같은 곡이었다. 아마도 복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라디오를 틀어놓은 모양이었다.
엄마는 갑상선 암으로 투병 중이었고, 며칠 사이에 상태가 악화되어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제는 헛소리를 자주 늘어놓는 상태가 됐다. 틈만 나면 내게 말을 걸었지만, 대부분은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었다.
또 말이라고 하기엔 모기 소리 같았다. 원숭이 소리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맥락 없이 이어지는 말들 때문에 알아듣기 힘들었다.
평소의 엄마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일이 끝나고 와서도 우리는 그닥 대화가 없었다.
사실 대화가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삼촌에게 엄마에 대해 물었을 때도 나와 같은 말을 했었다. 엄마는 말이 없다고.
이런 엄마는 병상에 눕고 나서부터, 뭐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입을 쉬지 않았다.
계속,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핸드폰을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내 몸을 툭툭 치며 관심을 구걸했었다.
병실로 간호사들이 수시로 오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간호사들이 들어올 때마다 엄마의 상태가 변한 줄 알았다.
난 그럴 때마다 하던 걸 멈추고 차렷 자세로 있었다. 하지만 별게 아니라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간호사들의 얼굴빛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이었다.
사실 얼굴빛이 변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상태가 괜찮은 지, 호전 됐는지 따위를 물어보는 게 전부였다.
자세한 병세에 대해 따로 물어본 적이 있었다. 간호사들은 상대하기 귀찮은 듯이 알 수 없는 의학 지식을 늘어놓았다. 난 그저 고개를 끄덕였었다.
엄마의 말을 무시한 지 한참이 지났었다. 엄마는 이제 내가 반응이 없다는 걸 알게 됐고, 이번에는 간호사들에게 구걸의 대상을 돌렸다.
간호사들은 나처럼 몇 번 대꾸해 주었으나, 결국에는 나와 같은 반응을 하며 돌아갔다.
나와는 달리 익숙한 일인 듯 태도가 바뀌는 건 금방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듣기 싫어서 핸드폰을 꺼내 음악앱을 켜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노래를 찾고,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엄마는 여전히 혼잣말을 하고 있었고, 난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의 타이밍에 맞춰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 듣기도 슬슬 지루해졌다. 집에 있는 게임기나 가져올 걸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훈이 있잖아, 쟤가 어릴 적에 말이지… 나랑 당신이랑 같이 영화관에 데려갔었는데.”
엄마가 눕고 나서부터 나를 아빠로 혼동하는 건 꽤 자주 있었다. 애써 무시한 채 볼륨을 높였다.
‘Nah nah nah nah nah… Hey Jude’
듣던 노래가 끝났다. 병원 와이파이가 좋지 않아, 다음 음악으로 넘어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팝콘 쏟았던 게 생각나네.”
엄마는 처녀 시절의 추억을 자주 들먹였는데, 이를 테면 키스와 입맞춤의 차이라던가.
난 엄마와 아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다만 처음 들었던 몇 가지 얘기는 흥미로웠다.
입맞춤에서 들리는 ‘쪽.’ 소리라던가, 죽음의 순간을 알면서도 동경하는 마음 같은 걸 말이다.
말은 꼬리를 물수록, 엄마는 깊은 과거로 잠겨 들어갔다. 횡설수설한 말들에서 우리가 추억의 편린이 몇 가지 발견됐다.
“훈이가 그때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
엄마의 목소리는 힘없이 흘러나왔다. 난 그 말속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는 <여울의 여명>을 보러 갔었다.
“그러고 나서… ‘헤헤’ 하고 웃더라고.”
엄마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 역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영화관의 어두운 조명, 고소한 팝콘 냄새, 스크린이 약간은 비틀어진 작은 영화관. 그리고 내 양옆으로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모습까지.
“근데 말이지. 그 영화 주인공이 마음에 안 들었어. 글쎄, 그 역할이 배우랑 전혀 안 어울린다니까. 안 그래?”
엄마는 영화의 캐스팅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치매 증상으로 엉뚱한 소리가 섞여 있었지만, 묘하게도 그 불평은 내 기억 속의 것과 일치했다.
실제로 <여울의 여명>에서 주인공의 캐스팅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문을 제기했었다.
“그래도 말이야, 훈이는 재밌어하더라? 아마 나랑 당신이랑 같이 보니까 좋았나 봐… 그렇지 우리 아들?”
엄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엄마, 뭐라고 하셨어요?”
내가 말했다.
“훈아, 혼란스러워 보이네.”
횡설수설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모기나 원숭이 따위의 소리도 아니었다. 엄마의 목소리였다. 나는 다급하게 이어폰을 뽑았다.
“엄마, 그때 정말 좋았어요. 엄마랑 아빠랑 같이 영화 보는 게 좋았어요.”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걱정 마, 다 괜찮을 거야.”
“응응…”
“걱정하지 말고…”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잘 듣고 싶어서, 그녀가 누워있는 침대 방향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무엇을 걱정하지 말라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말을 하고 엄마는 잠들었다. 돌아가신 것은 아니었다. 정말 잠든 것이었다.
다시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물어보는 것을 기약해야 했다.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리며, 졸음이 쏟아졌다. 엄마의 침대에 몸을 기대 잠을 청했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다.
엄마는 다시 횡설수설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여전히 간호사들은 오가고 있었다.
엄마가 옆에 놓인 휴지를 한 장씩 뽑아 구기고는 내게 던졌다.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순간 다른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다들 표정이 어두운 것이 불만이 많아 보였다. 부끄러웠다.
“엄마, 다음에 또 올게.”
난 서둘러 일어났다. 바로 집으로 돌아와 글을 썼다.
엄마는 이날 새벽을 넘기지 못했다.
집에서 급하게 전화를 받고 다시 병원으로 뛰어갔지만, 끝까지 얘기를 듣지 못했다. 엄마가 아들의 표정을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다. 마음속 ‘혼란’이라는 감정이 있었는지 조차 의문이다. 요 근래 머릿속에 온통 쓰고 있던 소설 생각만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이 들어올 공간은 없었다. 이런 상태에 ‘혼란’이라는 단어가 주입되자, 머리가 새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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