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화_최근 한 달간 가족과 연락한 적이 있습니까?

D+501

by 이아진 leeA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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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잠을 못 잔 건 아니었다. 그냥 눈이 떠졌다. 요즘은 그랬다. 토루빈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알람보다 몸이 먼저 깨는 날이 많아졌다고.


알람이 울렸다. 껐다.


샤워를 했다. 욕실 타일이 차가웠다. 발바닥에 차가움이 올라왔다. 뜨거운 물이 나오기까지 30초쯤 걸렸고, 그 사이 차가운 물이 어깨를 때렸다. 익숙한 차가움이었다. 물이 데워지면서 거울이 서서히 흐려졌다. 얼굴이 사라졌다. 윤곽이 사라지고, 색이 사라지고, 거울이 하얀 막으로 덮였다. 다시 맑아지고 나서도 한동안 같은 자리를 보고 있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아챘다. 거울에 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닦았다. 수건에서 빨래 세제 냄새가 났다. 군복을 입었다. 단추를 잠그고 허리띠를 맸다. 허리띠 가죽이 차가웠다.


창가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흙이 말라 있었다. 갈라져 있었다. 잎이 축 처져 있었다.




마렌이 화면을 보면서 말했다.


“오늘 오전에 평가지 있어요.”


“알겠습니다.”


옆자리 헬무트가 의자를 돌리며 말했다. 헬무트는 큰 체격에 목이 굵었다. 손도 컸다. 컨트롤러를 잡으면 그립이 가려질 정도였다. 의자가 돌아갈 때 삐걱 소리가 크게 났다. 헬무트의 의자만 유독 소리가 컸다. 몸무게 때문인지, 의자가 낡은 건지.


“또야? 저번 달에도 했잖아요.”


“분기마다 하는 거래요.” 마렌이 말했다.


“분기가 벌써 됐어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헬무트는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전에 타깃이 두 명이었다.


8시 43분. 움직임이 포착됐다. 줌을 당겼다. 배낭을 멘 사람이었다. 바위 사이를 이동하고 있었다. 고도를 낮췄다. 어깨가 보였다. 손이 보였다. 얼굴이 보였다. 확인. 복창. 안전장치를 열고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흔들렸다. 먼지가 피어올랐다. 가라앉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보고서를 입력했다. 시간, 좌표, 대상, 결과. 네 개의 칸을 채우는 데 30초가 걸리지 않았다. 드론을 구역 이탈시키고 30초를 셌다. 환기 팬이 돌고 있었다. 커피 포트가 지직거렸다.


11시 17분. 같은 절차였다. 움직임, 줌, 어깨, 손, 얼굴, 확인, 복창, 버튼, 먼지, 보고서. 시간, 좌표, 대상, 결과. 30초. 마렌이 확인 절차를 진행하는 소리가 들렸다. 키보드 소리. 좌표를 읽는 소리. 헬무트의 자리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났다.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식당 입구에서 수프 냄새가 났다. 트레이에 수프와 빵을 올렸다. 자리에 앉았다.


헬무트가 옆에 앉았다. 트레이를 내려놓는 소리가 컸다.


“오늘 메뉴 뭐예요?”


“수프랑 빵이요.” 내가 말했다.


“어제도 그거였는데.”


“어제는 다른 수프였어요.”


헬무트가 수프를 한 숟가락 떴다. 입에 넣고 씹었다. 잠깐 먹더니 말했다.


“똑같은데요.”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마른 빵이었다. 수프에 적시지 않고 그냥 먹었다. 씹는 소리가 입 안에서 울렸다. 수프를 한 숟가락 떴다. 짠맛이 났다. 그 안에 다른 맛이 있었을 텐데 느껴지지 않았다. 헬무트는 수프에 빵을 찢어넣고 있었다.


헬무트가 또 말했다.


“이번 주말에 낚시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 사람 없어요?”


“저는 괜찮아요.” 내가 말했다.


“괜찮다는 게 가겠다는 거예요, 안 가겠다는 거예요?”


“안 가겠다는 거죠?”


“아, 진짜? 좋은데. 바다 보면 기분 좋아지는데. 파도 소리 듣고 있으면 아무 생각 안 나요.”


수프를 한 숟가락 더 떴다.


“괜찮아요.”


헬무트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수프를 마저 먹었다. 빵까지 다 먹고 트레이 위에 수저를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트레이 위가 깨끗했다. 헬무트는 항상 다 먹었다. 남기는 법이 없었다.



점심을 마치고 조종실 옆 작은 방으로 갔다.


방은 좁았다.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 벽에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형광등 한쪽이 약간 깜박거렸다. 책상 위에 평가지와 볼펜이 놓여 있었다. A4 두 장짜리였다. 맨 위에 “분기 심리평가”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그 아래 이름, 계급, 소속을 적는 칸이 있었다. 의자를 당겨 앉았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조종실 의자와 같은 소리였다.


볼펜을 들었다. 이름을 적었다. 글씨가 작았다. 처음 배치됐을 때 적었던 글씨보다 작아진 것 같기도 했다.


1. 최근 한 달간 수면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①에 체크했다.


2. 식욕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까?

①에 체크했다.


3. 최근 한 달간 가족과 연락한 적이 있습니까?

볼펜이 ① 위에서 멈췄다. 잠깐 생각을 하다 ③에 체크했다.


4. ① 5. ① 6. ① 7. ①


볼펜이 종이 위를 빠르게 지나갔다. 체크하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문항을 읽지 않았다. 읽지 않아도 답을 알았다.


8. 업무에 대한 보람이나 의욕을 느낍니까?

③에 체크했다.


9. ①


10. 일상에서 즐거움을 느낍니까?

①에 체크했다.


11. 기타 전달사항이 있으면 자유롭게 기재하십시오.

빈칸을 봤다. 빈칸이 넓었다. 5줄 정도 쓸 수 있는 공간이었다. 형광등이 깜박거렸다. 환기 덕트에서 바람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볼펜 끝으로 종이를 한 번 눌렀다가 뗐다. 점이 하나 찍혔다. 작은 점이었다.


‘없음.’


평가지를 뒤집어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볼펜을 그 옆에 놓았다.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불을 끄고 나왔다. 복도가 밝았다. 형광등이 깜박거리지 않는 복도였다.


복도 끝 자판기 앞에 헬무트가 서 있었다. 자판기 불빛이 헬무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저도 커피요.” 내가 말했다.


“뭐로요?”


“아무거나요.”


헬무트가 버튼을 눌렀다. 기계 안에서 무언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캔이 떨어지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꽝. 건넸다. 헬무트는 캔을 내게 건네주었다. 캔이 따뜻했다. 둘이 복도 창가에 기댔다. 창밖으로 주차장이 보였다.


“평가지 잘 됐어요?” 헬무트가 말했다.


“네.”


“저는 한 문제 틀렸어요.”


“평가지를 어떻게 틀려요.”


“그러니까요.” 헬무트가 웃었다. 소리 내서 웃었다. 토루빈처럼 크게는 아니었지만 웃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쓰다 보니까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①로 체크했다가 지우고 ②로 바꿨어요.”


커피를 마셨다. 캔의 금속이 입술에 닿았다. 뜨거웠다.


“어떤 문항이요?”


“기억 안 나요.” 헬무트가 캔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들어갔다. 헬무트는 그런 것을 잘했다. 던지면 들어갔다. “퇴근하고 뭐 해요?”


“집에요.”


“맨날 집이네요.”


“네.”


헬무트가 피식 웃으면서 조종실로 돌아갔다. 문이 열리고 닫혔다. 커피를 마저 마셨다. 캔 바닥에 남은 커피가 미지근했다. 창밖을 봤다. 주차장에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캔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들어가지 않았다. 주워서 넣었다.


퇴근 무렵 마렌이 말했다.


“평가지 잘 넣었어요?”


“네.”


컴퓨터를 끄고 가방을 들었다. 조종실 문을 나섰다. 삑. 복도. 형광등. 계단을 올라갔다. 지하의 더운 공기가 지상층으로 올라가면서 섞였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마렌과 나 둘이었다.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안에 마렌의 커피 냄새가 남아 있었다. 마렌이 나를 잠깐 봤다. 무언가를 확인하는 시선이었다. 평가지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1층에서 문이 열렸다. 밖에서 찬 공기가 밀려들었다.


“수고했어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주차장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마렌은 왼쪽, 나는 오른쪽. 마렌의 발소리가 자갈 위에서 서걱거렸다가 멀어졌다. 마렌은 돌아보지 않았다. 나도 돌아보지 않았다. 차에 탔다.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켜지면서 히터가 돌기 시작했다. 차 안이 데워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핸들이 차가웠다.



도로가 막혔다. 아침과 같은 자리였다. 앞차 범퍼를 봤다.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집에 들어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면서 화면을 봤다. 엄마였다. 화면에 “엄마”라고 떠 있었다. 진동이 손에 전해졌다. 화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현관이 어두웠으니 그 빛이 유독 밝았다. 잠깐 봤다. 세 번 울렸다. 네 번째가 울리기 전에 화면을 껐다. 진동이 멈췄다.


불을 켰다. 켜지지 않았다. 스위치를 다시 눌렀다. 딸깍, 딸깍. 마찬가지였다. 전구가 나간 것이었다. 천장을 잠깐 봤다. 전구가 보이지 않았다. 어두워서. 전구를 갈아야 했다. 어디서 사야 하는지 생각했다. 편의점에는 없을 것 같았다. 마트에 가야 했다. 내일, 하고 생각했다. 다른 방 불을 켰다. 부엌 불이었다. 부엌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거실 바닥에 닿았다.


소파에 앉았다. 부엌에서 나오는 빛이 소파 팔걸이까지만 닿았다. 무릎 위는 어두웠다. 핸드폰 화면을 켰다. 화면의 빛이 얼굴에 닿았다. 부재중 전화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엄마. 방금 것이었다. 하나는 모르는 번호. 오후에 걸려 온 것이었다. 누구인지 몰랐다.


엄마에게 다시 전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했다. 잘 지내고 있다. 밥 먹었다. 걱정 마. 그 문장들이 떠올랐다. 전화를 걸지 않았다.


창가에 화분이 있었다. 흙이 그대로 말라 있었다. 갈라진 틈이 아침보다 더 벌어진 것 같기도 했고, 같은 것 같기도 했다. 잎이 축 처져 있었다. 잎 끝이 갈색으로 마르고 있었다.


거실이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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