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화_정상 범주에 해당하며, 별도의 보고 의무는 없다

D+1

by 이아진 leeAjean


다운로드.png

- 드론 운용 인원 배치 절차 제7조.

신규 배치 인원은 운용 구역 진입 전 장비 점검 및 시스템 확인 절차를 완료해야 한다.
확인 항목은 별첨 A를 참조할 것.



D+1



1월이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카엘이 차에 시동을 걸었을 때 라디오가 켜졌다. 어젯밤 끄는 걸 깜빡했다.


“전쟁 발발 이후 자원입대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라바니안 병무청에 따르면 지난 사흘간 입대 지원자 수가 평시 대비 열두 배를 넘어섰으며, 일선 모병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젊은이들의 줄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이들의 용기와 헌신에 뜨거운 응원을...”


카엘은 잠깐 그대로 있다가 채널을 바꿨다. 군가였다. 다시 바꿨다. 뉴스였다. 꺼버렸다.


라디오가 꺼지자 차 안이 조용해졌다. 엔진 소리만 남았다. 히터에서 나오는 바람이 발밑을 데웠다. 차 유리에 성에가 얇게 남아 있었다. 와이퍼를 한 번 돌렸다. 성에가 반원을 그리며 밀려갔다.


도로는 막혔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신호가 바뀌고 차가 밀렸다. 카엘은 앞차 범퍼를 바라봤다. 범퍼에 스티커가 하나 붙어 있었다. 글자가 작아서 읽히지 않았다. 신호가 바뀌었다. 앞차가 움직이고 스티커가 멀어졌다. 도시를 벗어나면서 건물이 줄어들었다. 들판이 나타났다. 1월의 들판은 회색이었다. 눈이 조금 남아 있는 곳도 있었다. 얼어붙은 흙 위에 풀이 죽어 누워 있었다.


어젯밤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조심하라고 했다. 자랑스럽다고도 했다. 카엘은 응 잘해볼게, 사랑해, 라고 두 번 말하고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잠깐 귀에 남았다.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자랑스럽다는 말이 조심하라는 말보다 높은 톤이었다. 높은 톤은 보통 거짓말이거나 불안이었다. 카엘은 그것을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 생각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인도를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각자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코트를 여미고, 입에서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걸었다.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정류장 지붕에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멀어서 잘 읽히지 않았다. 글자보다 색이 먼저 보였다. 빨강과 흰색이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카엘의 차가 움직였다.



카엘은 편의점에 들렀다.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와 형광등 빛이 동시에 밀려왔다. 음악이 작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흔히 트는 종류의 음악이었다. 밝고 가벼운 멜로디. 냉장 칸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집었다. 햄과 치즈였다. 포장 비닐이 차가웠다. 다른 종류도 있었지만 카엘은 항상 햄과 치즈를 골랐다. 캔커피도 하나 집었다. 계산대 앞에 줄이 두 명 있었다. 앞사람이 담배를 사고 있었다. 계산원이 뒤를 돌아 담배 진열대에서 하나를 꺼냈다.


기다리는 동안 카운터 옆 유리창에 A4 용지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손 글씨로 쓰여 있었다. ‘우리 아들 파이팅.’ 그 아래 어설프게 그린 별이 세 개 있었다. 별 색깔은 노란색과 빨간색이 섞여 있었다. 색연필로 칠한 것 같았다. 아이가 그린 것인지, 누군가의 어머니가 그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카엘은 잠깐 그 글씨를 봤다. 계산원이 금액을 불렀다. 카엘은 카드를 내밀었다.



부대 정문 앞에서 위병이 카엘의 차 창문을 두드렸다. 신분증과 출입증을 동시에 요구했다. 전에 없던 절차였다. 위병의 손이 빨갛게 얼어 있었다. 장갑을 끼지 않고 있었다. 출입증을 확인하는 동안 카엘은 게이트 옆 기둥을 봤다. 포스터가 새로 붙어 있었다. 이번엔 가까워서 읽혔다.


[우리는 지키고 있습니다.]


포스터 속 군인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이 없었다. 배경은 산맥이었다. 국경 지대의 산맥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색이 달랐다. 포스터 속 산맥은 초록색이었다. 1월의 산맥은 회색이었다.


카엘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엔진이 식어가는 소리가 났다. 똑, 똑, 똑. 주차장에 차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이미 출근한 것 같았다. 카엘은 늦은 편이었다. 배치 첫날이라 출근 시간이 따로 지정되어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찬 공기가 카엘의 얼굴을 때렸다. 코 안쪽이 얼얼했다. 숨을 내쉬면 하얀 입김이 길게 이어졌다.


건물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는 다른 병사가 있었다. 상병이었다. 카엘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배치됐어요?”


“네.”


“어느 팀이에요?”


“마렌 중위님 팀이요.”


상병이 잠깐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연기가 찬 공기 속에서 천천히 퍼졌다.


“잘 됐네요.”


카엘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묻지 않았다.



조종실은 본관 지하 1층에 있었다. 계단을 내려갔다. 콘크리트 계단이었다. 발소리가 벽에 울렸다. 한 층을 내려가는 동안 지상의 소리가 사라졌다. 바깥의 바람 소리도,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하에는 지하의 소리만 있었다. 환기 덕트에서 나오는 바람 소리, 어딘가에서 웅웅거리는 기계 소리. 지상층과 공기가 달랐다. 습도가 낮고 온도가 높았다. 내려갈수록 서버 냄새가 진해졌다. 금속과 플라스틱이 데워진 냄새. 형광등이 줄지어 있었고, 복도가 좁았다. 창문이 없었다. 카엘의 발소리만 울렸다. 혼자였다.


카엘이 출입증을 찍었다. 삑. 문이 열렸다.


뜨거웠다. 생각보다 훨씬 뜨거웠다. 서버 열기와 환기팬 소음과 플라스틱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복도와는 완전히 다른 공기였다. 환기 팬이 천장에서 돌고 있었지만 열기를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방 한쪽 구석에 커피 포트와 종이컵이 놓인 선반이 있었다. 커피 포트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벽에 캘린더가 하나 걸려 있었다. 1월이었다. 아무 표시도 되어 있지 않았다. 카엘은 잠깐 멈췄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책상이 세 개 있었다. 두 자리는 이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머지 한 자리는 비어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서 나오는 빛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창문이 없으니 그 빛이 전부였다. 형광등과 모니터 빛. 앉아 있는 사람 중 하나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마렌 중위입니다. 오늘부터 같이 하죠.”


“카엘 이병입니다.”


“알아요. 서류 봤어요.”


잠깐 침묵이 있었다. 환기 팬 소리가 그 침묵을 채우고 있었다. 마렌이 키보드에서 손을 멈췄다. 처음으로 카엘 쪽을 봤다. 30대 초반쯤의 얼굴이었다. 눈 아래 그늘이 약간 있었다.


“음 편의점에서 뭐 샀어요?”


“샌드위치요.”


“그렇군요.”


마렌은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카엘은 뭔가를 물어보려고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몰랐다. 물어볼 게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했다.


“앉아봐요.”



카엘은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생각보다 낮았다. 등받이 왼쪽이 약간 낮아서 몸이 기울었다. 자세를 고쳤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이전에 누가 앉았던 의자였다. 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다. 전출인지, 전역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책상 위에 모니터 두 대가 놓여 있었다. 왼쪽은 지도, 오른쪽은 아직 검은 화면이었다. 검은 화면에 카엘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책상 위에 메모지와 볼펜이 있었다. 이전 사람이 쓰던 것인지, 새로 놓아둔 것인지 모르겠다. 메모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마렌이 옆에서 컨트롤러를 집어 들었다.


“기본은 아시겠네요. 훈련이랑 크게 다르진 않아요. 이게 고도 조절이고, 여기가 줌이에요. 줌은 천천히 당기는 게 좋아요. 빠르게 당기면 화면이 흔들려서 멀미나요.”


“알겠습니다.”


“사격 버튼은 여기.”


빨간 버튼이었다. 덮개가 있었다. 마렌이 덮개를 한 번 열었다가 닫았다. 아무렇지 않은 동작이었다. 카엘에게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 않았다.


“발사 후에는 드론을 바로 구역 이탈시키지 말고, 30초 유지해요. 확인 절차가 있거든요. 타깃이 쓰러진 뒤에도 30초 동안 화면을 유지해야 해요. 움직임이 없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마렌이 잠깐 커피 포트 쪽을 봤다.


“커피 마실래요?”


“괜찮습니다.”


“그래요. 이따가 먹고싶으면 말해요.”


마렌이 일어나서 종이컵에 커피를 따랐다. 자기 것만. 커피 포트가 지직거렸다. 김이 올라왔다. 마렌이 종이컵을 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말했다.


“그리고.”


마렌이 잠깐 멈췄다.


“화면 속에 있는 건 화면 속에 있는 거예요. 여기는 여기고.”


카엘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마렌이 컨트롤러를 내려놓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카엘은 컨트롤러를 들었다. 그립이 익숙했다. 훈련 때 쓰던 것과 같은 모델이었다. 플라스틱이 차가웠다. 새것이었다. 카엘의 손에 쥐어지자 천천히 데워지기 시작했다.


다른 게 있다면 훈련 때는 화면 속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뿐이었다.



운용 구역 영상 수신 중. 고도 310미터. 기온 섭씨 4도. 풍속 초당 3.2미터. 시야 양호.


회색 땅이었다.


카엘은 화면을 봤다. 처음 보는 화면이었다. 훈련 때의 화면과 해상도가 달랐다. 더 선명했다. 돌의 결이 보였다.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바람의 방향까지 알 수 있었다. 풀이 왼쪽으로 쏠리고 있었으니 바람은 오른쪽에서 불고 있었다. 훈련 시뮬레이터에서는 풀이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서는 움직였다. 진짜 풀이었다. 진짜 바람이었다.


길이 있고 나무가 있었다. 나무 그림자가 땅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1월의 낮은 햇빛이 비스듬하게 들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멀리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사람이었다. 작았다. 화면 안에서 점 하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카엘은 줌을 당겼다. 천천히. 줌 다이얼이 손가락 아래에서 돌아갔다. 약간 뻑뻑했다.


배낭을 멘 남자였다. 비슷한 또래였다. 걷고 있었다. 걷는 속도가 일정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줌을 더 당겼다. 고도는 그대로였다. 화면만 당겨졌다.


어깨가 보였다. 배낭 끈이 어깨를 파고들고 있었다. 재킷 천이 접혀 있었다. 약간 오른쪽으로 기우는 걸음이었다. 배낭이 무거운 모양이었다.


더 당겼다. 손이 보였다. 배낭 끈을 잡은 손이었다. 손가락 마디가 보였다. 손등에 핏줄이 보였다. 카엘은 줌 다이얼에서 손을 뗐다가 다시 잡았다. 더 당기면 얼굴이 보일 것이었다. 잠깐 멈칫했다. 훈련 때는 타깃이 실루엣이었다. 사람 모양의 검은 윤곽이었다. 얼굴이 없었다. 손등의 핏줄이 없었다. 어깨가 숨을 쉴 때마다 들썩이지 않았다.


더 당겼다. 목이 보였다. 짧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귀가 보였다.


얼굴이 보였다.


310미터 위에서 얼굴이 보인다는 게 카엘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훈련 때 설명을 들었는데도 실제로 보니 달랐다. 사람이 이렇게 작은데 얼굴이 보인다는 게. 눈썹이 보이고, 입술이 보이고, 턱의 윤곽이 보인다는 게.


“타깃 확인됐어요?”


마렌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엘은 한 박자 늦게 말했다.


“네.”


“확인 응답은 복창으로 해줘요.”


“알겠습니다.”


“다시. 타깃 확인됐어요?”


“타깃 확인됐습니다.”



화면 속 남자가 멈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드론 소음이 들렸을 것이다. 남자의 눈이 하늘을 훑고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뭔가를 찾고 있었다. 못 찾고 있었다.


줌을 한 번 더 당겼다. 눈동자의 움직임이 보였다. 눈 아래 그늘이 보였다. 며칠은 못 잔 것 같은 눈이었다.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카엘은 그 눈을 봤다. 310미터 위에서, 화면을 통해서, 그 눈을 보고 있었다. 조종실의 환기 팬 소리가 들렸다. 모니터의 빛이 카엘의 얼굴에 닿아 있었다. 화면 속 남자의 얼굴에도 빛이 닿아 있었다. 1월의 햇빛이었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1초였는지 3초였는지 몰랐다. 검지가 버튼 위에 있었다. 플라스틱이 손끝에서 데워져 있었다. 훈련 때는 이 순간이 없었다. 목표물이라는 글자가 떴고, 버튼을 눌렀고, 점수가 나왔다. 지금은 글자가 아니라 눈이었다. 못 잔 눈이었다. 하늘을 훑고 있는 눈이었다.


“준비됐어요?”


남자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배낭이 흔들렸다. 카엘의 엄지손가락이 안전장치 덮개를 눌렀다. 빨간 버튼이 드러났다.


“준비됐습니다.”


카엘이 검지를 눌렀다. 처음이었다. 훈련 때는 빈 화면을 향해 눌렀다. 지금은 사람이 있는 화면을 향해 눌렀다. 검지에 힘이 들어갔다. 버튼이 눌렸다. 짧은 저항이 있었다가 클릭됐다. 그것뿐이었다.



짧고 둔탁한 연사음이 스피커를 통해 작게 들렸다. 조종실 안에서 들으면 스피커의 잡음 같았다. 화면이 순간 흔들렸다. 흙먼지가 솟았다.


남자가 쓰러졌다.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흙먼지가 남자의 얼굴 주변에 흩뿌려지며 화면이 검게 칠해졌다. 카엘은 순간 모니터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을 봤다.


조종실이 조용했다. 환기 팬이 돌고 있었다. 커피 포트가 지직거렸다. 다른 자리에 앉은 사람의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모든 소리가 아까와 같았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카엘의 앞에 있는 화면만 달라져 있었다.


카엘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먼지가 가라앉았다. 남자가 다시 보였다. 움직이지 않았다. 배낭이 옆에 나뒹굴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서 남자의 재킷 자락이 약간 움직였다. 그것뿐이었다. 카엘은 그 장면을 봤다. 카엘이 훈련할 때는 이 장면이 없었다. 버튼을 누르면 점수가 나오고 다음 목표물이 떴다. 지금은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남자는 여전히 누워 있었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마렌이 확인 절차를 진행하는 소리가 들렸다. 키보드 소리. 좌표를 읽는 소리. 시간을 기록하는 소리. 카엘은 드론을 구역 이탈시켰다. 30초를 세지 않았다.


“수고했어요.”


카엘은 컨트롤러를 내려놓았다. 플라스틱이 데워져 있었다. 카엘의 체온이 옮겨져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리가 약간 떨렸다. 마렌이 카엘 쪽을 돌아봤다. 화면에서 눈을 떼고 카엘을 봤다. 2초쯤이었다. 2초가 길었다. 마렌의 눈에 뭔가가 있었다.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기도 했고, 확인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괜찮냐고 묻는 것 같기도 했다. 말은 하지 않았다. 시선이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조종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 공기가 차가웠다. 들어올 때는 몰랐는데 나오니까 찼다. 형광등이 복도를 하얗게 비추고 있었다. 카엘은 잠깐 복도에 서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댔다. 벽이 차가웠다. 콘크리트 벽이었다. 등에 차가움이 전해졌다. 복도 끝에서 다른 군인이 지나갔다. 카엘을 보지 않았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다시 혼자였다.


화장실 문을 밀었다. 형광등이 깜박이며 켜졌다. 타일 바닥이 하얗게 빛났다. 세면대 앞에 섰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이 차가웠다. 손을 씻었다. 비누를 충분히 써서 씻었다. 손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씻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씻었다. 손등을 씻었다. 손톱 밑을 씻었다. 비누 거품이 세면대로 흘러 내려갔다. 다시 비누로 손을 칠했다. 이번에는 손톱으로 손바닥을 박박 긁었다. 피가 약간났다. 물을 멈추고 수건으로 닦았다. 수건에 피가 묻어났다.


거울을 봤다. 거울 속에 얼굴이 있었다. 카엘의 얼굴이었다. 그는 몇 분 더 있다가 화장실을 나왔다.



식당에서 카엘은 저녁을 먹었다.


아까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를 꺼냈다. 포장을 뜯었다. 비닐이 바스락거렸다. 옆 테이블에서 군인 두 명이 수프를 먹고 있었다. 한 명이 웃으면서 뭔가 말했다. 다른 한 명이 손을 저었다. 일상적인 대화였다. 카엘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식당에는 다른 군인들이 있었다. 트레이를 들고 줄을 서고, 앉아서 먹고, 일어나서 나갔다. 카엘은 그 사이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오늘 같은 일을 한 사람이 있는지 카엘은 알 수 없었다. 얼굴만 봐서는 알 수 없었다.


한 입 베어 물었다. 햄 맛이 났다. 치즈 맛이 났다. 빵이 약간 눅눅했다. 아침에 냉장 칸에서 꺼낸 것이라 아직 차가운 데가 있었다. 짜기도 했다. 여러 가지 맛이 섞여 있었는데 그중에서 짠맛이 가장 오래 남았다. 다른 맛은 씹으면 사라졌지만 짠맛은 삼킨 뒤에도 혀 뒤쪽에 남아 있었다.


카엘은 씹으면서 창밖을 봤다. 창밖에는 주차장이 있었다. 가로등이 주차장을 비추고 있었다. 해가 이미 져 있었다. 1월의 해는 빨리 졌다. 아침에 출근할 때도 어두웠고, 퇴근할 때도 어두웠다. 빛이 있는 시간은 조종실 안에서 보냈다. 조종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다 먹었다. 빈 포장지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집으로 가는 길에 카엘은 라디오를 켜지 않았다. 오는 길에 들었던 뉴스가 아직 틀어져 있을 것 같았다. 틀어져 있지 않더라도 비슷한 내용이 나올 것 같았다. 자원입대. 용기. 헌신. 도로는 비어 있었다. 아침과 달리 막히지 않았다. 가로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차 안을 스쳐갔다. 핸들을 잡은 손이 떨리지 않았다. 떨려야 하는 건지 아닌지 카엘은 몰랐다. 손은 그냥 핸들 위에 있었다. 아침에 올 때와 같은 손이었다.



집에 들어와 카엘은 불을 켰다. 침대와 책상과 작은 부엌. 커튼은 걷어져 있었다. 현관에서 모든 것이 한눈에 보였다. 오늘 아침 나갈 때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침대 위에 이불이 그때 벗어놓은 그대로 있었다. 싱크대 위에 어젯밤 씻어 놓은 컵이 엎어져 있었다. 신발을 벗었다. 군화 밑에 흙이 묻어 있었다. 기지 주차장에서 묻은 것이었다.


창가에 화분이 있었다. 카엘 자신이 산 것인지 입주할 때부터 있던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흙이 말라 보였다. 물을 줘야 할 것 같기도 했다. 나중에, 하고 생각했다.


카엘은 씻었다. 뜨거운 물로 씻었다. 물이 어깨를 때렸다. 뜨거운 물이 피부를 데웠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좁은 욕실을 채웠다. 식당에서 남은 짠맛이 입 안에 아직 있었다. 입을 헹궜다. 물을 삼키지 않았다. 뱉었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옷을 입었다.


침대에 누웠다. 이불이 차가웠다. 1월의 이불이었다. 몸을 웅크렸다. 체온이 이불에 옮겨지기를 기다렸다. 방 안이 조용했다. 시계 소리만 들렸다. 똑, 똑, 똑.



눈을 감았다.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윤곽이 생겼다. 아무것도 없는 천장이었다. 페인트가 약간 벗겨진 곳이 하나 있었다. 입주할 때부터 있던 것이었다.


남자의 눈이 떠올랐다. 하늘을 훑던 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못 찾고 있었다. 찾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카엘은 그 생각을 하다가 멈췄다. 찾았어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310미터 위에 있는 것을 맨눈으로 찾을 수 없으니까. 찾았어도 도망칠 수 없으니까. 그걸 알면서 왜 하늘을 봤을까.


다른 것을 생각하려 했다. 오늘 아침 라디오. 정문 포스터. 어머니 목소리. 편의점 유리창의 손 글씨. 별이 세 개였다. 노란색과 빨간색. 누군가의 아들이 어딘가에 배치되어 있었다. 카엘처럼.


다시 그 눈이 떠올랐다.


뒤집어 누웠다. 이불이 다리에 감겼다. 풀었다. 다시 누웠다. 옆으로 누웠다. 벽이 보였다.


냉장고의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웅, 하고 켜졌다가 잠잠해지고, 다시 웅, 하고 켜졌다. 그 사이사이에 시계 소리가 들렸다. 윗집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멀리 들렸다. 누군가가 아직 깨어 있었다.


일어나서 불을 켰다. 형광등이 깜박이다 켜졌다. 방이 밝아졌다. 눈이 부셨다.


배치 전날 받아둔 훈련 교범을 책상에서 꺼냈다. 펼쳤다. 읽었다. 읽히지 않았다. 글자가 눈을 지나갔지만 머리에 닿지 않았다. 그래도 눈을 움직였다. 페이지를 넘겼다. 장비 제원, 운용 절차, 교전 규칙. 교전 규칙이라는 단어 위에서 눈이 멈췄다. 읽었다. 읽히지 않았다. 맨 뒤까지 갔다.


별첨 A 비고.

신규 배치 인원의 적응 기간은 통상 2주에서 4주로 본다. 해당 기간 중 발생하는 심리적 반응은 정상 범주에 해당하며, 별도의 보고 의무는 없다.


정상 범주. 카엘은 그 단어를 두 번 읽었다.


교범을 덮었다.


화장실에 갔다. 불을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변기 뚜껑 위에 앉았다. 타일 바닥이 발밑에서 차가웠다. 잠깐 있었다. 1분인지 5분인지 모르겠다. 나왔다. 세면대에서 물을 틀었다. 입을 헹궜다. 짠맛이 아직 남아 있었다. 거울은 보지 않았다.


침대로 돌아왔다. 누웠다. 불을 껐다. 다시 어두워졌다. 천장의 페인트 벗겨진 곳이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눈을 떴다. 핸드폰을 들었다. 새벽 1시였다. 화면의 빛이 눈을 찔렀다. 알림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였다. ‘잘 됐니?’ 카엘은 답장을 쓰려다가 내려놓았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몰랐다. 눈을 감았다. 눈을 떴다. 핸드폰을 들었다. 1시 47분이었다. 어머니의 메시지가 아직 읽지 않음 상태로 남아 있었다. 내려놓았다.


다시 훈련 교범을 펼쳤다. 불을 켰다. 처음부터 읽었다. 읽히지 않았다. 그래도 읽었다. 페이지를 넘겼다. 또 넘겼다. 글자가 눈앞을 지나갔다. 교전 규칙. 민간인 식별. 교전 후 절차. 단어들이 눈앞을 흘러갔다. 의미가 닿지 않았다. 드론 운용 인원 배치 절차 제7조. 처음으로 돌아와 있었다.


교범을 무릎 위에 놓은 채 벽을 봤다.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벽. 시계가 똑, 똑, 똑, 울리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3시 22분이었다. 내려놓았다. 교범을 다시 들었다.


창 너머로 하늘이 아주 천천히 밝아지고 있었다. 남색이 회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회색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새소리가 한 번 났다. 시계가 똑, 똑, 똑, 울리고 있었다.


날이 밝았다.


밤을 샜다.

다운로드.png
이전 03화03화_“그중에 셋은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