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화_눈을 감았다. 잠이 왔다. 오늘 밤은 빨리 왔다

D+490

by 이아진 leeAjean

눈을 감았다.


잠이 왔다. 오늘 밤은 빨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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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90.



토요일이었다.


알람이 울리지 않는 아침은 상쾌하다. 햇빛이 커튼 틈으로 들어와 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다. 평일에는 이 빛을 본 적이 없었다. 늘 해 뜨기 전에 나갔으니까.


빈둥거리다 늦게 일어났다. 몇 시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침대에서 나와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었다. 물병과 유통기한이 이틀 지난 우유가 있었다. 물을 마셨다. 싱크대 위에 어제의 냉동 피자 용기가 그대로 있었다. 치우지 않았다. 창밖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평일에는 커튼을 열지 않았다. 오늘도 열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아무 옷이나 입었다. 군복이 아닌 옷을 입는 건 일주일에 이틀이었다. 옷장에 사복이 많지 않았다. 검은 긴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낯설었다. 낯설다기보다 익숙하지 않았다.



토루빈한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젯밤에 온 것이었다.


[내일 저녁 우리 집 ㅋㅋㅋ 치킨 텐더 시킬게. 마렌도 온대]


답장을 보냈다.


[좋아 갈게]


하루가 길었다. 아무 일도 없는 토요일이었다. 소파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보다가 내려놓고, 다시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창밖을 봤다. 11월의 오후는 빨리 어두워졌다. 4시가 넘으면 이미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어 차에 탔다. 시동을 걸었다. 조수석에 선글라스가 놓여 있었다. 여전히 같은 자리였다. 먼지가 얇게 앉아 있었다. 히터를 켰다. 차 안이 데워지는 동안 핸들 위에 손을 올려놓고 기다렸다. 해가 지고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 너머로 하늘이 주황색에서 남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토루빈의 집은 기지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라루시 시내 외곽의 아파트 단지로, 건물 외벽이 회색이었고, 주차장 입구에 항상 같은 노란색 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 차의 주인을 본 적은 없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시내에서 축제를 하는 모양이었다. 오는 길에 한쪽 도로가 막혀 있었고, 가로등에 깃발이 걸려 있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7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복도 끝에서 토루빈이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실내복 위에 패딩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복도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이미 퍼져 있었다.


“왔어? 기다렸잖아, 빨리 들어와.”


“미안, 시내가 막혔어. 축제인가 봐.”


“빨리 들어와.”


집 안으로 들어갔다.


토루빈의 집은 원룸보다 약간 큰 구조였다. 좁은 거실에 2인용 소파와 낮은 테이블이 있었고, 그 너머로 작은 부엌이 보였다. 벽에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커튼은 베이지색이었고 약간 짧아서 창틀 아래가 조금 보였다.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서면 바닥 난방의 온기가 발바닥에 올라왔다. 조종실의 건조한 난방과는 다른 온기였다. 부드럽고 느린 열이었다. 양말 밑으로 온기가 스며들었다.


테이블 위에 치킨 텐더와 맥주 캔이 여섯 개 놓여 있었다. 텐더 상자에서 기름 냄새가 올라왔다.


마렌이 이미 와 있었다.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사복 차림이었다. 검은 니트에 회색 바지. 군복이 아니면 마렌도 평범해 보였다. 캔을 흔드는 소리를 들어보니 반쯤 마신 것 같았다.


“일찍 왔네.”


내가 말했다.


“걸어오는 길이 가까워서.”


마렌이 말했다. 마렌의 아파트는 이 단지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이었다.


나는 소파 반대편 바닥에 앉았다. 쿠션이 하나 있어서 그 위에 자리를 잡았다. 바닥이 따뜻했다. 벽에 등을 기댔다. 벽도 약간 따뜻했다. 토루빈이 냉장고에서 맥주 캔을 꺼내 건넸다.


“뜯어.”


캔을 땄다. 거품이 살짝 넘쳐서 손등으로 닦고 텐더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한 껍질이 부서지면서 기름이 입안에 퍼졌다. 짠맛이 났지만 기름기가 섞인 짠맛이었다. 따뜻했다. 갓 튀긴 건 아니었지만 온기가 남아 있었다.


토루빈이 맞은편 바닥에 앉으며 말했다.


“일단 건배.”


셋이 캔을 가볍게 부딪혔다. 딸깍 소리가 났다. 마셨다. 차갑고 쓴 맛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토루빈이 “아” 소리를 내며 캔을 내려놓았다. 마렌은 소리 없이 마셨다.


토루빈이 텐더를 뜯으며 말했다.


“여기 텐더 맛있지 않아? 우리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집이야.”


“음, 괜찮네.”


“괜찮네? 괜찮은 게 아니라 맛있는 거라고. 좀 더 열정적으로 반응해줄 수 없어?”


“음, 맛있어.”


“그렇지? 그거면 돼.”


토루빈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텐더를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입 주변에 기름이 묻었다. 마렌이 말했다.


“소스 더 있어?”


“아, 잠깐만.”


토루빈이 일어나서 냉장고를 뒤졌다. 냉장고 안이 잠깐 보였다. 맥주 캔과 물병, 그리고 거의 비어 있는 선반. 머스터드 소스를 찾아서 던졌다. 마렌이 한 손으로 받아서 뚜껑을 열었다. 익숙한 동작이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먹기만 했다. TV는 꺼져 있었다. 화면에 방 안이 어둡게 비쳤다. 셋의 윤곽이 흐릿하게 보였다. 토루빈이 바닥에 앉아서 다리를 뻗고, 마렌이 소파에서 약간 앞으로 숙이고, 내가 쿠션 위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모습. 아무도 TV를 켜자고 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바람 소리가 가끔 들렸다. 바람이 창문을 때릴 때마다 유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스피커에서 기타 소리가 계속 흘렀다.


토루빈이 두 번째 맥주를 땄다.


“근데 나 어제 진짜 황당한 일 있었어.”


마렌이 텐더를 뜯는 손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또?”


“들어봐. 아침에 일어났는데 알람이 안 울린 거야. 확인해보니까 오전 7시로 맞춰야 하는데 오후 7시로 맞춰놓은 거야.”


“그래서?”


“늦었지. 근데 신기한 게 딱 맞춰서 일어난 거야. 몸이 알아서.”


나도 그랬다. 알람이 없어도 같은 시간에 눈이 떠졌다. 오늘 같은 토요일에도 평일과 비슷한 시간에 깼다. 몸이 기억하는 것이었다.


“운이 좋았던 거야.”


“그게 아니라 내 몸이 시계라는 거지.”


“시계면 알람을 제대로 맞추겠지.”


토루빈이 웃었다. 소리 내서 웃었다. 토루빈은 늘 그랬다. 남의 말에도 잘 웃고, 자기 말에도 잘 웃었다. 웃을 때 눈이 거의 감겼다. 입이 크게 벌어졌다. 조종실에서 그런 식으로 웃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고 텐더를 소스에 찍어 먹었다. 토루빈이 스마트폰을 꺼내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하더니 음악을 틀었다. 작은 스피커에서 기타 소리가 흘러나왔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노래였다. 보컬이 낮은 목소리로 뭔가를 읊조리고 있었다. 볼륨은 낮았다.


“이 노래 알아?”


“몰라.”


“최근에 꽂혔어. 계속 듣게 되더라고.”


마렌이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캔을 입에 대고 천천히 마시면서.


“나쁘지 않네.”


“그치?”


노래가 끝나고 다음 곡이 나왔다. 비슷한 분위기였다. 기타와 낮은 목소리. 가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나도 귀를 기울여봤다. 멜로디는 단순했고, 기타 한 대와 목소리뿐이었다. 간소한 음악이었다. 장비도 사람도 최소한으로 줄인 음악. 그래서 듣기 편했다. 음악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채우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셋이 또 먹었다. 음악이 흘렀다. 찌그러진 캔이 쌓여갔다. 토루빈은 기본 텐더를 좋아했고, 마렌은 소스에 찍어 먹는 쪽을 좋아했다. 나는 아무렇게나 먹었다. 뭘 고르든 같은 맛이었다. 손가락에 기름이 묻었다. 휴지로 닦았지만 기름기가 남았다. 손가락 끝이 미끄러웠다.


토루빈이 말했다.


“카엘, 너 술 더 마셔. 맥주 많아.”


“응.”


캔을 하나 더 땄다. 두 번째 캔의 맥주는 첫 번째보다 덜 차가웠다. 별로 취하지 않았다. 요즘은 잘 취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맥주 두 캔이면 얼굴이 빨개졌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러지 않게 됐다. 세 번째 캔을 땄다. 마렌이 두 번째 캔을 다 비우고 세 번째를 열지 않았다. 토루빈이 세 번째를 열면서 말했다.


“마렌은 두 캔이 딱이야?”


“충분해.”


마렌은 늘 두 캔에서 멈췄다. 더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마렌이 휴지로 입에 묻은 기름기를 닦으며 말했다.


“나 슬슬 가야 할 것 같아.”


“벌써?”


“내일 새벽 장교들 점검있어.”


마렌은 그렇게 말할 때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이유를 말하고 끝이었다. 토루빈도, 나도, 그게 익숙했다.


“어쩔 수 없지.”


토루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았다.


“너는?”


나를 봤다.


“같이 나갈게.”


마렌은 손을 물티슈로 닦았다. 꼼꼼하게,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다 닦고 나서 잠깐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1초쯤. 손바닥을 폈다가 다시 접었다. 물티슈를 접어서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토루빈은 더 붙잡지 않았다. 그가 좋은 점이 그거였다. 가겠다고 하면 보내줬다. 이유를 묻지 않았고, 다음을 약속하지도 않았다. 떠나도 된다는 걸 알면, 오히려 있고 싶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신발을 신었다. 현관이 좁아서 한 명씩 신어야 했다. 마렌이 먼저 신고 나가서 복도에서 기다렸다. 복도에 형광등이 하나 켜져 있었다. 빛이 약간 깜박거렸다. 내가 신는 동안 토루빈이 문을 잡고 있었다. 문틈으로 기름 냄새가 복도까지 흘러나왔다.


“조심히 가.”


“어. 잘 자.”


엘리베이터를 탔다. 마렌과 나, 둘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이 좁았다. 거울이 한쪽 벽에 붙어 있었다. 거울 속에 둘의 모습이 비쳤다. 나는 바닥을 봤다. 마렌은 층수 표시를 봤다. 아무 말이 없었다. 숫자가 줄어들었다. 7, 6, 5. 기계 소리만 들렸다. 맥주와 기름 냄새가 옷에서 났다. 4, 3, 2. 1층에서 문이 열렸다. 로비의 찬 공기가 밀려들었다.


마렌이 먼저 나갔다. 밖 공기가 차가웠다.


“조심히 가.”


“너도.”


마렌이 고개를 끄덕이고 걸어갔다. 패딩 점퍼의 등이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잠깐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걸음이 일정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앞만 보고 걸었다. 마렌은 항상 그렇게 걸었다.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나는 주차장으로 갔다.



차에 탔다. 시동을 걸고 히터를 켰다. 차 안이 데워지는 동안 핸들을 잡고 그냥 앉아 있었다. 조수석 선글라스가 가로등 불빛에 잠깐 반짝였다. 렌즈에 먼지가 앉아 있는 것까지 보였다. 오는 길에 막혔던 시내를 다시 지나야 했다.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도로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불빛과 웃음소리가 차 안까지 스며들었다. 노점에서 무언가를 굽는 냄새가 났다. 환기구를 통해 들어온 냄새였다.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 창문을 닫았다. 라디오를 켜지 않았다.


축제의 소리가 멀어지고, 다시 엔진 소리만 남았다. 시내를 빠져나오니 도로가 비어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차 안을 스쳐갔다.



집에 도착해서 신발을 벗고 소파에 앉았다. 거실이 조용했다. 토루빈의 집에서는 음악이 나오고 있었고, 토루빈이 웃고 있었고, 기름 냄새가 났다. 여기에는 아무 소리도 아무 냄새도 없었다. 난방이 꺼져 있어서 공기가 서늘했다. 리모컨을 찾아서 보일러를 켰다. 바닥이 데워지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스마트폰을 봤다. 토루빈이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즐거웠어 ㅋㅋㅎ 플레이리스트는 나중에 보내줄게]


답장을 보냈다.


[응. 고마워. 잘 자.]


보낸 다음 잠깐 화면을 봤다. 토루빈이 읽었다는 표시가 떴다. 추가 답장은 오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니 화면이 어두워졌다. 거실도 어두웠다. 조명을 켜지 않았다. 창밖 가로등 불빛이 커튼 틈으로 들어와 바닥에 줄을 그었다.


씻고 침대에 누웠다. 이불이 차가웠다. 몸을 웅크렸다가 펴고, 다시 웅크렸다. 이불이 체온에 데워지기를 기다렸다. 토루빈의 집 바닥은 따뜻했다. 여기 바닥도 이제 데워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불 속에서는 알 수 없었다.


천장을 봤다. 하얀 천장이었다. 금이 하나 가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볼 때마다 같은 자리에 있었다.


오늘 한 일을 생각했다. 치킨 텐더를 먹었다. 맥주를 마셨다. 음악을 들었다. 토루빈이 웃었고, 마렌도 피식 웃었다. 마렌이 물티슈로 손을 닦고 잠깐 자기 손을 봤다. 그 1초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좋은 저녁이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려 했다. 판단이 되지 않았다. 나쁘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잠이 왔다. 오늘 밤은 빨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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