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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작

위태로운

by 이찬

이롭지 아니하게 하거나 손상을 입힘. 또는 그런 것.

‘태양’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대강 초등학생 무렵이었다. 용돈을 따로 받지 않는 나는 동생과 상의를 했다. 우리만의 책을 만들어 선물하자고. 둘이서 만들어 나간 동화 같은 이야기는 내게 좋은 기억 중 하나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글을 쓰는데 관심이 커졌다. 집에는 나만 읽는 책들이 벽을 한가득 매울 정도였다.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이 나면 서랍 한 구석에 있는 책을 꺼내어 읽곤 했다. 방과 후에는 도서실에 남아 관심 있는 책을 읽었다.

내가 이 외에 관심 있는 건 영상이었다. 화면 속에 비치는 저 광경들. 그것을 완성하는데 뒷받침이 될 사람들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애니보단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봤다. 만화보다는 소설과 에세이를 가까이했다. 이게 내 시작일 것이다.


나의 중학교 시절, 장래희망에는 작가라는 이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희망은 공무원이나 아나운서 같은 바르고 안정적인 직장이었다. 어려서일지 몰라도 나는 돈이 중요치 않았다. 내 꿈이 중요했다. 내 행복이 우선시되었다. 그렇게 나는 학교에서 많은 책을 읽었다. 소설을 재해석하는 과제에서는 손에 꼽히기도 했다. 글을 쓰는 과제나 행사, 또는 대회가 있으면 모조리 참가했다. 그 성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글을 쓸 기회가 하나라도 더 있음에 기뻐했다.

장래희망에 관련된 책을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방송 작가의 에세이를 들고 왔다. 거기엔 꽤나 잔인한 문장들도 많았다. 급여가 적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사람, 밤을 새우며 일을 해도 성과가 모자란 사람. 나는 그런 잔인한 현실을 마주하는 글을 읽었다. 그럼에도 설레었다. 그저 두근거릴 뿐이었다. 얼마나 돈이 안 되는 지도 알게 되었고 얼마나 노력을 요하는지도 알게 되었음에도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


차근히 내 꿈을 키우니 어른에 가까워졌다. 이 문턱만 지나면 어른이 될 거라는 압박감이 몰려오는 고등학생. 대입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3년을 버티는 그런 곳. 그게 싫었다. 내가 바라는 길은 꼭 대학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글을 배울 학원에 다니고 싶었다. 오히려 내가 가고 싶은 길은 그런 것이었다. 우리 집이 방해할 수 없는 학교 안에서 난 선택을 했다. 내 꿈을 향해서. 우연인지 필연인지 참 다양한 동아리가 있었다. 이곳 교랑고등학교는 뮤지컬과 연극 동아리는 물론 단편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동아리까지 있었다. 오히려 선택지가 너무 넓어 고민하는 일이 생겼다. 난 미디어 속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 영화 동아리를 들어갔다. 지원부터 면접까지 정말 심장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내가 바라는 꿈으로 한 발짝 내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당연히 오산이었다.


' 그래. 한 번은 그거 해. 근데 그게 성적에 도움이 되니? 그 기록에 대학에 무슨 도움이 돼? 내가 병원에서 보니까 방사선사가 그렇게 좋다더라. 너 사람 싫어하잖아. 사람 마주칠 일도 없고 좋아. 그거 해. 네가 좋아하는 건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취미로 해. 그럼 되잖아. '


내 의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결정이었다. 부모라는 사람은 참 나를 모른다. 나는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리고 돈은 내 꿈을 방해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강경하게 나가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저 순응해야 한다. 바라는 대학, 바라는 학과에 진학해 바라는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어야 할 것이다. 그게 내 미래다.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밖을 바라봤다. 다시 머릿속에 파도가 일었다. 여기서 내가 문을 열고 뛰어내린다면 다칠까. 저 고가를 넘어서 떨어지면 다칠까. 거친 파도 속에 잠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눈을 감고 파도에 몸을 맡기고 서서히 잠기는 것. 그게 다였다.


1년이 지나 2학년이 된 나는 다음 수능은 나라는 압박을 더욱 받았다. 내 성적을 본 부모는 소리쳤다. 이런 성적이라면 차라리 위탁 교육을 가서 기술을 배우라고. 공장에나 들어가서 지금부터 일하라고 말했다. 방에 들어가 조용히 살펴본 성적은 그리 낮지 않았다. 그저 공부에 대한 열등감에 파묻혀 나를 채찍질할 뿐이다. 그렇게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생활이 펼쳐졌다. 매일 인강을 듣고 학원을 다니고 문제집을 푸는 생활. 이 집에서 나는 공부하는 사람으로도 취급받지 못하는 듯하다.

이 와중에도 내 탄생일은 돌아온다. 찌는듯한 더위에 마주한 생일은 시렸다. 다 터뜨릴 듯 싸운 게 겨우 그제. 더 이상의 반항할 힘도 없이 하루종일 강의만 들었다. 저녁 무렵 내 앞에는 케이크 하나가 놓였다. 더위가 무색하게 차가웠다.


' 야,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빌어. 됐지? '

그 흔한 축하 노래조차 없이 흔들리는 불꽃을 바라봤다.

' 지옥을 벗어나게 해 주세요. 제발. '


나의 꿈이 짓밟히던 18살, 벗어났다. 집에서 무시받던 축제 날이었다. 도망쳐 나왔다. 모든 연락을 뒤로한 채 내가 유일하게 아는 장소로 떠났다. 어느 대학가. 내가 가장 지리를 잘 아는 곳이었다. 고등학생이 밤까지 지내기에는 꽤나 위험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침 핼러윈이라며 새벽까지 하는 버스킹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수많은 연락이 쌓인 휴대폰을 뒤로하고 즐겼다. 카페에서 엎드려 잠을 청했다. 첫차를 탄 채 외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피곤한 탓인지 그대로 쓰러져 누웠다.

그런 나를 마치 클럽이라도 갈 모양새로 찾아왔다. 달달한 회유도 아니었다. 반쯤 협박에 가까웠다. 노숙자로 나앉을게 아니라면 집에 기어들어오라는 뉘앙스였으니까. 참으로 잔혹하다. 이때의 나는 다짐했다. 원하는 길이든 뭐든 가보겠다고. 대신 이 집에는 돈 한 푼 안 쥐어줄 것이라고. 꼭 어깨를 펴고 당당히 이 집을 나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내 가출이 끝났다.

나의 다사다난한 18살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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