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혼자 바닷가에 앉아 있을 때, 그렇게 부지런히도 움직이는 갯강구가 정답게 느껴졌어. 속으로 불렀지, 갯강구야, 하고. 나쁜 짓 하나 하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너희들을 징그럽다고 끔찍하다고 말해."
엄마는 울어서 붉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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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야.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최은영, 밝은 밤>
독서 공책을 펼치다가 메모해 둔 한 페이지를 옮겨본다.
누군가에게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도 소중한 한 사람이구나! 이 짧은 생각이 나를 휘감아 버렸다. 내가 소중한 한 사람이라면 그도 소중한 한 사람일 거라는 것. 그가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라면 나도 그에게 상처를 준 사람일 수 있다는 것. 우린 서로 다르다는 것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세상에 미운 사람으로 제켜 놓아 버린다는 것. 그저 우린 서로 다르구나, 달라서 힘들었던 거구나, 그렇게 퉁 치면 될 일인걸 너무 외면하고 아파하고 있었구나 싶은 것이다.
바닷가에 가면 방파제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해 질 녘 바닷가에는 종일 햇볕에 달궈진 바위가 있다. 특히 여름 오후, 바닷바람과 태양에 익은 바위에 엉덩이를 대고 앉으면 내 안에 평화가 깃든다. 몸과 마음으로 번져가는 자연의 온기, 태양의 기운을 종일 받은 바위가 그 모든 뜨거운 기운을 내 몸 구석구석으로, 발끝 손끝에까지 이양해준다는 느낌이 든다. 그때 우르르 달려가는 시커먼 벌레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수가 만만치 않다. 그 벌레가 갯강구다. 갯강구만 없으면 천국일 텐데 중얼거릴 때가 많다. 우글우글 우르르 기어 다니는 자태는 너무 징그럽고 끔찍해서 바라보는 것조차 버겁다. 그런데 갯강구가 바닷가 돌 틈이나 방파제에 살면서 해변을 청소하는 일을 한단다. 내겐 혐오스러워도 자연에겐 더없이 좋은 벌레. 해변을 청소해주는 벌레라고 하니 결국 나에게 이로운 벌레가 아닌가.
나에게 상처를 준 그도 갯강구다. 거기에 내 마음이 머물렀다. 그래 더불어 사는 거다. 이로움을 주는 사람, 그렇게 생각하면 사는 것은 그리 어렵진 않을 것 같다. 그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는 것. 갯강구가 답이다.
오랜만에 글을 발행하고, 안부를 남깁니다. 매일 쓰는 일기 올려 놓겠다고 선언해놓고 게으름을 부리고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