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준의‘떠떠떠, 떠’를 읽고
한 문장씩 또박, 또박, 또박또박, 어서….
어떠한 배려도 없이 강압적인 목소리로 선생님은 소리쳤다.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입술을 짓이기며 울고 있는 그때 정적을 깨뜨린 것은 성공한 책 읽기가 아니라 붉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자아이가 책상을 넘어뜨리고 교실 바닥에 쓰러진 일이었다. 책을 읽으라고 강하게 질책하던 선생님과 병신, 더듬이, 장애인 같은 말로 조롱하던 아이들 틈에서 수치심보다 더듬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기를 갈망했던 아이. 그때 창문 쪽을 향해 서 있던 말더듬이를 안타까이 바라보던 한 아이는 별안간 몸을 비틀며 교실바닥에 나뒹굴었다.
유원지 군중 속에서 손을 잡고 걷고 뛴다. 키스하고 나뒹군다. 세상 속에서 은둔하는 한 방식으로 탈 속에 숨어들었다. 간질로 몸이 뒤틀리고 바닥을 뒹굴지만 사람들 눈에는 그런 판다가 귀엽게만 보인다. 사자는 사람들에게 포효하는 것 같지만 판다 주변에서 사람들의 배려 없는 손길에 판다를 보호 한다. 이제껏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본 적이 없는 두 사람, 결함을 가진 두 남녀는 어둡고 눅눅하고 답답한, 깊은 슬픔의 통로를 걷지만 그곳에서는 당당하다. 그들은 연인이 됐다. 털어낼 수 없는 결핍도 능력이 되었다. 불을 끄면 통로는 캄캄해진다. 불을 켜면 환해진다. 그 어두운 통로가 불빛으로 환해지듯 그들의 세계는 완전했다. 균열도 소음도 없었다. 어떤 것도 결핍되거나 과잉되지 않았다. 그곳은 모든 면에서 적절했다. 그들은 깊은 바다 밑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뒹구는 눈 없는 물고기처럼 서로를 만지고 맛보았다. 사자의 탈을 쓰고 판다의 탈을 쓰고. 그 둘은 놀이공원의 마스코트, 사자와 판다가 되었다.
직접 말해줘. 네 말을 듣고 싶어.
괜찮으니까, 더듬어도 되니까, 그러니까, 그냥 말로 해.
한 글자 쓰고 다음 글자를 쓰면 파도가 밀려와 지워내듯 글자가 지워지는 손가락 글씨로 사자는 판다의 등에다 글씨를 쓴다. 사랑해, 라고. 그런 사자에게 판다는 말한다. 더듬어도 되니까 그냥 말로 하란다. 그건 어떤 상황으로 변해도 이해할 수 있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는 의미이다. 둘 사이의 벽은 이미 허물어졌으니 그 어떤 것도 용서가 되고 이해가 된다는 바로 그런 의미였다. 음성은 끊어졌고 단어는 분절되고 해체된, 그의 언어는 조각조각 나뉘고 찢겨 있었다. 그가 겨우 그녀에게 들려준 말이라곤 떠, 떠, 떠, 밖에 없었다.
그때 갑자기 그녀가 몸을 비틀었다. 눈을 뒤집으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아무 저항 없이 땅으로 추락하는 것들이 갖는 거침없음과 위태로운 속력으로 그녀는 침대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의 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뒹굴었다. 벌거벗은 그녀는 부러져 말라버린 나뭇가지 같았고 산도를 통과하다 결국 사산되어 바닥에 떨어진 짐승의 새끼 같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녀 옆에 무릎 꿇고 앉아 그저 아, 아, 아 소리를 내며 괴로워했다. 볼 수도 만질 수도 도와줄 수도 없는 저 먼 세계에서 그녀는 홀로 싸우고 있다. 나는 그녀의 벗은 몸을 내 옷으로 덮어주고 처음으로 그녀에게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떠, 떠떠, 떠떠, 떠떠떠, 떠, 떠, 아아, 아아아하아아, 아아아, 아, 사, 사, 사아, 아, 아아, 아아아, 라라, 라라라라, 라, 라라라, 아, 아아앙, 해.
고백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는 말할 수 없는 입술과 표현할 수 없는 몸으로 껴안는 무력한 포옹뿐이라던 그가, 발작을 하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들을 수 있도록. 처절하고 어둡고 아프고 막막한 그 순간 손 글씨가 아닌 말로 고백한 그 첫 말은, 사랑해,였다.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데 거창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을 꿈꾸는 말더듬이 남자를 생각한다. 예고도 없이 몸이 뒤틀리고 한 손으로도 쥘 수 있을 것 같은 얇은 목에서 튀어나온 푸른 정맥은 포유류의 발밑에 깔려 몸을 뒤트는 새끼 뱀처럼 쉴 새 없이 꿈틀거리는 간질을 앓는 여자의 자존심을 생각한다. 회생할 수 없을 거 같은 절망의 끝에서 건져 올린 희망이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를 생각한다. 세상을 향한 말더듬이, 예고도 없이 뒤틀리는 간질 환자. 그 어둠의 터널에서 그들은 무엇을 꿈꾸고 살았을까. 살다 보면 왜곡되고 변질되고 더듬거리는, 결핍으로 우리는 모두 살아간다. 불완전한 그들은 마음과 마음을 비추며 희망을 읽고 있었다. 마음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온전함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사랑은 어둠을 밝히는 불빛이 되었다.
사랑에는 그 어떤 허물도 그 어떤 미움도 사라진다는 걸 모를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랑하라 죽도록 사랑하라, 그리해도 짧은 시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치유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세상을 향해 쏟아내는 상처의 언어들은 어떤가. 섬김의 리더십이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며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치유되는 것이라고 사자와 판다는 몸으로 말한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사람이다. 불완전한 사람끼리 서로 보완하며 완전을 꿈꾼다. 감출 수 없는 나약함을 스스로 보듬으며 서로를 허용한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사랑이 사랑을 빛나게 한다. 아프다. 그러나 따뜻하다. 어느새 아릿하고 어느새 시원하고 어느새 깊다.
“내게 장애가 있나? 단어가 입술 사이를 가로막아 산산조각이 난 언어. 끝없이 누수되는 호흡, 치아 사이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말들. 나는 분명 장애가 있지. 타인의 장애를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장애는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오직 확인만 가능할 뿐이지.”
“나는 갑자기 잠이 들어. 그러니까 갑자기 잠이 드는 게 내 병이야. ‘갑자기’라는 시간. 그게 얼마나 무서운 시간인지 너는 모르겠지. 예측할 수도 없고 그래서 대비할 수도 없어. 그 시간은 만나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상황을 고려해주지 않아. 정말, 그저, 갑자기...”
낯설다.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 뒤로 따스함이 밀려온다. 어두운 그늘을 수면 위로 이끌어내고 비단을 짜듯 촘촘하게 이야기를 엮어낸다. 어설픔이 불편함이 낯섦이 직조되어 문장으로 우뚝 선다. 그 문장의 힘으로 불편하고 아프고 어두운 것을 견디게 한다. 소설을 읽어내게 한다.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정용준의 소설을 읽은 느낌이 그렇다. 정용준의 소설의 놀라운 점은 대상에 대한 집요한 묘사로 주어를 충전하는 한편 정체하지 않고 플롯을 진행시키는 서사적 술어를 균형감 있게 사용한다는 데 있다, 고 한 평론가는 말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문장을 이끌어내는 힘을 독자의 시선이 아닌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라고 권하고 싶다. 플롯을 보는 작가의 눈이 되어 어떻게 스토리를 전개하며 문장을 이끌어 가는지 책을 잘근잘근 씹듯이 읽어내기를 권한다.
*‘떠떠떠,떠’는 정용준 소설집 ‘가나/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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