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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gang Jan 08. 2019

아, 좋다

책 읽고 밑줄 긋기


 “ 아 좋다.”


그녀는 창문을 연 뒤 눈을 감았다. 그러곤 잠자코 앉아 노래를 들었다. 그녀의 긴 생머리가 바람에 펄럭였다. 그녀는 운전석을 향해 상체를 기울이며 말했다.

“아저씨, 제가 택시에서 굉장히 좋은 노래를 들었거든요. 완전 감동적인 근데 노래가 끝나기 전에 집에 다 와서 내려야 되는 거예요. 무슨 클래식인가? 처음 듣는 연주곡이었는데 나 그런거 하나도 모르는데, 그래도 좋은 거예요.”

용대는 백미러로 여자의 얼굴을 흘깃거렸다.

“인간들은 참 신기해요. 그런 걸 다 만들어내고.”

이십대 후반쯤 됐을까? 유행을 타지 않는 옷이 단정하지만, 낯빛이 거무죽죽한 걸 봐서 간이 안 좋은 듯했다. 1년에도 몇 번씩 저렇게 만취돼 택시를 타리라. 얼마간 교육받은 여자의 말씨, 그러나 조금 감상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손님. 그래서, ‘세월이 가면’을 잘 불렀다는 그 남자, 간이 나빠 보이는 이 여자의 옛 애인은 잘 지내고 있을까? 어쩌면 한 번쯤 용대가 태운 사내일지도 모르리라. 

“그러니까 제 말은요. 그렇게 우연히 노래랑 나랑 만났는데, 또 너무 좋은데, 나는 내려야하고, 그렇게 집에 가면서, 나는 그 노래 제목을 영영 알지 못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는 거예요.“

용대가 물었다.

“그럼 다 듣고 내리지 그랬어요.”

 그녀는 나이답지 않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런데 감동적인 음악을 들으면요, 참 좋다, 좋은데, 나는 영영 그게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을 거라는, 바로 그 사실이 좋을 때가 있어요."

“……”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이따금 그 아가씨 말이 떠올랐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던 기분이. 어쩌면 명화, 그렇게 잠깐 살고 만 북쪽 여자도 용대에겐 끝까지 제목을 알 수 없는 노래가 아니었을까. 다 듣고 내리지 못한 노래. 생각도 잘 안 나면서 잊을 수 없는 음악 말이다. 명화는 많은 질문을 남기고 떠났다. 용대가 섭섭한 것은, 그녀 역시 자기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 채 가버렸다는 거다.  

 

김애란 단편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중




나의 책 읽기는 밑줄 긋기에서 시작된다.  

밑줄 긋기는 삶의 활력이고 에너지다.


좋은데, 나는 영영 그게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을 거라는, 바로 그 사실이 좋을 때가 있다니,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이따금 그때 그 아가씨의 말이 떠오르는 것. 


삶이 곧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끝까지 알 수 없는 노래 같은 것, 

삶에 정답이 없는데 우리는 늘 언제나 다 듣고 내리지 못한 노래 같은..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봄날의 환한 꽃송이를 대하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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