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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Apr 23. 2022

K방역은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정책입니다

대형 교통사고가 났는데 남들보다 적게 다쳤다고 “성공적으로” 다쳤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필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일 겁니다. 이런 경우 정상적인 사람은 “그만하길 다행이다”라고 표현하죠. 코비드 19 유행시에도 남들보다 적게 다친 국가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동아시아권 국가들이죠. 그런데 이를 두고 정부에서는 끊임없이 “성공적으로” 다쳤다고 자랑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군요. 특히 이웃 국가들과 유사하게 경험한 행운을 두고 우리만의 성공이라고 홍보한다면, 이는 저급한 프로파간다일 뿐입니다. 


아래 그래프는 비슷한 경제 및 의료 수준을 가진 동아시아권 네 국가와 대표적인 서구권 국가인 미국과 영국의 (1) 코비드 19 누적 사망률과 (2) 총 사망자수를 반영한 초과사망을 비교한 그림입니다.  서구권과 비교하면 모든 동아시아권 국가들에서 코비드 19란 감염병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미미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유행 초기부터 우리가 <코로나 배양국>이라고 그렇게나 조롱했던 일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래는 2020년 봄 한국과 일본의 상황에 대한 기사 제목들입니다. 확진자가 되면 사생활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퇴사를 종용당하고 사회적 비난과 혐오의 시선을 견뎌야 했던 한국과는 달리, 그 당시 일본은 죽을 만큼 아파야 검사해주고 능력이 되는데 검사를 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였습니다. 일본과 같은 수준으로 PCR 검사를 제한하면, 다른 어떤 방역정책을 가지고 있던지 간에 광범위한 지역사회 전파가 발생하게 됩니다. 


바이러스 지역사회 전파란 <비가역적 사건>입니다. 한지에 물을 쏟으면 서서히 전체 한지로 물이 다 번져가는데, 무슨 수를 쓰더라도 물 쏟기 전의 상황으로 되돌릴 수는 없죠. 전체 한지로 물이 번져가고 있던 2020년, 세계 최고령국가인 일본에서 서구권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동아시아권의 코비드 19에 대한 높은 저항력을 보여주는 실증적 증거로, 우리나라에서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다는 미명 하에 벌어졌던 그 반인권적이며 폭압적이었던 방역정책들 대부분은 불필요했음을 의미합니다. 



다른 방역정책을 가졌던 한국과 일본의 유행 패턴 비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이 일본의 코비드 19 사망은 유행 전기간을 걸쳐서 분산되어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2년 동안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가 오미크론 변이 출현 후 폭발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감염병 유행시 사망률 정점이 높다는 것은 의료시스템 과부하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당연히 피해야 할 유행 패턴입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오미크론 변이 유행 시작 무렵 3차 백신접종률을 보면, 한국은 60%에 육박했지만 일본은 5% 미만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백신 패스라는 반인권적 제도까지 도입해가면서 백신접종률을 높이는데 사력을 다했던 한국에서 오미크론 유행시 훨씬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사망률 정점이 일본보다 무려 3배 이상 높았다는 점은, 우리나라의 방역 및 백신 정책에 근본적인 오류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지난 2년을 반성하기는커녕, 최근 정부에서 <낮은 치명률>을 두고 다시 K방역 홍보에 돌입했습니다. 정부에서 진정으로 낮은 치명률이 의미 있다고 믿는다면 다시 한번 자신들의 무지함을 드러내는 일이고,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일 목적으로 벌이는 일이라면 사악한 일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동아시아권 4개 국가 중 <가장 높은 치명률>을 가진 국가는 <가장 낮은 누적 사망률>을 보이고 있는 대만입니다. 치명률은 쓸데없는 진단검사를 많이 하면 할수록 낮아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죠. 최소한 국가의 미래를 생각했다면 오미크론 변이 출현 후 더 이상 무증상, 경증 환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검사는 중지했어야 했습니다만, 그들에게는 K방역을 성공으로 포장하기 위한 통계치가 더 절실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도 신천지 사태 때 보여준 우리 사회의 광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광기는 이태원 사태, 광화문 사태.. 그리고 그 후로도 계속 이어졌는데, 그 기저에는 곧 세계 표준이 될 거라고 믿었던 K방역이 존재합니다. 코비드 19와 같이 무증상, 경한 증상자가 많은 감염병을 상대로 하는 K방역은 매우 위험한 정치적 도구로 악용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했다고 봅니다. 저는 TK지역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 정부 지지자였습니다만, 제가 가진 학자적 양심상 그들이 만든 세상을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었습니다. 


지난 2년 반은 결코 과거로 넘길 일이 아닙니다. 처음 겪는 감염병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일도 아닙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도 있습니다만, 방역 정책의 방향성 – 공존할 것인가? 박멸할 것인가?- 을 결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식 정도는 이미 유행 초기부터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권에서 코비드 19와 같은 특성을 가진 바이러스를 상대로 K방역을 무려 2년 이상 유지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합리적 이성이 작동하지 않는 국가임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증거일 뿐입니다. K방역은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정책으로, 지금 시점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지난 2년 반을 철저히 복기하는 일이지 홍보영상을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뿌리는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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