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코비드 19 사태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독특한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단순히 백신 구입이 늦어져서 그런 것도 아니고 확진자수가 줄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유행 시작부터 지금까지 계속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지역사회 전파는 감염병 유행의 루비콘강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한 국가의 방역대책은 지역사회 전파 발생 여부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집니다. 만약 지역사회 전파가 광범위하게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다른 이유들로 인하여 발생하기 전의 방역대책을 고수하고 있으면 감염병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회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그 가파른 비탈길에 서 있다고 봅니다.
감염병 유행시 지역사회 전파 정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노력은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역사회 전파 전에는 전파 억제에 초점을 맞춘 봉쇄전략이 가능하지만, 지역사회 전파가 발생한 후에는 의료시스템 과부하 방지에 초점을 맞춘 완화 전략으로 바꿔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완화 전략 하에서는 병상과 의료진 확충 그리고 고위험군 보호전략이 핵심이며, 감염되어도 무증상 혹은 경한 증상이 대부분인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국가가 과도한 개입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교과서적인 접근법입니다. 최소한 코비드 19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아직까지 대만과 뉴질랜드를 언급하면서 지금이라도 짧고 굵게 3단계로 가자는 사람들이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미 지역사회 전파가 광범위하게 발생한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런 국가의 사례를 가지고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은 혼란에 더하여 자멸의 지름길입니다. 우리는 지역사회 전파가 발생한 국가들이 선택했던 다양한 방역대책의 결과물을 두고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코비드 19가 대만이나 뉴질랜드와 같은 정도의 대응이 진정으로 필요했던 병인가? 에 대한 논의는 좀 더 시간이 흐른 후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봅니다만..
대부분 서구권 국가들은 지역사회 전파가 발생한 다음 뒤늦게 대응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중 유일하게 정공법을 따랐던 국가가 바로 우리가 그렇게 비난했던 스웨덴입니다. 일본은 엉겁결에 그런 경로를 밟게 된 국가라고 볼 수 있고요. K방역에 익숙해진 우리의 시선으로 볼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맘껏 욕하고 비웃었던 이 국가들의 방역이 실은 지역사회 전파가 발생한 후의 교과서적인 접근법입니다.
지역사회 전파가 발생했던 국가들끼리만 비교해 본다면 스웨덴도 일본도 결코 방역에 실패한 국가가 아닙니다. 마스크도 하지 않고 사회를 열어 두었던 스웨덴의 코비드 19 사망률이 수차례 전면 락다운을 했던 다른 유럽권 국가들의 평균 사망률과 유사하고, PCR 검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일본의 코비드 19 사망률이 개인정보와 사생활 털어 가면서 K방역으로 대응했던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는데 어떻게 실패일 수 있겠습니까? 제가 올린 다른 글들은 읽지 않고, 오로지 이 글만 읽는 분들을 위하여 다시 한번 그래프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지역사회 전파가 시작된 후 건강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바이러스 전파는 막을 수도 없고 막을 필요도 없습니다. 일시적으로는 막을 수 있을지언정, 사람들 간의 접촉이 시작되면 다시 퍼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 사람들이 경험하는 무증상 혹은 경한 증상의 감염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이득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개인에게는 면역계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적으로는 자연감염을 통한 집단면역 수준을 올려주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함으로써 사회경제적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걸 막겠다고 엄청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하여 1년 넘게 대응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향후 반면교사의 사례로 교과서에 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K 방역은 전파 최소화에 목표를 둔 전형적인 봉쇄전략으로 지역사회 전파가 발생하기 전에 주로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최근까지 광범위한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을 부인하면서 K방역으로 코비드 19를 관리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행 초기부터 모르고 지나가는 무증상 감염자가 확진자의 최소 10배 이상이라는 연구결과가 세계 각국에서 발표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우리나라만 예외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인지 참으로 불가사의합니다.
그럼, 우리나라 지역사회 전파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3차 유행시? 2차 유행시? 아닙니다. 저는 대구 신천지 사태가 발생했던 1차 유행 시작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 당시 전수 조사 대상이 된 대구 신천지 신도 만여 명중 절반 이상이 확진자로 분류되었는데, 대부분이 젊고 건강한 무증상 혹은 경한 증상자들이었습니다. 그 직전까지 유행 종식을 이야기했을 정도로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수천 명의 감염자들이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했을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천지 사태 시발점인 31번 확진자가 어디서 누구로부터 감염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은 그물망에 걸리지 않은 여러 명의 다른 31번이 존재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신천지 사태를 개인을 추적하는 K방역으로 대처하면서 확진자수가 급감하는 경험을 합니다. 비슷한 시기 PCR 검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일본에서도 유사한 확진자 수 감소 추이를 보였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치열한 토론이 필요했던 시점이었으나, 방역당국에서는 단순히 K방역의 성과로 해석해버렸죠. 특히 이 때는 유럽권과 북미권 유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로, K방역이 해외로부터 예기치 못한 주목을 받게 되면서 방역에 대한 국민들의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게 됩니다. 거기에 더하여 5월 초 이태원 사태도, 8월 중순 광화문 사태도 K방역으로 가볍게 제압하면서 우리나라에서 K방역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됩니다.
그 와중에 오류로 가득 찬 0.03%, 0.07% 항체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K방역 덕분에 놓치는 감염자 거의 없는 안전한 사회라는 착각을 전 국민이 공유합니다. 또한 K방역이 없으면 우리나라도 유럽과 미국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공포가 대부분 국민들의 뇌리 속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되죠. 일찍부터 동아시아권에서 코비드 19는 그렇게 심각한 감염병으로 볼 수 없다는 다양한 증거들이 나오고 있었으나, 아무도 이를 진지하게 확인하고 싶어 하지 않아 했고 K방역은 그렇게 사회 시스템화 되어 버립니다.
그 부산물로 매일 속보로 발표되는 의미 없는 확진자수와 쏟아지는 재난문자에 일희일비하면서 사회 전체가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 갔지만, 그 누구든 K방역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면 공공의 적으로 몰리는 상황이 됩니다. 지역사회 전파 후 정밀 역학조사는 특정 개인과 특정 집단이 사회적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큰 위험한 정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학조사관 양성이 공공 의대 설립 목표가 될 정도로 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습니다. 대중들은 최신 IT기술에 기반한 역학조사를 통하여 유행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된 집단에 대하여 아낌없는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고, 지자체마다 누가 누가 더 신속하게, 더 광범위하게 역학조사를 하는지를 두고 경쟁하는 양상으로까지 발전해버립니다. 그렇게 보낸 1년의 결과가.. 바로 현재 상태입니다.
작년 2월 말 신천지 사태로 전 국민이 공포에 사로잡혔을 때 “신종 코로나,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건 아닐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는 바람에 무지하게 욕을 먹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그 비유는 크게 틀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권에서 코비드 19 제자리 찾아주기"에서 설명드렸듯, 우리나라에서 코비드 19란 계절성 독감과 다르게 대우할 이유가 없는 감염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정부에서는 일일이 기억할 수도 없는 새로운 방역지침들을 쏟아내고, K방역에 이어 K접종, K회복과 같은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면서 방역을 브랜드화시키는데 여념이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1년이면 충분했습니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더 이상 건강한 사람들을 상대로 방역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할 때가 아닙니다. 하루빨리 고위험군과 진짜 환자에 집중하는 완화 전략으로 선회해야만 그나마 타다 남은 초가삼간이나마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