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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ds Oct 07. 2022

휘청이는 나무

브륵샤아사나(Vrksasana)

요가에는 자연의 이름을 가진 많은 자세가 많은데, 나는 언제나 브륵샤아사나(나무자세)가 의아했다. 나무자세는 한 발로 중심을 잡고 합장한 손을 하늘로 뻗어내는 자세다. 궁금했다. 이게 왜 나무자세지? 내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지표면과 맞닿은 발이 하나라는 것이었다. 한 발로 서면 몸이 흔들거린다. 하지만 내가 아는 나무는 흔들거리지 않는다.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그 자리에 몇십 년, 길게는 몇 천년 동안 견고하다. 나는 나무자세에서 그 강인함을 기대했던 것 같다.


나무자세에 머물며 휘청거리던 어느 날, 아사나를 잘 해내지 못하는 나 스스로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다 문득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의 나무가 떠올랐다. 내가 생각해온 올곧고 단단한 나무도 나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도 나무구나.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유연하게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날 휘청이던 나의 나무도 나무였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나무자세를 할 때 휘청인다. 수련의 시간이 쌓이면 조금은 덜 흔들리게 될 것이다. 결국 내 나무를 견고하게 만들어나가는 것은 나의 수련이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음에 집착할 필요 없다. 흔들리지 않음이 곧 강인함을 뜻하지는 않으니까. 내가 아는 강함은 바람에 휘청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려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거센 바람을 버틴 나무가 그렇듯이 말이다.


울진 산불 현장 (4월 15일, 직접 촬영)

지난봄, 울진에  산불이 났었다. 현장에 급하게 달려간 동료 활동가가 전해주는 이야기사진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산불이 진화된  산불 현장을 찾았다. 숲이었던 그곳에는  채로  죽은 나무가 가득했다. 비명소리가 들리는  같았다. 까맣게 타버려서 살릴  없다고 했다. 숲에서 나는 좋은 냄새와 새소리,  어떤 것도 없었다. 참담한 모습에 아득하던 찰나, 땅에서 올라오는 새싹이 보였다. 산불이 휩쓸고 지나갔지만 그곳에 다시 생명이 움트고 있었다. 야생동물의 똥도 보였다. 안도감이 들었다. 살아있다고 남겨준 흔적에 고마웠다. 자연은, 나무는 이렇게 삶을 살아낸다.


나무 자세를 할 때마다 그때를 떠올린다. 나무가 보여주는 견고함과 유연함의 균형, 어려움을 겪은 후에도 다시 살아내는 힘, 넉넉한 품으로 뭇 생명들을 끌어안는 것. 새나 곤충, 작은 미생물까지 수많은 생명이 나무 한 그루에 기대어 산다. 그래서 나무 한그루는 그 자체로 우주다. 나의 삶이 그런 우주를 닮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이미지 출처 : pexels.com - Anete Lus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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