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마치 Oct 10. 2018

가을을 가장 잘 느끼는 직업

내가 이렇게 날씨에 민감한 사람이었는지



외근직의 장점이자 단점은 날씨에 예민해진다는 거다.


 지금껏 내가 이렇게 날씨에 민감한 사람인지 모르고 살았다. 발령이 난 것이 작년 8월이니 사계절을 빠짐없이 겪은 셈이다. 봄가을은 걷기 좋으나 미세먼지나 가을비로 고생했다. 올여름은 너무 더워서 딱 죽을뻔했다. 겨울엔 어그부츠를 신고 롱패딩을 입고, 내 몸뚱이만 한 백팩을 메고 뒤뚱뒤뚱 걸어 다녔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차를 끌고 다니지만 면허 없는 나는 늘 노트북을 들쳐 메고 걸어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날씨는 너무너무 중요했다.


 때문에 지난 1년간 굳어진 습관 중 하나는 기상하자마자 날씨 어플을 키는 것. 아침에 화장을 하면서 늘 창밖을 살폈다. 추운지 더운지, 밖을 얼마나 걸어 다닐 수 있을지. 점포를 몇 개나 갈 수 있을지, 동선을 어떻게 짜야할지를 머리 속으로 미친 듯이 그리면서.


 학교 다닐 때는 누가 가을이라고 하면 그런가 보다 했다. 가을을 느낄 새도 없이 날들은 금방 추워졌다. 날씨 변화를 잘 못 느끼며 살았다. 이제는 여름 5.5개월 겨울 5.5개월이고 봄과 가을이 0.5개월씩이라는 말들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웃는다. 그 짧은 2주의 가을도 매일매일 피부로 느끼는 일을 하니까.




오늘 연희동의 가로수는 너무 아름답고 하늘은 정말 새파랗더라구.


 가을이 왔다는 건 곧 빼빼로데이가 온다는 뜻이다. 호빵 판매가 시작된다는 뜻이고, 온장고를 채워야 한다는 뜻이다. 겨울에는 이 회사에 없을 테지만,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자동으로 구정 선물세트 슬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았다. 오늘 호빵과 빼빼로 발주를 넣으며 그런 별스런 생각들을 했다.


 와인 한 병 더 팔아보겠다고 길바닥에서 꽁꽁 언 손을 레쓰비로 녹이던 겨울, 수박 몇백통을 나르던 뜨거웠던 여름, 미세먼지 마스크를 여기저기 옮겨대던 봄. 그런 날들이 그 날씨를 만나면 다시금 떠오를까. 또 그리울까.


 다른 직업을 갖게 되면 이렇게 날씨 생각을 안 하며 살겠지. 막상 없을 일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아쉬운 것 같기도 하네.

매거진의 이전글 나쁜 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