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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치 Oct 03. 2018

마음을 폐기하지는 말아요

나까지 폐기하진 말자




『경애의 마음』을 읽는다.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사랑이 끝났다고 마음을 폐기하지는 말아요."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생각해낼 수 있다니, 감탄하면서도 조금 웃었다. 나는 '폐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삼각김밥 폐기부터 생각이 나거든.


 의외로 편의점 회사 직원들은 편의점 알바 경험이 없는 사람이 많다. 나는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편의점에서 일해본 적은 없다. 간혹 친구들에게 물어본 적은 있었지. 폐기 진짜 공짜로 먹을 수 있냐고.




매일매일 폐기를 먹었다.


 인스턴트 음식을 원래 좋아하기도 했고, 신상품은 궁금해서 먹었다. 삼각김밥, 도시락 이런 것들은 온통 MSG 범벅이라 정말 웬만하면 다 먹을만하다. 식비를 아낄 수도 있고, 밖에 나가서 또 사 먹기 귀찮으니 폐기를 먹는 게 익숙해졌다.


 점장을 맡았던 곳은 고매출점이라 폐기가 많았다. 근무자들은 종종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힘들어 폐기를 먹어치우기도 했다. 그들 사이에서 삼각김밥을 까먹으며 내 뱃속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유통기한이 지나 판매 가치가 상실된 것들을 먹어도 탈 안 난다는 이유로 내 안에 쑤셔 넣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울컥하다가도 평범한 일인 척 꾸역꾸역 먹고. 내 속이 폐기로 가득 차는 기분을 느끼며.


 근 반년 동안은 폐기를 거의 먹지 않았다. 간혹 바빠서 편의점 음식을 먹어야 할 때도 유통기한이 많이 남은 상품을 골라 계산하고 먹는다. 똑같은 음식인데도 기분이 그래서. 좀 과격한 표현일 수는 있지만, 나 자신을 폐기 취급하고 싶진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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