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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송 Jun 24. 2024

테오티우아칸

24.05.18_Teotihuacan

위치 : 멕시코시티 (55800 San Juan Teotihuacán, State of Mexico)

설계 : -

준공 : BC 1세기

연면적 : 20 ㎢

용도 : 고대 도시 & 종교시설 (신전 및 제단)


테오티우아칸 태양피라미드 전경 (출처 : Famsf)

멕시코에서 바라간 건물과 함께 꼭 가보고 싶은 곳은 테오티우아칸이었다. 피라미드라는 건물은 위대한 문명의 상징으로서 그 자체로 경외감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도 이집트의 피라미드 못지않게 그 규모가 거대하고 미스터리 한 건물이기에 무척 기대되는 답사였다. 그리고 피라미드의 형태를 제외하면 아는 정보가 전무했기에 이번 답사와 조사를 통해 다양한 측면에서 테오티우아칸을 이해하고 싶었다.

멕시코시티 북부 터미널

테오티우아칸은 멕시코 시티 시내에서 50km 떨어져 있기에 북부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가야 도착할 수 있다. 워낙 유명한 관광지기에 관광객도 많이 있고, 버스도 자주 있어서 가는 길은 크게 어렵지 않다. 버스에서 내려서 티켓을 구매한 후 입장하니 긴 축을 따라 피라미드가 보였다. 축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는 상점이 길게 자리 잡고 있으면서 작은 기념품이나 마실 것을 팔고 있었다. 커다란 피라미드를 향해 15분 정도 넘게 걸어서 도착한 것을 생각해 보면, 그 거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태양의 피라미드 첫 조우

앞서 말했듯이 피라미드의 형태를 제외하고는 아는 것이 없었기에 답사를 하고 글을 정리하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간단히 요약해 보면, 테오티우아칸은 고대 도시를 의미하고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사람이 살았다. 특히 4세기에는 가장 번성한 시기로 인구가 20만까지 늘어나며 메소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해발 2,300m에 지어진 도시 안에 여러 피라미드가 있으며 무덤인 이집트 피라미드와 달리 신전이나 제단의 기능을 하는 종교시설이었다. 하지만 8세기에 갑자기 몰락하면서 아무도 살지 않는 도시가 되었고, 후세 아즈텍인들이 '신들의 도시'라는 이름의 테오티우아칸으로, 각각 피라미드에 '태양의 피라미드', '달의 피라미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먼저 입구에서부터 보였던 태양의 피라미드에 도착하였다. 대략 1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그 규모는 220 x 230m, 높이가 65m에 달하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거대한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 앞에는 4-5m 높이의 제단이 있었고, 그 뒤로 피라미드 계단이 같은 축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현재는 보수공사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피라미드는 오면체라는 기억만 있을 뿐, 계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집트 피라미드는 내부에 미이라를 보관하는 무덤이기에 외부에서는 조형적인 형태가 더 중요했겠지만, 멕시코 피라미드는 신전이기 때문에 하늘과 사람들이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계단과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제단이 더욱 중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피라미드는 기하학적인 사각뿔 형태로, 멕시코 피라미드는 중간중간 수평 단이 생기는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태양의 피라미드 전경

정면을 구경한 후, 제단과 피라미드 기단부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피라미드의 거대함에 계속 놀라면서 동시에 다른 면에 부계단이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살펴보았는데, 정면을 제외한 세 면에는 계단이 없었다. 둘러보다가 놀란 점은 생각보다 작은 돌들이 쌓여 피라미드가 구축된 점이었다. 멀리서 피라미드를 보았을 때 하나의 깔끔한 덩어리가 아니라 작은 점들이 아주 많이 보여서 의아했었는데, 그 이유가 작은 돌들이 쌓여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피라미드를 쌓은 돌이라고 하면 사람 몇 명의 크기를 가진 크기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사람 몸통보다 작은 돌이 쌓여있었다. 작은 돌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멕시코 피라미드는 마치 벽돌을 쌓아 만든 집과 같이 작은 것들이 모여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 조금 확장해 보면, 우리가 건물을 보고 느끼는 추상적인 이미지는 실제로 건물을 구축하는 재료, 구조 등의 물리적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제단 기단부

그리고 피라미드 비탈면에 중간중간 튀어나온 돌들이 인상적이었다. 비탈면을 따라 올라갈 수 있게 만든 손잡이나 발 받침대인가 생각을 해보았지만, 제단의 기능을 생각해 보았을 때 굳이 비탈면으로 올라가고 내려갈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이후 글을 쓰면서 ChatGPT에 물어본 결과 이 돌들은 압력을 견디게 해주는 구조적 역할이거나, 외관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디자인이라는 유력한 설을 이야기해 주었다. 여전히 그 기능은 알 수 없지만 비탈면 전체에 규칙적으로 튀어나온 돌과 그림자에 이유 모를 관심이 향했다.

태양의 피라미드

이렇게 태양의 피라미드를 둘러보고 나서 박물관을 들렀다. 여러 유물과 함께 고대 도시를 복원해 놓은 전시관이 있었다. 전체 모형을 살펴보니 독립적으로 인식되던 태양의 피라미드, 달 피라미드, 그리고 케찰코아틀 신전이 마스터플랜을 통해 중요한 도시축과 랜드마크를 형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몇몇 글을 읽어보면서 테오티우아칸의 역사와 건설시기, 그 목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대 도시 복원 모형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 피라미드, 도시 축)

박물관에서 나와 케찰코아틀 신전으로 이동했다. 이 신전은 규모로 따지면 태양 및 달 피라미드보다 작지만, 후세에 미친 영향으로는 가장 중요한 신이자 제단이다. 케찰코아틀은 "깃털 달린 뱀"을 의미하고, 하늘과 창조의 신으로 여겨졌다. 이 신은 고대부터 메소아메리카의 중요한 상징으로 아즈텍 신화에까지 이어졌다. 실제로 신전을 가보니 태양의 피라미드에는 없던 상징이 돌로 표현되어 있었다. 계단과 단의 입면에 조각되어 있기에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태양과 달이라는 아닌 우주적 존재도 있지만, 용이나 유니콘 같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에 있을법한 동물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신은 인류 전체가 공통적으로 할 수 있는 상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케찰코아틀 신전은 낮지만 유일하게 올라갈 수 있는 피라미드였기에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생각보다 경사가 높고 디딤판이 좁아서 오르내리기가 무서웠다. 그래도 위에 올라가서 고대 도시 모형에서 보았던 것처럼 사람과 집이 있다면 정말 신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케찰코아틀 신전 전경
케찰코아틀 신전과 형상들

케찰코아틀 신전을 둘러보고 나서 마지막으로 달의 피라미드로 향했다. 케찰코아틀은 가장 남쪽에, 달 피라미드는 가장 북쪽에 있었고 그 거리는 2km가 넘어서 30분을 걸었다. 아주 긴 축은 죽은 자의 길(Avenue of the Dead)이라 불리며 도시의 가장 중요한 길이었고, 도로 양쪽으로 집이 즐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멀리서 달 피라미드가 보였고, 그 규모는  150 x 150m, 높이가 45m에 달했다. 여전히 달 피라미드도 중심에 계단과 제단이 놓여있었지만, 태양의 피라미드에 비해 양쪽에 부속 건물이 더 많았다. 태양의 피라미드에는 중요한 기념일에 제사를 드렸다면, 달의 피라미드에는 더 자주 제사를 드렸기에 부속 건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을까라는 개인적인 추측을 해보았다. 멕시코 피라미드가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순수한 조형적인 형태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달 피라미드의 다양한 부속건물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 건물에 더 애정이 갔다. 그리고 크기도 과하게 크지 않아서 편안한 마음도 있었다.

달의 피라미드
달의 피라미드 파노라마

피라미드를 보고 싶다는 단순한 궁금증에서 답사를 떠났지만, 결국 피라미드는 도시의 일부이자 랜드마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전체 도시를 둘러보게 되었다. 그늘도 없는 넓은 면적을 돌아다녀야 했기에 조금 지치기도 했지만 답사와 조사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되었다. 가장 인상 깊은 점은 피라미드가 도시의 랜드마크이자 종교시설(제단)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정도전이 조선시대에 한양을 건설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건설 시기, 숭배 대상, 랜드마크 배치, 형태 등은 문화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근대 이전(종교가 과학과 분리되기 이전)에 종교건물은 도시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요한 요소이자 랜드마크였던 것은 많은 문화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정도전은 한양을 건설하며 좌묘우사로, 테오티우아칸 계획가는 남쪽으로 케찰코아틀, 북쪽으로 달의 피라미드를 배치하며 테오티우아칸을 건설하였다. 즉 세대와 지역을 넘어서서 도시계획가는 랜드마크를 통해 도시 전체를 디자인하였고, 지금도 그 방향성은 유지되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이 이어지며 나와는 전혀 상관없던 테오티우아칸이 인류의 보편적 태도를 담고 있는 문명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넘어선 보편성은 '단순히 같은 지역에 살았던 선조가 아니더라도 인간으로서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참고 도면 및 자료들>

배치도 (출처 : Uncoveredhistory)



#세줄 요약

-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멕시코 피라미드의 차이)

- 물리적 결과로써의 건물 이미지

- 랜드마크를 통한 도시설계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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