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0_Museum of Modern Art
위치 : 멕시코시티 (Av. P.º de la Reforma s/n, Bosque de Chapultepec I Secc, Miguel Hidalgo, 11580, CDMX)
설계 : Ramírez Vázquez y Asociados
준공 : 1964 (설계기간 : 1959-1961)
연면적 : 4,503 sqm
용도 : 미술관 (문화 및 집회시설)
차풀테펙 공원을 돌아보다가 미술관 하나를 발견했다. 현대미술관이라는 간판이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멕시코 국립현대미술관이라고 한다. 국가를 대표하는 미술관이라는 것에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게다가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건축 전시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으로 인해 즉흥적으로 답사를 하게 되었다.
국립 현대미술관은 오디토리움(Auditorio) 역에서 1.5km 떨어져 있어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할 수 있다. 바로 앞에 왕복 6차선 도로가 지나가다 보니 국가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이라는 명성에 비해 그 진입 과정에서 주의가 산만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렇게 도로를 따라 걷다가 입구를 통과하면 전면에 미술관이 보이는데, 이번에는 작은 크기에 한번 더 놀랐다. 한국의 현대미술관을 생각해 보면 미술관 앞의 광장과 규모, 많은 소장품에 놀라지만 이곳은 정말 작은 사립 미술관처럼 보였다. 낮은 층수에 풍성한 오래된 조경수로 인하여 건물이 가려져 더욱 외소해 보였다. 입구에서부터 정돈되고 조용한 진입이 이루어졌다면 현대미술관이라는 명성과 달리 소박하고 자연과 어우러졌다고 평가할 수 있었겠지만, 도로의 난잡함과 소음이 건물의 첫인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역시 건물은 그 자체뿐만 아니라 도시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건물의 첫인상이 결정되는 것 같다.
그렇게 살짝 실망한 상태로 건물 주변을 둘러보았다. 개인적으로 유기적인 형태 건물을 망치는 가장 큰 이유가 디테일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세히 관찰해 보니 국립미술관의 외관이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치 미분을 하는 것처럼 직선의 연결을 통해 곡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 건물이 60년 전에 지어졌기에 곡선 유리라던가 곡선의 느낌을 더 살리는 디테일이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아쉬움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국립 미술관이라는 명성에 비해 진입부터 외관까지 실망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기대를 품고 내부로 진입하려고 입구 축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점점 가까이 가며 노란빛이 눈길을 끌었다.
내부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공간이 나타났다. 입구와 그 뒤로 홀이 위치하였는데, 멋진 계단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노란빛이 미술관 입장객을 반겨주고 있었다. 원형 홀을 따라 한 바퀴 돌면서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독특한 계단의 형태는 홀에 멋진 조형감을 불어넣었고, 2층으로 이동하는 동선의 기능을 하며, 반층 아래에 라운지 공간을 만들어냈다. 계단은 그 기능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데, 조형감과 독특한 공간을 만들어내며 입체적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계단과 주변 벽 마감이 대리석으로 마감이 되어있어 고풍스럽기도 하고, 세로 방향의 마감을 통해 수평적인 건물에 수직적인 개방감을 주었다. 그리고 홀을 따라 방사형으로 나열된 천장 조명은 홀의 형태를 더욱 부각해 주었다.
홀과 계단을 둘러보고 지붕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하여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지붕의 노란빛은 길라르디 주택의 통로에서 본 빛과 유사했다. 유리에 노란 페인트를 칠하여 새로운 분위기의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대미술관의 홀 천창을 통해 이러한 색감이 바라간의 독창적인 창작물이 아닌 멕시코의 문화적 산물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2층에 와서야 보이기 시작했는데, 바닥의 패턴도 주황색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천창에서 들어오는 노란빛이 더욱 부각되었다.
그렇게 중앙 홀을 자세히 관찰하고 나서 전시실로 진입하였다. 전시실에는 전시 칸막이로 인하여 일반적인 내부처럼 보는데, 조금 더 돌아보다가 정말 놀랐다. 전시실에도 중앙에 천창이 위치하고 있었고, 노란 페인트가 칠해진 천창으로 홀에서 보았던 노란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천장 마감이 일반적인 가로형이 아니라 방사형으로 마감이 되며 원형 천창에 더욱 몰입이 되는 디테일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 인상 깊었던 건축은 주로 조형적인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지만, 최근에는 하나의 언어로 공간부터 디테일까지 해석하는 일관성에 놀란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미술관은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미술관 전체에 반복적으로 적용되고 있고, 이를 위하여 바닥, 홀 계단, 천장 마감 등의 디자인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미술관에서 작품은 주인공이며, 건물과 공간은 배경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 공간은 노란빛을 통해 예술 작품이 보이며 공간과 작품이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즉, 이 공간만의 특별한 노란빛이 예술작품과 만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물론 작품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미술관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국립 현대미술관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전시공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2층 전시관도 돌아보았다. 1층 전시관에서는 원형 천장에서 떨어지는 빛 효과를 통한 작품과의 관계설정이 인상적이었다면, 2층 전시관에는 원형 가드레일로 인해 널찍한 전시공간이 만들어지는 점이 인상 깊었다. 원형 전시관의 벽을 따라 전시 작품이 나열되어 있지만, 안쪽으로는 작품을 전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기둥과 원형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마치 가운데에 위치한 전시 작품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입구 반대쪽으로 유리창이 나있어 뒤쪽으로 정원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주로 전시관에서 창은 로비나 휴식공간에 위치하기 마련인데, 전시관 안쪽에 빛이 들어오고 창을 통해 외부를 바라볼 수 있는 점은 반복해서 인상적이었다.
1-2층 전시관을 모두 둘러보고 후문을 통해 야외로 나갔다. 야외는 모두 펜스로 둘러져있어서 미술관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한적한 공원이었다. 야외 전시공간까지 포함하면 미술관은 작지 않은 규모였다. 천천히 걸으며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서 건물 반대편에 있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이라고 적혀있지만, 일부는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고, 일부는 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도서관은 원형 건물로 미술관과 건축적으로 다를 바 없는 디자인이었다. 당연히 도서관 홀도 미술관과 같은 방식으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다만, 천창의 오염 정도는 더 심했는데 이 정도가 되다 보니 이것이 오염인지, 디자인 과정인지 의문스러웠다. 그렇게 도서관까지 답사를 마치고 국립 현대미술관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국립 현대미술관에 처음 진입하며 건물 전체를 조망할 수 없다는 점을 포함하여 여러 면에서 실망하기도 했지만, 내부 홀 디자인, 미술관의 전시 방식에 대하여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특히 미술관이 작품을 위한 배경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유일한 전시공간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은 무척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 중심이 되는 노란빛은 루이스 바라간의 주택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바라간의 독창적인 디자인이 아니라 멕시코의 문화적 산물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술관이 계속해서 사랑을 받고 있고, 초기 계획안과 운영이 잘 유지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좋은 설계안을 넘어 멕시코를 대표하는 국립 현대미술관으로 그 대표성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