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이승우 <사랑의 생애>가 전하는 사랑의 절박함
영석 씨가 처음부터 사랑을 구걸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는 사랑 불감증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왜 사랑을 구걸하는 자가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의 속성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은 행복과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행복을 경험해보지 못한 자는
행복이 언제 오고 언제 갔는지 눈치채지 못합니다.
사랑도 행복처럼 경험해 보지 못한 자는
사랑의 들고나가는 순간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사랑이 떠나간 후에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지요.
영석 씨 또한 사랑을 가까이에서 만져보지 못했고,
사랑의 만져짐에 자신을 내맡겨본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는 부모님의 얼굴조차 기억할 수 없는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그는 이 집 저 집을 오가며 자라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시계방, 신문 돌리기,
학원 건물 청소를 하며 공부한 영석 씨는
백화점 시설부, 보안회사 영업부 직원을 거쳐
서른여섯이 되던 해 한 문학관의 관리자가 되었습니다.
영석 씨는 그곳에서 그녀,
선희 씨를 만났습니다.
매력 없는 것이
매력을 끌 수 있을까요?
영석 씨의 외모는
누군가를 끌어당길 수 있는
최소한의 매력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영석 씨와 처음 만난 선희 씨는
그의 불친절과 무례함에 대해 따지고
사과를 받아낼 생각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영석 씨를 선희 씨는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 안에는 사랑을 시작한 주체가
선희 씨라는 힌트를 담고 있습니다.
이들의 사랑은, 사랑이 어떻게 들어오고 나갔는지를
경험해본 선희 씨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적 같은 일은 넝쿨식물의 이파리들이
손처럼 촘촘하게 뻗어 끌어안고 있던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일어났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페이지의 주인공은 선희 씨가 아닌 영석 씨이기에
그녀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둬야 할 것 같네요.
사랑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영석 씨에게 요구했습니다.
눈이 길에 소복소복 쌓이는 밤이었습니다.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줄래요?
선희 씨의 마음은 너무 투명해서 이미 다 들여다 보였습니다.
그러나 영석 씨는 눈 앞에서 무엇이 빛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사랑의 느낌도, 형체도 경험해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영석 씨가 그녀의 요구에 가장 먼저 한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그 말이 듣고 싶어요?
밤이었고, 눈이 내리고 있었고,
가로등 불빛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눈송이는 그녀의 코트 위에 고요히 내려앉았다가
사그라들고 있었습니다.
사랑해요. 나도
영석 씨가 입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내뱉었다고
그가 사랑을 안다고 섣불리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눈이 내리는 밤 불빛 아래서 영석 씨는,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하고 눈물이 그렁거리는 것 같은,
선희 씨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인 영석 씨는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선희 씨가 요구한 대로 말해주었습니다.
사랑해요. 나도
영석 씨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나온 후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그 말을 듣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도 겨냥"합니다.
영석 씨의 마음에 사랑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내뱉었던 사랑이란 말의 "주술"에 걸렸습니다.
사랑이 그의 몸속에 들어와 버린 것입니다.
그는 이제 사랑을 이겨낼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자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서른여섯이 넘도록 사랑을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남자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영석 씨는 걸핏하면 선희 씨에게 요구했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나에게"
간혹 선희 씨가 장난스럽게 대답하면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뭐야, 성의 없이 적선하는 거야?"하고 항의했습니다.
영석 씨는 끊임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달라고
선희 씨에게 구걸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받아본 적 없고,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해본 경험조차 갖지 못했던 영석 씨의 증상은 이랬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해달라며 계속 구걸하는 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영석 씨는 "넝쿨식물이 넝쿨손을 뻗어 나무의 단단한 몸을 움켜쥐며"
자라나듯이 끊임없이 그녀의 몸을 움켜쥐며 그녀를 가지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 말하려 했던 것은 "너는 내 것이다"가 아닌
"나를 구해주세요"라는 생명을 위한 외침이었습니다.
이제 사랑은 한 남자에게 그것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생존이 되었습니다.
영석 씨와 선희 씨의 사랑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누군가는 이들의 사랑이
건강하지 않은 사랑이라며
비극적인 결론을 예언할 수도 있습니다.
이승우 작가는 소설의 끝자락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는 약한 것이 사랑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것보다 더 큰 잘못은, 사랑에 이르는
수없이 많은 길들에 대해
숙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랑은 어디서 오는가?
어떤 길로 오는가?
혼자 오는가, 누구와 함께 오는가?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여기로 오는 길들이
하나나 둘이 아니기 때문이고,
패턴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어느 길이 옳고 어느 길이 그르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에 등장하는 영석 씨에 대한 이야기는
사랑인가 싶을 만큼 극단적인 듯 보였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의 행동과 말이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어쩌면 그도 영석 씨처럼 사랑 앞에서 어찌할 줄 몰라
울음을 터트리고 싶지만 고집스럽게 참고 있느라
더 어린아이처럼 행동했는지 모릅니다.
다시 책을 펼쳐 들고 영석 씨의 이름이 담긴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왜 저러지"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었구나."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승우 작가는 그렇게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 지도록
한 사람람의 사정과 마음을 섬세하고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들려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