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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Mar 26. 2024

유아 왓츄 잇(You are what you eat)

결국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맛있는 것만 먹고 싶었던 한 때, 음식은 ‘맛’으로 먹는 거라 생각했다. 물론 우리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살기 위해 먹어야 하지만 기왕이면 맛있는 걸 먹는 게 좋지 않은가. 여기서 말하는 맛은 자극적인 맛, 즉 입에 착착 감기는 감칠맛이 되겠다. 기름이 좔좔 흐르는 삼겹살이나, 피자, 햄버거, 라면과 떡볶이, 쫄면은 늘 내가 먹고 싶은 음식 1순위였다. 다행히도 나는 도시의 어린이 입맛은 아니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외갓집 뒷산에서 딴 나물들을 잔뜩 넣은 산나물 비빔밥과, 텃밭에서 딴 상추와, 잎채소들, 가지, 오이, 호박, 토마토들도 좋아했다. 인스턴트를 꿈꾸지만 자연식에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 그야말로 잡식성 인간이었다. 나는 외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참 좋아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친척들 모두 외할머니의 밥상 앞에선 맛있다는 말만을 반복하며 먹기 바쁘다. 무엇을 해도 뚝딱뚝딱 쉽게 만드는데 완벽한 맛을 선보이는 손. 외할머니는 외갓집에 갈 때마다 산나물들과 신선한 채소무침, 된장찌개와 꼬막무침, 삶은 돼지고기 요리를 선보였고 식구들은 그녀가 음식으로 전해주는 사랑을 먹으며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외갓집 밥상, 이제 마주할 수 없을…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을 먹어왔던 어린 시절을 지나, 대학원에 들어가고 자취를 하게 되면서 그제 서야 나는 내가 먹는 것이 어디서부터 오는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요리를 하고 장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음식은 완제품으로 식탁 위에 오르기에 간단해 보이지만 요리라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꽤나 복잡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된장찌개를 끓인다고 해보자. 육수를 우려내고, 호박, 파, 양파, 버섯, 고추를 씻고 알맞은 크기로 썰어낸 다음, 육수 물에 된장을 풀고, 약간의 간장과 고추장을 넣은 후, 준비해 놓은 야채를 넣는다. 두부도 숭덩숭덩 썰어 넣고, 고춧가루도 넣어야 한다. 글로 쓰니 간단한 느낌이지만 매 단계 손을 거치는 일은 결코 간단치만은 않다. 매일 밥상에 올라와 쉬운 줄만 알았던 된장찌개를 만드는데, 이렇게 많은 준비가 필요한 줄 누가 알았단 말인가. 게다가 유튜브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나의 20대에는 이 모든 과정이 글과 그림으로만 정리되어 있어 중간에 생략된 부분은 없는지, 정확한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게 맞는지, 내가 제대로 음식을 하는 게 맞긴 한 건지 늘 의심스러웠다.


  어느덧 주부가 된 나는 이제 웬만한 음식들을 척척 해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때마다 유튜브를 소환하면 되니 큰 걱정이 없다. 오늘은 남편을 위한 도시락으로 마살라 두부 카레와 토마토 버섯 파스타를 준비했다. 물가 비싼 샌프란시스코에서 강제 집밥 요리사가 된 나의 현주소다.


주부가 된 현 주소


  미국에 오기 전, 한국의 한 과학기술대학교에서 근무하던 나는 과학기술 분야의 많은 최신 연구들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가진 건 환경 문제였는데, 왜인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자연과 환경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이 <나무의 노래>에서 말한 ‘생태미학’처럼 어렸을 때부터 산골에서 뛰어놀았던 경험이 체화되어 지구와 생명에 대한 아름다움을 나도 모르게 지각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평소에도 환경과 관련된 많은 책들을 읽었을 뿐 아니라 미세플라스틱 분해 신생물질이나, 태양광 패널 기술 개발 등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대학에서 근무하며 더 많은 지식들을 쌓을 수 있었던 나는 점점 악화되어 가는 기후 위기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어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메탄은 자동차와 비행기, 생산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뿐만 아니라 소를 포함한 가축들의 트림과 방귀로도 발생한다. 소가 전체 매탄의 25%를 생산한다는 대대적인 홍보가 이루어졌던 2019년 어느 날 나는 채식을 결심했다.


  채식주의자는 제한하는 식품류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식물성 음식만을 먹는 비건, 비건식단에 우유를 마시는 락토, 혹은 계란을 더하는 오보, 우유와 계란까지 모두 먹는 사람을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이라고 한다. 해산물까지 추가해서 먹으면 페스코, 가금류를 추가하면 폴로, 육류를 다 먹되 되도록 식물성 음식을 취하는 플렉시테리언 이라고 한다. 나는 락토오보 베지테리언을 표방하며 약 6개월간 내가 먹을 음식을 스스로 만들어 먹었다. 채식을 한다는 건 많은 이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지구를 지키는 행위를 함으로써 느끼는 뿌듯함과, 육류 소비로 이루어지는 불필요한 살생을 줄인다는 점, 유전적으로 높은 나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불편한 점도 있었다. 타인에게 채식을 강요할 수 없으니, 회식이나 모임 등,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식사자리에 어울리기가 힘들다는 점, 둥글둥글 사회생활 하지 못하고 유난 떠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게다가 다양한 채식 요리법을 몰라 병아리 콩을 주식으로 하다 6kg이 늘어나는 무서운 부작용이 있었다. 채식을 하면 살이 빠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아마 샐러드 위주의 식단 조절을 해야만 발생하는 효과인듯 하다. 나의 경우 외할머니를 닮아 손이 커서 한 번에 많은 음식을 했고, 음식물 쓰레기를 희석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의 양과, 오염도 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 잔반 없이 만든 모든 것을 먹어야만 내 채식에 진가가 발휘되었다. 그래서 채식 이후 살이 붙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지구를 지키겠다는 강한 신념은 언젠가부터 내 몸과 마음을 조금씩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환경보호를 명목으로 채식주의를 표방했지만 6개월 이후, 나는 플렉시테리언. 다시 말해 사실상 고기를 좀 덜 먹는 일반인이 되었다. 사교적인 나는 외로워지고 있었다. 원래도 회사에서 활발하고 밝은 성격으로 많은 구성원들이 주목하는 사람이었는데, 채식을 시작하며 고깃집 회식에서도 풀만 먹는 모습에 주변인들이 불편해하며 유별난 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탄소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이해도 환경보호를 위한 채식의 부질없음을 강화해 준 요소였다. 사실 탄소는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인간 역시도 동물이기에 살아있음으로써 탄소를 배출한다. 그렇다면 나는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기 위해 죽어야 할까. 극단에 치닫는 논리는 모두에게 위험하다. 환경문제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행복한 나의 삶에 대해 간과해 오지 않았나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 지금의 나를 사랑하면서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보자!’



  식물들은 탄소를 흡수한 후 산소를 방출한다. 흡수한 탄소를 뿌리를 통해 토양의 미생물에게 전달하고 무기영양소를 공급받는 선순환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 식물과 미생물이 살아 숨 쉬는 땅만 있으면 탄소가 자연적으로 포집된다는 것이다. 바닷속 고래도 숨을 쉴 때마다 지방과 단백질 사이에 탄소를 저장하는데 일생 동안 평균 33톤의 탄소를 흡수한 후 숨을 거둘 때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수 백 년 간 탄소를 가둬 둔다고 한다. 게다가 수면에 숨을 쉬러 올라올 때 식물성 플랑크톤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질소와 철분을 내뿜어 이후 미생물들이 탄소를 포집하는데 영향을 미치기까지 한단다. 빙하 역시 탄소를 가둬두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점점 녹으면서 탄소를 방출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쯤 되면 탄소를 배출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을 이롭게 하고자 만든 물체와 시스템들로 보인다. 하지만 자연은 현명하게도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회복탄력성은 인간의 정신세계나 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품은 자연이란 존재에도 내재되어 있는 능력이다. 최근 소의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미국 환경변호사 니콜렛의 2021년 저 <소고기를 위한 변론>과 식량농업기구 <축산업의 기후변화 해결>에서는 축산업 온실가스 배출량이 보고된 것보다 낮다고 이야기하지만 가장 최근 나온 2021년 <네이처 푸드>의 아툴 제인 교수에 따르면 동물성 식품 생산을 위한 탄소 배출량이 전체의 20%를 차지하기에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탄소 배출량 산정기준은 모호하기에 나는 메뉴를 선정할 때 고기를 조금 덜 먹는 쪽을 선택한다. 요즘 중점적으로 하는 일은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원재료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는 확인하는 것이다.  



  ‘You are what you eat.’ ‘당신은 당신이 먹는 것입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조금은 어색하게 들리지만 내가 먹는 음식이 살이 되고 피가 되어 나를 이루는 것이니 틀림없는 이야기다. 후성유전학에서는 우리가 먹는 음식과 우리가 가진 식습관이 유전자를 바꾸어 우리 건강과 더 나아가 후세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을 내놓는다. 20세기를 풍미한 배우 오드리 헵번은 1944년, 6개월간 지속된 네덜란드 대기근 시기에 10대를 보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일상에 필요한 열량 30%를 먹으며 목숨을 연명했고, 해당기간 동안 2만 명 정도가 아사했다. 대기근을 겪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집단 연구결과 짧은 시기의 영양실조가 추후 그들의 일생동안 비만율을 낮게 했지만 건강을 악화시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드리 헵번이 평생 마른 몸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병약했던 것은 대기근에 따른 영양 섭취와 식습관 때문이었다. 반면 임신초기 영양실조를 겪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아기들은 비만과 각종 질병에 더 취약했다. 내가 먹는 것이 나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를 통해 후손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요즘 한국인의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 만성 질병률이 높은 주요 이유로 서구화된 식습관과 생활 패턴을 꼽는다. 식이에 따른 유전자의 변형에는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우리 몸은 어쩌면 조선시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랬듯 저칼로리, 저지방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지만 갑자기 21세기 고칼로리, 고지방 음식이 들어오니 세포가 이를 감당할 수 없었을 거다. 피자와 햄버거에 대한 갈망을 늘 달고 살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늘 먹던 것은 풀과 채소 위주의 식단이었기에 어른이 되어 버린 내 몸은 과거 내가 먹어왔던 추억의 맛, 고향의 맛을 갈구한다. 시원하고 아삭한 무생채와 달근한 맛이 나는 시금치 무침. 쌉싸름한 머위 잎에다 식은 밥과 젓갈을 올려 싸 먹는 쌈. 고사리 무침과, 냉이 향 가득한 된장찌개. 생각만 해도 그리움에 눈물이 나는 음식들이다.



  19년 연말, 캄보디아 여행 중 방문했던 현지 시장에서 날개와 다리가 부러진 새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는 옆에 그들의 동료들이 썰려나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늘 마트에서 잘 포장되어 나오는 상품화된 고기만 먹다가 식재료가 되는 생명체의 도살 과정을 직접 마주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보이지 않았던 진실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미국에서 주부인 나는 채소 위주의 식단과, 후가공이 적은 음식들과 한식을 밥상에 올린다. 외할머니 집에서 직접 기른 신선한 무공해의 채소는 아니지만 지역에서 기른 농산물들로 식탁을 메운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나를 채우고 만드는 중요한 일이다. 그저 배가 고파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돌보고, 내 주변 환경을 돌보는 일이 될 수 있는 귀한 일임을 알고 식재료를 고르고 조리를 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한다. 나를 이루고, 더 나아가 내 후손을 이룰 수도 있는 이 땅과 이 공기, 바다에서 난 모든 먹을 것과 그를 키워내는 지구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결국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먹는 것이 곧 내가 되고, 내가 죽어 흙이 되고, 곧 지구가 되는 게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우리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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