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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수원옆미술관 Jan 14. 2022

수렁에서 건진 우리 털털이

20년 3월의 일이다.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덕분이라 해야 할지 본가에서 일을 할 수 있어 강아지들을 볼 시간이 늘었다. 한창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동생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다급하고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산으로 산책을 왔는데, 아무래도 맥스가 강아지를 해친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놀란 나는 후다닥 달려 평소에 산책을 다니는 밤산(밤나무 산)으로 향했다. 전날 비가 와서 흙이 축축했다. 겨울이 막 지난 즈음이라 날이 쌀쌀했다. 평소엔 다니지 않는 골짜기로 내려갔고 맥스와 꼬물이, 그리고 동생이 서성이고 있는 곳으로 가니, 다 죽어가는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다.


맥스가 물었다는 상처는 다행히 깊지 않았다. 아주 조금 털에 피가 묻어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강아지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오랫동안 산속에서만 살아왔는지 털이 듬성듬성 나 있고, 숨결은 아주 미약하게만 느껴졌다. 빗물에 젖어 안 그래도 작은 몸이 더 작아 보였다. 언뜻 보면 개인 줄도 모르게 생겼었다. 영양실조와 저체온증으로 죽어가고 있는 듯했다. 수렁에 빠져 누워 있는 탓에 다물지 못하는 입 안에는 흙이 가득했고,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강아지를 안아 들었다. 뻣뻣하게 굳은 몸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그때 처음으로 죽어가는 생명의 눈빛이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다. 나는 강아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이 없을 거라 생각하며 물이라도 먹여보고 따뜻한 곳에 두고 보살펴만 주자. 그래도 정 안되면 잘 묻어주자.


'그래, 잘 묻어주자.'


그런 생각을 하며 강아지를 데려왔다. 강아지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미동도 하지 못했다. 물을 입 안으로 흘려보내도 목을 축이지 못했다. 혀도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미약한 숨만이 아직 살아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빠는 집에 돌아와 강아지를 처음 보고는 웬 너구리를 강아지로 착각해서 데려왔나 싶었더랬다. 그 정도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머리에는 커다란 진드기가 혹처럼 달려 있었고, 털이 거의 없어 피부가 훤히 드러났다. 따뜻한 옷으로 몸을 감싸고 물을 계속 먹여보며 또 죽을 끓였다. 지금은 먹을 수 없지만 조금이라고 기운을 차리면 먹어야 하니까.


하룻밤 머무를 보금자리를 꼼꼼히 살폈다. 아빠와 동생이 많은 일을 했다. 나는 살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날 밤 잠은 다른 때보다 무거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싸늘하게 식어 있는 강아지의 몸을 마주할까 봐 두려운 듯도 했고, 맥스 탓인가 싶어 마음이 저몄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강아지는 기적처럼 일어나 있었다.


빼꼼 고개를 내밀고, 밥그릇에 담겨 있던 죽에 입을 댄 자국도 보였다. 아주 조그만 자국이었지만. 아빠가 몸에 붙어 있는 진드기를 일일이 떼주었고, 온갖 겨울옷과 수건과 쿠션까지 내어주며 작은 강아지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줬다.


아빠는 쓸데없이 왜 데리고 왔냐고 그랬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챙겨줬다. 그래서일까. 아침에 제일 먼저 아빠를 보고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다고 한다. 자기가 다 죽어가던 와중에 봤던 사람은 또 어떻게 기억을 하는지, 강아지는 우리 가족 네 사람만 딱 경계하지 않았다. 그 외에 모든 사람들을 두려워했다. 우리에게 구조되었어도 꽤 오랫동안 너무 겁을 먹어서 꼬리를 배 안쪽까지 말고 지냈다. 그렇게 겁먹었으면서도 우리가 부르면 살금살금 잘도 다가왔다.


열흘이 지나자 걷는 게 아직 어색하지만 부르면 아주 예쁘게 달려왔고, 털이 많이 자라나 강아지의 모습을 갖추었다. 어느새 털이 길고 예쁜 강아지의 모습을 보고 아빠가 털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누구도 계속 키우자고 하진 않았지만 아무도 보내자고 말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털털이가 자연스럽게 세 번째 강아지 식구가 되었다.


우리는 털털이가 보여주는 애정과 사랑스러움에 깊이 빠져 들었다. 맥스와 꼬물이가 털털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염려가 되어 오랫동안 산책도 따로 하고, 앞마당과 뒷마당으로 구분해서 지냈다. 그러다 털털이가 맥스와 꼬물이에게 애교를 보이며 차근차근 다가가자 세 마리는 금세 식구가 되었다.


너무 신기했다. 나는 처음에는 털털이가 살아나기 힘들 거라 생각했고, 맥스와 꼬물이가 털털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 거라 여겼다. 그런데 강아지들은 내 예상보다 더 강력한 생명력으로 살아났고 그들만의 언어로 친해졌다. 털털이가 식구가 되던 때, 나는 강아지들이 우리의 생각보다 더 뛰어난 존재임을 체감했다. 난 그 즐거운 반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두 마리일 때보다 세 마리일 때의 행복도 나의 예상을 한참 벗어났다. 세 마리가 되자 더없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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