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청년 남성에 대한 단상 (이준석, 페미니즘)

에세이

by 이건우

이 시대의 청년 남성은 길을 잃었다. 2010년대의 후반부터 시작된 페미니즘은 어느덧 시대정신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남성은 소외되었다. 여권신장이라는 동일한 목적으로 연대가 가능했던 여성들은 기성세대의 가부장적 질서를 파괴하고 견제하며 그들과의 마찰을 계속 겪어왔지만, 이 시대의 남성은 할 일이 없어 가만히 지켜볼 뿐이다.


이 일은 현재 진행 중인데,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몫을 지키기 위해 진정한 민주의 자유가 도래하는 날을 최대한 지연시켜 청년을 억압하고 여성 연대들은 그 억압에 맞서 열렬히 투쟁 중이다.

그간의 많았던 시위, 문학계 여성작가들, 대학과 회사에서 MZ로 불리며 개인적 반항을 시도했던 일들이 모두 그것이다. 특히나 문학계에서 남성의 소외는 심각한데, 최근 내가 다녀왔던 독서모임과 글쓰기 클럽은 모두 여성들이었고 오가던 이야기 중 여성문제가 대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나는 도저히 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을 수 없었는데, 가부장적 질서를 함께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나임에도, 그들의 파괴에 끼어들지를 못했다. 내가 남성이라 그들이 따돌렸다기보다는 내가 살아온 궤적이 그들과는 너무 달라서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청년 남성은 기존의 남성성 파괴에 일조할 수도 없다. 자신 본인을 파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계속된 패배감에 시달린다. 기존 엘리트주의에 끼어들지도 못했고, 최근 나타난 페미니즘에 동조하지도 못하는 이들은 자신을 제외하고 사회가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기존 엘리트들에게는 계속 착취당하며 최근의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무언가 빼앗기고 있다는 느낌. 이것이 현 청년 남성의 소외감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소외된 남성들은 여러 행태들을 보인다.


첫 번째로, 객체화되어 이전 여성들의 일을 대신한다. 아이돌 문화에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데, 외관을 꾸며 "꼬시고 싶은 남자"가 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대표적으로 에겐남과 테토남 담론이 이것이다.


둘째로, 알 수 없는 패배감(이것은 그들이 소외되었지만 진정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한 탓이다)에 짓눌려 반항의 화살을 여성들에게 돌린다. 이들은 여권신장의 사회가 도래하려는 것에 반항한다. 자신들이 겪지도 않았던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무장한 이들은 마치 과거는 정상사회였고 지금은 비정상 사회라고 인식한다. 그러고는 시대 변화에 저항하고 기존 엘리트들에게 편입되고 싶은 마음에 젊은 보수로 자리매김한다.


셋째로, 시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세상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 사회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굳게 믿는다. 따라서 그들의 아버지가 해왔던 것처럼, 인생의 목표란 많은 돈을 벌어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아내와 자식을 부양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바람은 당연히 무산될 것인데, 지금 시대의 급여로는 3인분 이상의 몫을 다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다.


넷째로, 어떤 이들은 똑똑한 여성과의 결합이 두려운 나머지 창작물의 세계로 넘어간다. 그곳은 여전히 남성이 주체인 사회이며 여성 주인공들은 순종적이거나 남성을 발전시키는 도구이다. 그래서 이들은 현실에서는 어떤 누구에게도 욕구를 느끼지 않으며 모니터 속 여성 창작물에 헌신한다. 따지자면 이들은 남성과 여성을 모두 욕망하는 양성애나 누구도 욕망하지 않는 무성애보다 더 특수한 성소수자인 것이다.(그러나 이들은 특이하게도 LGBTQ를 싫어한다)


이준석 후보자는 2030 남성의 불안을 파고든다.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그는, 계속된 패배감에 시달리던 청년 남성들에게 '너희도 나처럼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며 그들을 엘리트 집단에 포섭하려 한다.


그러나 나는 저항한다. 아니 나를 비롯한 소수의 청년들은 엘리트주의에 저항한다. 가부장적 질서 파괴에 동참한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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