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된 차들이 즐비하다. 하나같이 호화로운 탈것들은 장식품으로 진열되어 있다. 정원으로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모든 도로가 넓었고, 깔끔했다. 이호의 모습과 닮았다.
머나먼 타지에서의 시련을 이겨낸 식물들이 곧게 서있다. 어떤 것은 조금씩 흔들리고, 어떤 것은 바닥에 딱붙어 개인 영역을 확장한다. 뿌리가 튼튼히 박힌 식물들처럼 나도 어딘가에 뿌리를 둘 수 있을까. 막상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변덕을 부리지 않을 수 있을까.
머지 않아 호출이 온다. 핸드폰을 받기 전까지 내게 유일한 연락 수단은 이것 뿐이다. 버튼을 한 번 누르면 부름에 응하겠단 뜻이고, 두 번 누르면 아직 혼자 있고 싶단 의미다. 고민 중에 호출 이유에 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버튼을 한 번만 눌렀다. 로비에 도착하니 피곤한 낯의 이호가 서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움직이면 안될텐데. 무리하진 마."
"몸이 찌뿌듯해서 잠깐만 나온거야. 정말 잠깐."
"..그래."
함께 밥을 먹자고 했다. 이호가 내 방으로 오겠다고 했다. 무슨 할 말이 있는걸까. 곧 돌아가야 한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다리는 회복할테니. 텃밭의 식물은 두고 가야겠다. 주인에게 돌려주는게 맞다. 떠나기 전 테오를 많이 보고 쓰다듬자. 그래야 씁쓸함이 덜할테니.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있었다.
니트가 부드럽다. 치수를 정확히 맞춘 듯 적당하게 품에 맞는 옷이 아침마다 놓여 있다. 캐리어에 없던 옷이다.
"새로 구매한 옷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구매한 옷이어서, 내 옷이 아니어서 더 불편했다. 그래도 부드러운건 사실이다. 노크 후 이호가 들어왔다. 같은 색, 사이즈만 다른, 같은 니트였다.
"선물이야. 네 생일이잖아 오늘."
"사탕이 아니네.."
"편지도 없어. 이제 안쓸거야."
"왜?"
물어놓고도 아차 싶었다. 돌아가면 어차피 다시 볼 수 없을텐데. 편지도 당연한게 아닌데. 이호는 한참동안 답을 하지 않았다. 식탁 위가 가득 채워진다. 나는 음식에만 시선을 뒀다. 그래야 덜 슬플거 같았다. 정확히는 그래야 덜 비참했다. 이호는 조용히 수저를 들었다. 달그락 소리 하나 없이 음식을 먹었다. 나도 입에 음식을 가져갔다. 분명 부드러운 메뉴인데 모래알처럼 까끌거린다. 접시에 물방울이 툭 떨어진다. 수저를 내려둔 이호를 봤다. 그의 표정을 보고 나서야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계속 여기에서 지내. 그게 널 부른 이유야."
왜. 같은 물음만 반복해서 떠오른다. 나에게 가져갈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곁에 두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미 어린 시절 추억은 초라한 현재의 나로 인해 빛바랬다.
"너에게 가장 주고 싶었던 생일 선물이기도 하고."
정작 나는 그의 생일을 제대로 챙긴 적이 손에 꼽았다. 나는 그에게 당연히 받기만 했던 사람이다.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나 돈 없어. 직장도."
"알아."
"경찰서도 다녀왔어."
"알아."
"말썽만 피울거야. 어릴 때처럼."
"아주 잘 알고 있어."
식사를 마친 후에도 눈을 들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당분간 나갈 땐 나랑 같이 가. 앞으로 계속 그러면 더 좋고."
정원이 떠올랐다. 이호의 표정은 늘 변화가 적어 알 수 없다.
"널 혼자 두기 싫어졌어."
그 말을 끝으로 이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혼자 침대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