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by 이헤윰

래도록 만나지 못한 이가 문득 생각날 때, 연락하기 망설인다. 내게는 부모님이 그러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제 네 마음대로 살아라.' 라는 말은 자유를 줄테니 책임을 스스로 지라는 의미였다. 자연스레 바빠졌고, 문자 한 통 보낼 여유도 없었다. 사실 자신이 없었다. 지금 내 인생이 내리막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부모님의 '그럴 줄 알았다.'는 답을 들을까 무서웠다.


이호는 희수의 장례 이후 내게 부모님과의 관계에 관한 어떠한 조언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희수를 그리워 하는 것과, 내가 부모님과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별개의 관계라고. 너는 너의 상황이 있을테니 '그러다가 후회할지도 몰라.' 라는 뉘앙스의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런 섬세한 무관심이 내 마음을 더욱 편안하게 만들었다. 가족의 연, 오랫동안 지속되는 인연,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인연. 모두 하늘이 맺어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나는 어떤 이에게 한없이 선량하다가도 동시에 다른 이에게는 한없이 무심하며 악하기까지 하다. 이름 모를 동네 아이의 집을 찾아주기 위해 경찰서에 데려다주고 보호자가 오기까지 함께 기다리며 안심 시키는 사람은 동시에 마을의 저수지 둑을 깨트려 홍수를 낼 뻔한 범죄자가 된다. 이전에 베푼 작은 선량함은 영원하지 않다. 내게 웃었던 이도 언제 등을 돌릴 지 알 수 없으며, 반대로 내게 악하게 굴었던 이가 언제 내 앞에서 약자가 될 지 또한 알 수 없다. 그 중 이호는 내게 있어 몇 안되는 일관적인 관계다.


"갑자기 날 가두는 이유가 뭐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마음대로 뛰쳐나갈 가능성을 지우고 있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결심하면 또 도망가겠지."

"도망간건 너잖아. 나를 그 마을에 혼자 두고."

"내가 도망갔다면 너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겠지. 다시 찾아오지도 않았을거고."


직한 마음을 감추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되는대로 내뱉는다. 푹신한 의자에 가만히 앉아 깁스를 풀지 못한 채, 쏘아붙였다. 그러나 무력했다. 정작 이호가 정말 나를 내칠까 불안해 하는 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말투만 조용한 나의 투정에 대해 어떠한 화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네 다리가 나으면 잠시 한국에 다녀올거야. 물론 너도."

"왜?"

"아저씨와 아주머니 뵌 지가 오래됐거든."

"난 가고 싶지 않아."

"그럼 나 혼자 다녀올거야."

"가서 뭘 하려고."

"인사를 드리겠지. 겸사겸사 네 옛날 짐도 가져오고."

"내 말을 전혀 듣지 않는구나."

"다 듣고 있어. 네가 이렇게 나올 것도 모두 예상 했고."

"내 의견을 전혀 들어주지 않는다는 의미야."

"그러지 않으면 또 어디서 다쳐올 지 알 수 없잖아."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어 답답했다. 그의 말이 모두 맞았고, 나는 아직도 보호가 필요했다. 혼자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만 같았다. 참으려 했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세연아, 내가 싫어?"

"그건 아니야."

"왜 그러는지 이유를 말해줘. 네가 괜찮을 때."


그가 무릎을 굽혀 나와 눈높이를 맞춘다. 직접 눈물을 닦아주는 대신 손수건을 건넨다. 늘 그랬다. 그는 나에게 맞는 안전거리를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손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나도 멋있는 삶을 살고 싶었어."


적어도 그와 다시 마주했을 때, 남부럽지 않은 것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1인분의 몫은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고 싶었다. 별난 성격을 감춰보려고 애를 쓰다가도 마지막은 사건, 사고, 그리고 혼자였다.


"넌 이미 멋지게 살고 있어."


차분한 목소리로 예상 밖의 답이 들려왔다. 나에게 멋지다는 의미와, 이호에게 멋지다는 의미는 많이 다른 모양이다.


"을 개척하는건 더 힘든 법이야. 남들이 닦아둔 길을 걸어가는 것보다 훨씬."


그는 자신이 쉬운 길을 살았다고 덧붙였다. 울음이 진정된 뒤 이호는 의자를 옆으로 끌어다가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찬찬히 얘기해주었다. 직접 얘기하고 싶어 편지에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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