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by 이홍

마치 자신이 겪은 일이라도 되는 듯 현은의 불만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래, 대체 여기에 왜 도로를 만든다는 거야? 여기 통해서 갈 데가 어디 있다고. 내가 찾아보니까 여기에 도로가 없어도 갈 데는 다 가더만. 그 서울 것들이 돈독이 올라서 그래. 도로 하나 만들어서 거기 다니는 사람들한테 돈 받아 먹으려고. 안 그랬으면 보상금인지 뭔지를 그렇게 크게 주겠어? 그거 다 메꿀 자신이 있으니까 주는 거야.”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 중얼거리던 그는 갑자기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사실 내가 이사 가려고 했거든. 마을을 떠나는 건 아니고, 요즘 그렇게 연못이 보고 싶다? 잔잔한 수면 위를 보고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아니?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그래도 옛날에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미윤이 너 어렸을 때만 해도 마을에 아이들이 있었잖아. 그땐 아이들 뛰어놀고 웃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는데, 요즘엔 너무 쓸쓸해. 근데 또 그걸 보는 맛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스마트폰 보고 십 초도 안 되는 짧은 영상 보느라고 바쁘다는데, 나는 그런 거 이해를 못하겠다니까.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봐봐, 우리 마을에 있는 호수만 해도 마르지 않고 사계절 내내 너무 예쁘잖아. 그걸 가까이서 보고 싶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 앞에 있는 집 기억하지? 거기 내가 샀잖아.”

호수 앞에 있는 집이라면 잘 알고 있다. 한때 거기 살던 어르신이 시내에서 옷가게를 하셨다. 말이 옷가게이지, 지나가다가 아는 사람이 들르면 믹스 커피 한 잔 두고 수다를 떠느라 오히려 찾아오는 손님 대접을 하지 못하던 곳.

파는 옷도 가짜 큐빅이 박힌 빨간 반짝이 옷이나 챙이 넓은데 축 늘어져서 손으로 잡아주지 않으면 앞을 볼 수가 없는 모자 같은 걸 파는 곳이었다. 과연 장사가 되는지도 의문이었지만, 누가 봐도 수입이 없는데 그 자리에서 계속 가게를 운영한다는 점도 신기했다. 물론 그것도 옷가게 어르신의 아들이 건물주였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만 그랬다.

건물주 아들은 시내에 있는 건물을 팔고 옷가게를 정리해 다른 지방으로 간 걸로 기억한다. 무슨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국내에서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적다고 했다. 치료 가능한 병원 근처로 이사 간다고 했나. 내가 직접 들은 건 아니고 친구가 하는 말을 들었으니, 거짓말일 수도 있다.

그들이 떠난 이후, 호수 앞 어르신이 떠나간 집은 늘 비워진 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굳이 연못 마을로 이사 올 사람도 없을뿐더러, 그 집 자체가 그리 좋은 편도 아니다. 습기를 좋아하는 벌레라면 모를까.

그런데 굳이 그 집을 샀다고? 오랫동안 비워진 상태였으니까 집 자체를 수리하는 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할 거다. 호수 앞 집은 가로로 길었는데, 그 옆엔 작은 창고까지 세워져 있다. 이사 들어가기 전 작업만 해도 상당한 돈이 들 거다.

물론 내 돈도 아니고, 자기 돈을 어떻게 쓰더라도 그 선택은 스스로 하는 거니까 딱히 말을 붙이고 싶진 않았다.

잠깐만. 그러면 마을에 도로가 들어오는 게 현은에겐 더 좋은 일 아닌가? 팔고 싶다고 내놔도 사가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썩어가는 집이 한두 채가 아닌데, 마을에 집이 두 채나 있다고? 완전 이득이잖아.

“한참 고민했거든. 호수가 좋긴 한데, 잘 알다시피 물 근처에 있으면 집 관리하기가 좀 어려운 게 아니잖아. 그래도 내가 지금 아니면 언제 우리 마을 호수처럼 예쁜 거 보면서 살겠나 싶더라고. 밖에서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날이 너무 덥거나 추우면 쳐다보고 있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 여기, 여기 보이지? 유리로 해놓은 거, 새집 사서 가장 고친 게 거실이잖아. 여기처럼 유리 달아놓으려고. 얼마나 예뻐. 매일 호수를 볼 수 있다는 생각만 하면 들떴지. 솔직히 이 집을 비워놓는 건 아쉽지만... 우리 부모님이랑 살았던 곳이기도 하고, 내가 태어나서부터 계속 여기 살았잖아. 잠깐 서울 간 거, 그거는 갔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니까.”

현은은 거실 유리창 너머를 바라본다. 그 앞에 마당이 아닌 호수가 자리한 듯.

“가끔 오긴 할 거야. 완전히 비워두긴 좀 그렇잖아. 안 그래도 내가 집 청소 도와줄 사람을 찾느라고. 솔직히 외부인 들어오는 거 정말 마음에 안 들긴 하는데, 어쩌겠어. 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집을 두 채나 관리할 순 없잖아. 이건 순희 어르신도 이해해주시더라. 물론 그분 앞에서 나이 얘긴 안 했지. 그분 앞에서 누가 나이를 들먹일 수 있겠어? 어쨌든 사람 찾아보고 있는 중이었거든. 다른 거 건드리지 않는 조건으로 이 집에서 먹고 살면서 청소만 잘 해주는 걸로. 얼마나 좋아? 집도 공짜로 빌려주고, 청소만 해주면 돈도 주겠다는데.”

“그래서 사람 구하셨어요?”

“아휴, 구하기는 뭘 구해. 구하려고 그냥 따악! 인터넷에 글 올리자마자 도로니 뭐니 난리가 났는데!”

아무리 집을 준다고 해도 이런 시골에서 청소하면서 산다고? 미윤은 어차피 도로 문제가 아니더라도 여기까지 와서 살 사람은 없다고 확신한다.

차 없으면 돌아다니기도 힘들고, 마을 사람끼리 똘똘 뭉쳐서 외부인 밀어내기에 바쁜데. 임순희 어르신이 허락해줬다는 건 현은이 어르신 기분을 잘 달랜 것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도 외부인이 들어오려면 나이 지긋한 노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콧방귀를 끼고 싶다. 만약 도로를 놓겠단 얘기가 없었다면, 현은은 마음 먹은대로 이 집을 돌봐줄 외부인을 구했을 거다. 저 성격과 앞뒤 꽉 막힌 생각을 보면, 남자보단 청소를 잘하고 깔끔하고 합당한 일이기 때문에 여자를 구할 게 뻔하다.

과연 그렇게 들어온 여자가 숨이나 제대로 쉬고 살 수 있을까? 장식장 위에 먼지 하나라도 앉아 있으면 없는 불만까지 벅벅 긁어서 마을 사람들에게 토로할 거고, 예나 지금이나 잘 나가는 부모 그늘 아래에서, 설사 그들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기세등등하게 살아가는 현은에게 맞장구쳐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하겠지.

기왕이면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은 뿌리가 깊다. 외부인이 와서 아무리 노력하고 엉덩이를 흔든다고 한들, 받아줄 사람은 없다. 그 누구보다도 집 관리인을 두려고 하는 현은이 그 사실을 잘 알 거다.

저런 못된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없어지지 않나? 도로를 놓는다는 건 여러모로 다행이다. 돈이 필요한 나에게나, 누군지 모르겠지만 현은이 사람을 구했다면 이 마을에 들어와야 했을 어떤 여자나.


더 들어봤자 투덜거림만 늘어가리란 사실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만 가보겠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현은은 미윤의 앞에 놓인 커피를 들었다.

“다 식었네, 아깝게. 커피 별로 안 좋아하니?”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이만 가보겠다고 했다. 그는 남은 커피를 자신 앞에 있는 잔에 옮기려다가 그냥 내려두었다. 딱 봐도 남은 양이 다 들어가지 않을 듯했고, 어차피 컵 두 개를 설거지해야 하는 건 같은데 굳이 옮길 필요는 없단 생각을 한 모양이다.

현관문을 나서자 제법 강해진 해가 머리 위를 비춘다. 현은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집 안에서 인사한다.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으니 상관없다.

미윤은 구겨지지도 않은 옷을 털며 마당 밖으로 나온다. 현은의 집 오른쪽엔 빈집이 하나 있고, 그 옆엔 정연이 사는 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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