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by 이홍

현은이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모르겠네...” 라고 말문을 흐리는 건 내가 지금부터 이 얘기를 할 건데, 너는 듣고 어디가서 함부로 떠들지 말라는 말과 같다.

박석혁. 미윤이 본 그는 언제나 술에 취해 있었다. 항상 알코올 냄새가 풍기는 남자는 집안일에 관해 성실한 사람은 아니다. 폭력을 휘두르거나 듣기 힘들 정도의 막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사람도 아니다.

석혁의 부인은 아이를 다섯 명 낳고, 산후 우울증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 그땐 산후 우울증 같은 말이 없었다. 죽은 사람은 아이를 제대로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해버린 매정한 엄마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석혁의 집 마당에서 조촐하게 차려진 장례식장에서 떠들던 사람들의 말이.

애를 낳았으면 애 생각해서라도 억척같이 버텨야지, 누군 힘든 일이 없는 줄 아나, 아이들은 누가 돌보냐 등등. 죽은 사람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그가 남기고 간 자식들뿐이었다.

석혁네 맞이는 일찍 철들어야만 했다. 남은 동생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 눈에도 술 마시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영 못미더웠기 때문일 거다.

석혁의 자식 다섯 명은 성인이 되기 전에 마을을 떠났다. 석혁은 연못 마을에 혼자 남았고, 남 일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웃들은 요즘 외국에서 색시를 얻을 수 있다면서 자꾸만 석혁의 옆에 누군가를 붙여주려고 안달했다.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평생 혼자 살겠단 다짐을 한 거라며, 마을 어르신들은 떠들었지만 미윤이 보기엔 아니었다. 그는 누군가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술 마시기를 즐기기 위해서 그런 선택을 한 거다.

“요즘 떠났던 자식들이 그렇게 연락한대.”

“네? 정말요?”

의외다. 아니 어쩌면 의외가 아닐지도.

평생 자기 자식 한 번 안아준 적 없는 알코올 중독자를 찾는 이유는 미윤이 택시비를 두 배로 불러가며 연못 마을에 내려온 이유와 다르지 않을 거다.

현은은 혀를 쯧쯧 찼다. 그의 혀가 입천장에 닿았다가 떨어질 때마다 침방울이 입 밖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불효막심한 것들. 아무리 그래도 지들 아버지인데, 머리에 피 좀 말랐다고 평생 모르는 척하고 살더니... 이유야 뻔하지. 다 돈 때문이지, 뭘.”

드디어 부엌에서 나온 그의 손엔 커피 두 잔이 들려있었다. 감사 인사를 하고, 커피를 받아 입이 데이지 않도록 조금만 마셨다. 커피가 아니라 커피향이 나는 맹물에 가깝다. 맛없다. 원두가 다르다는 둥, 향이 다르다는 둥 하더니...

“어때? 커피 괜찮지?”

“네, 맛있어요.”

슬그머니 잔을 내려두는데, 현은은 멈추지 않고 석혁과 석혁의 자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뭐라는지 아니? 아저씨한테 자기들이 모시고 살겠다는 말을 그렇게 한다더라.”

“모시고 살아요?”

“그래! 이 마을에 있는 집 팔아버리고 자기들이랑 서울 올라가자고. 그동안 아버지를 혼자 살게 놔둔 거 마음 아팠는데, 이제라도 잘 모시겠다나 뭐라나. 너무 속 보이지 않니? 그 양반 밥 한 끼도 안 먹고 술만 찾을 땐 관심도 없다가, 그래도 이웃들이 챙겨주고 걱정해주기 시작하니까 슬그머니 나타나가지고...”

꿍얼꿍얼거리는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미윤은 먹을만한 과자 하나 없이 달랑 나온 머그잔 위로 시선을 굴린다. 정말 센스 없다. 아침 먹었다고 말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손님이 오면 뭐라도 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한 입 먹고 만 커피를 노려본다. 머리털 나고 이렇게 맛없는 커피는 처음 먹어본다. 다시 입에 대기도 싫다. 하지만 현은은 머그잔 위로 올라오는 하얀 김을 후후 불어가며 급하게 커피를 마신다.

“평소에 잘 챙겨주면 몰라. 나도 가끔 아이들 소식 궁금해서 물어봤거든. 그런데 전화도 없다는 거야. 그 집 셋째가 결혼할 때 불렀나? 그게 전부였다니까. 모시고 간 것도 아니고, 그냥 오라고 불렀대. 집에 오실 때도 버스 타고 오셨더라. 그게 말이 되는 일이니? 결혼할 거면 부모를 부르는 게 아니라 모시러 와야지.”

알만 했다. 그렇게 연락하지 않다가 결혼한다고 부른 거라면, 그건 그나마 남은 예의라도 지키려고 빈말을 한 거겠지.

안타깝게도 석혁은 눈치가 없었고, 결혼식에 입고 갈만한 옷도 없었을 것이다. 후줄근한 차림으로 술이나 마시다가 연못 마을로 혼자 돌아왔을 그의 모습이 직접 보기라도 한 듯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 아저씨 불쌍해 죽겠어, 아주. 내가 그날 버스 타고 오는 걸 봤거든. 지쳐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인사도 대충 받아주는 거 보니까 눈물이 막 나는 거야. 주책맞게 울었잖아. 그러고 저녁 먹은 다음 봤더니, 또 술 드시고 계시는 거야. 옆에서 챙겨주는 아내라도 있었어봐, 사람이 그렇게 살겠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현은이 머그잔을 내려놨다. 그 안엔 커피가 절반 밖에 담겨있지 않았다.

“그렇게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도로 얘기는 어디서 듣고 왔는지... 저번주인가? 마을로 왔는데, 어머, 미윤이 너, 아저씨네 첫째 기억하지?”

“네.”

“걔가 애를 셋이나 낳았대. 막내가 벌써 중학생이란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듣고 보도 못했는데, 이번에 내려온 거 보니까 애가 막 줄줄인 거야. 아니, 자기도 부모가 됐으면서 혼자 자기 키운 부모는 생각이 안났나?”

안 났겠지. 석혁네 자식들을 돌본 건 석혁이 아니라 그 집 첫째였다. 아마 석혁의 아내가 여전히 살아있었다면 그가 혼자서 아이를 다 돌봤을 거다.

좀처럼 가족에게 신경쓰는 법이 없는 석혁을 보며, 결혼은 왜 한 건지에 대한 의문이 자꾸만 들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혼자 살았다면, 자식들은 태어나지 않았을 거고, 석혁의 아내가 자살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따지자면 그들에게 부모는 그 집 첫째일 거다. 특히 막내는 태어난 후 기저귀를 떼기도 전에 엄마가 죽었으니, 아이가 싼 똥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도 오로지 첫째 몫이었다.

의외인 점이 있다면, 그렇게 평생 애를 돌보며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고 자란 석혁네 첫째가 결혼해서 애를 셋이나 낳았다는 점이다. 나였다면 징글징글해서 애 낳을 생각은 안 했을 텐데.

“아저씨 얘기 들어보니까 첫째가 와서 서울로 모실 테니까 여기 집 팔자고 했대. 어차피 이 마을에 사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고, 더 와서 살 사람도 없는데, 큰 회사에서 돈 주겠다고 했을 때 파는 게 이득이라나? 정말 뻔뻔하지 않니? 나는 그 얘기 듣고 내가 다 화가 나더라. 아저씨한테 걔들이 잘했으면 모르겠는데, 자식을 셋이나 낳고도 명절 때 찾아오는 걸 보질 못했는데! 모신다고 해서 걔네가 아저씨를 집에 모시겠니? 어디 노인들 잔뜩 있는 요양 병원 같은 데 넣고 모르는 척하겠지.”

“......”

“아무리 그래도 지들 태어나게 해준 아버지인데 어쩜 그렇게 구니? 아마 도로가 생기네 마네 하는 소리가 안 나왔으면 지네 아버지 장례식에도 안 왔을 거야.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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