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추가 완료.
꼭 혼자 말하듯 중얼거리면서도 듣는 이가 있단 확신의 말투. 미윤은 현정의 뒤를 따라가며 머리를 긁적거린다. 잘못 골랐나.
사실 잘못이네 아니네 할 것 없이 연못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으니까, 차라리 지금 듣고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질구질하게 이어지는 신세 한탄은 들어주기 힘들다. 특히 내가 관심 없는 부분에 대해선 더더욱.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관심 없는 모양이다. 허공을 바라보며 이어지는 한탄은 더더욱 가관이 된다.
“여섯째 언니는 똑똑했어.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찾아와서 어른들을 설득시킬 정도로 공부를 잘했지. 할머니랑 아줌마는 계집애가 무슨 대학까지 가냐고 했고, 아버지는 관심 없었지. 그 언니도 마을을 떠났어. 결국 대학은 갔다고 들었는데... 그 언니랑도 연락은 잘 안 해. 피차 좋을 게 없으니까. 그래도 둘째 언니는 나를 딸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섯째 언니는 나랑 나이도 비슷하고, 함께 있을 때 좋은 기억이 있던 것도 아니니까.”
“......”
“나는 언니들이 떠나는 거 보면서 생각했어. 아, 다음은 내 차례구나. 이 지긋지긋한 마을을 벗어날 수 있겠구나. 그런데 웬걸, 어떤 남자가 자꾸 나한테 들러붙는 거야. 내 전 남편 말이야. 내내 붙어다니려고 하고, 내가 하는 일마다 간섭하고.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전 남편이 그런 식으로 구니까 마을엔 우리가 무슨 사이인 듯 소문이 파다하게 났지. 자꾸 그 남자 안부를 나한테 묻고, 언제 결혼하냐고 물어보고... 아주 치가 떨려. 내가 절대 아니라고 부정하면 뭘 해? 이미 우리는 결혼 날짜까지 잡은 사이가 되어 버렸는데. 사실 내가 그 남자는 내 남자친구가 아니고, 결혼할 생각도 없다고 했거든. 그 말을 하자마자 할머니가 아주 뒤집어지는 거야. 그땐 이미 꼬부랑 노인네라서 혼자 일어나 앉을 힘도 없었는데. 누운 자세로 얼마나 난리를 치는지. 어디 계집애가 몸놀림 함부로 해서 결혼도 안 할 남자랑 붙어다니느냐고. 당연히 나는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 그 남자가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는 거고,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그런데 들어주겠니? 나는 앞마당에 굴러다니는 돌덩이만도 못한 존재인데?”
어깨를 귀 옆까지 움츠리며 붙였다가 떨어트리는 그의 뒷모습은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았어. 누구 하나라도 들어줬다면 나는 이 마을을 진작 떠날 수 있었을 거야. 결국 전 남편이랑 결혼해서 애를 둘이나 낳았지. 할머니는 얼마나 지독하게 오래 살았는지, 내가 둘째까지 낳는 거 보고 죽었다니까. 그 와중에 둘 다 아들이라고, 그나마 나를 사람 취급하더라. 자기는 내가 이렇게 아들 낳을 상이라는 걸 알았다나, 뭐라나... 다 싫었지. 너무 싫었어. 솔직히 내 애도 그렇게 예뻐한 거 같진 않아, 내가. 남자라면 아주 지긋지긋했거든. 그래서 지금은 연락도 안 하고 살잖아. 키운 정이 있는데 무심한 것들 같으니. 하긴, 남자들이 다 그런 거 아니겠니. 전 남편도 마찬가지야. 그렇게 나 좋다고 따라다니면서 마을에 온갖 소문 다 나게 만들어가지고 결혼까지 하더니 그게 끝이었잖아. 내가 보기엔 이미 둘째 태어나기 전부터 바람 피우고 있었어. 내 배가 산처럼 부풀어 올랐는데도 집에 잘 안 들어왔거든. 그러다가 어느 날 아예 오지 않는 거야. 나는 그거 찾지도 않았다. 징그러운 인간...”
그 이야기는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온 마을 사람들이 현정에 대해 말할 때 꼭 전 남편 얘기를 꺼냈다. 대부분 남자가 그렇게 구애하다가 결혼했는데 바람 나서 집을 떠난 거라면 같이 사는 여자에게 문제가 있는 거 아니겠냐고.
그때 당시 이미 나는 마을에 정이 없는 상태였다. 몇 살이었더라. 아마 대학 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가.
부모의 애정이 그리 깊지 않다는 사실도 알아차린지 오래였다. 어머니는 항상 사랑을 담아 아버지를 바라보았지만, 아버지는 항상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어머니를 향하고 있음에도 그 눈동자 안엔 어머니가 담기지 않았다.
미윤에겐 부모의 이야기를 물어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 물어봤다면, 이젠 짐작만 할 수 있지만, 망설이는 한이 있더라도 말해주긴 했을 거다. 언제까지나 그들 눈에 내가 아이로만 보이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은 내가 아이일 때 죽었다. 손에 주민등록증이 쥐어진다고 해서 어른이던가. 이제 막 대학 다니고 있는 애가 알아봤자 뭘 얼마나 알겠는가.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해. 전 남편이 알아서 나가고, 아들 둘까지 다 내보내고 나니까 숨통이 트이더라. 그 느낌 알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숨을 쉬어보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좀 떠날 수 있나 했더니, 자기들끼리 모여서 나한테 임순희 어르신을 돌보게 하겠다고 정해버린 거야. 어르신 돌봐야 하는 나한텐 한 마디 말도 안 하고. 경우가 없어도 어쩜 이렇게 없을 수가 있니? 너무 화나서 따지고 싶은데, 저 어르신이 살면 얼마나 사시겠느냐는 생각도 들더라. 그렇잖아. 저 양반은 자기가 언제 태어났는지도 기억이 안 난대. 어느 날은 나라에 전쟁이 나도 모를 만큼 평온한 마을에서 자기가 뛰어다녔다고 하더니 어느 날은 자기가 태어났을 때 이미 마을 길이 아스팔트로 잘 닦여 있었다고 말하고.”
“아아...”
“근데 왜 저렇게 팔팔하시다니? 마을에 도로를 놓겠다면서 서울 여자들 찾아왔을 때부터 자기가 그 꼴은 못 본다, 절대 이대로 눈 못 감는다고 으름장을 놓는 거야. 속으로 비웃었는데...”
현정은 갑자기 뒤를 돌아서 미윤의 곁으로 다가온다. 그러더니 주변을 빠르게 휙휙 살피고, 작게 속닥거렸다.
“정말 죽지도 않잖아. 저대로 말라 비틀어지게 생겼어. 미라처럼.”
임순희 어르신에게 어떤 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 많은 노인인데 저런 말은 좀 그렇지 않나?
생각했지만 말로 뱉진 않는다. 가뜩이나 자기 연민에 가득 차서 항상 그걸 곱씹으며 살아가는 여자한테 괜한 말로 기름 부을 필욘 없다. 거기서 튀어나오는 거라면 작은 불씨도 맞고 싶지 않다.
“어르신 돌보면서 생각했지. 결국 이 마을에서 내가 죽겠구나. 단 한 순간이라도 마을을 벗어나고 싶다. 나는 말이지, 바다가 넓게 펼쳐진 곳 근처에 집을 얻어 살고 싶어. 창문 열면 항상 바다 내음을 맡을 수 있는 곳에서, 편안하게.”
별로 궁금하지 않다. 게다가 현정은 오늘 임순희 어르신 곁에서 오징어 젓갈을 먹은 모양이다. 말할 때마다 비린내가 난다.
“서울 여자들이 고마워. 여기에 도로가 놓인다면서 마을을 밀어버리려는 상황 자체가 신이 내게 내려준 선물 같아. 힘들게 살아온 나에게 늦게나마 보상하겠다는 뜻 같은 거 있지? 절대로 이 마을에 살지 않을 거야. 나는 여기를 반드시 떠날 거야. 마을 연못이 다 마르기 전에.”
현정의 목소리는 단단하다. 나에게 건네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다짐 같다. 반드시 여기를 벗어나겠다는 꿈에 희망이 더해진 지금, 지긋지긋한 집을 팔아버리면서 보상금까지 두둑하게 챙겨갈 수 있는 순간을 고작 선물 같다고 표현한 건 어휘력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걸음은 자연스럽게 임순희 어르신 댁으로 향한다. 마을회관과 문 닫은 슈퍼를 지나 석혁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건 부모님이 돌아가신 집을 보기 싫어할 거라는 짐작으로 미윤에게 해주는 배려인지, 그저 어르신을 돌보러 가기 싫은 마음을 표현하는 건지.
게다가 걸음은 점점 느려진다. 어지간히도 싫은가보다. 그 마음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사람 돌보는 일이 좀 힘든가? 내 가족 돌보는 일도 쉬운 게 아니다. 돌볼 가족은 없지만,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지 않나. 간병 살인, 이런 거.
그나마 핏줄이라는 이유로 버티던 사람도 못 견뎌 하는 고된 노동을 생판 남에게 하고 있으니. 억지로 떠맡은 것도 억울할 텐데 결국 그거 때문에 이 마을에 머무르게 된 거 아닌가.
하지만 그의 머뭇거림은 미윤에게 좋을 게 없다. 그냥 돌아갈까. 회관도 멀지 않고, 이미 들을 이야기는 충분히 들은 듯하다. 아직 석혁을 찾아가진 않았지만, 그에 대한 거라면 현은이 했던 말로 짐작할 수 있다.
자식들이 부쩍 연락한다고 했던가. 속이 뻔하게 보인다. 매일 술 마시면서 하는 일도 없이 지내는 아버지를 거의 방치하더니. 그러나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솔직히 누구나 탐낼 만한 액수니까.
“아우, 너무 가기 싫어.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떨어지면 좋겠다니까.”
미적거리던 걸음을 멈춘 현정은 몸을 부르르 떨며 소리친다. 마른 하늘에 무슨 벼락. 대답하고 싶지도 않고, 대답할 말도 없다. 그보다는 지금 임순희 어르신을 만나러 가야 하는지, 아닌지가 고민이다.
이대로 따라가면 만날 수 있겠지만, 어르신의 입장은 이미 알고 있으니 얼굴 들이밀어서 욕 먹을 필욘 없다. 그럼 돌아갈까?
“저, 그럼 저는 이만...”
미윤은 차마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큰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