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뜻한 불꽃 소예 Jun 20. 2024

어쩌면

기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가족여행으로 제주도에 갔다. 나와 아들은 너무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서 신났던 거와 달리, 한 자세로 나름 오랜 시간 있어야 한 남편은 많이 힘들어했다. 동선이 문제였던 것인지, 그는 첫째 날도 마지막날도 매우 힘들어했다. 그리고 여행 중간중간 극심한 통증으로 짜증을 냈고, 그리고 그런 남편을 그리고 내 말을 듣지 않았던 남편을 속으로 매우 미워했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나는 과거를 곱씹고 그를 만났던 내 운명과 선택을 저주했다. 그러다, 이것도 기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남편은 암성통증으로 매일밤 잠들기 힘들어하고, 옷을 입어도 살갗이 따가워 웃통을 벗고 있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과 나에게 여느 듬직한 아빠, 남편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다.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있다. 흉수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던 응급의학과 의사의 말도, 암이 자라고 있다는 종양의학과 선생님의 말도 맞다. 그전보다 확실히 체력도 떨어지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남편은 살아 있고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심지어 등산도 간다.


여러 번 생각하는 것이지만 나는 왜 이렇게 내 접시에 놓인 것보다 잃어버린 그 무엇인가를 쳐다보고 푸념만 하는 것일까? 왜 감사하지 못하는 거일까?


신은 분명 기적을 내게 주었는데 말이다. 내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 남편은 가끔씩 아이 숙제와 공부도 봐준다. 그리고 아이에게 신경질을 많이 내고 있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암은 피로와 과로로 인해 재발된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남편이 많이 힘들었구나 싶다. 너무 없이 자랐기에, 아득 바득 돈 벌려고 자기의 능력치 이상으로 자기 자신을 내몰았다. 누가 말하는 것처럼 그 '성공 포르노'에 빠져 그놈의 성공과 돈 때문에, 잠도 줄이고, 아등바등 일해서 남들 못지않은 '완벽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모든 사람이 그렇게 불나방처럼 자기 자신을 학대하며 몰아가며 돈만 벌며 살 순 없다. 


어쩌면 live to work or work to live라는 두 명제만 있다면 나는 무조건 후자를 선택하겠다. 돈과 명예는 삶의 한 상태일 뿐이며, 나는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일을 할 뿐이라 믿는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앞으로 휴가를 더 많이 써야겠다. 내게 주어진 이 한정된 시간을 가족과 함께 의미 있고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과 죽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