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을 쓰며 생긴 일

어린 시절에 대한 사적인 기억

by 이진

 글쓰기의 재미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쓰더라도 한 주제가 수렴되어 글이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정작 '이런 이야기를 써야겠어!'라고 굳게 다짐하고 펜을 들어도, 이상하리만치 이야기는 스스로 흘러가고 있다. 나는 2년 전 여름에 습작 소설을 한 편 쓴 적이 있다. 내가 그 해에 경험한 신비로운 일을 빗대어 쓴 소설이었다. 내용인즉슨, 특정 음악 한 곡을 반복 재생하여 들으며 밤을 지샌 주인공이 새벽녘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천사를 만난다는 내용이었다. 즉 천사와 '나'의 만남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었고, 그 외의 것들은 사실 그 신비로운 사건을 향해 달려가는 흐름에 불과했다.


 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자마자 메모장에 줄거리를 적어두고 그 흐름을 지표 삼아 글을 써 내려갔다. 글은 2주간 매일매일 썼다. 한 시간은 꼭 채워보자는 마음으로 매일 저녁 6시 즈음에는 꼭 노트북 앞에 앉았다. 시간이 지나고 글쓰기 습관은 다소 타성에 젖기 시작했다. 손가락은 움직이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싶었던 때다. 약 20페이지를 썼을 때 즈음이었다. 천사 이야기는커녕, 나는 갑자기 주인공의 가정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그것도 거의 절반 이상이 주인공의 아빠에 대한 이야기였다. 구체적으로는, 알코올 중독으로 가족들을 지치게 만드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결국 나머지 가족들은 집을 나오고, 이혼에 이르는 파국이 서술되었다. 여기서 내가 '서술되었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나 조차도 이러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리한 독자들이라면 예상했겠지만, 앞서 말한 내용의 상당 부분은 사실 나의 어린 시절 가정환경이 담겨있다. 이혼 부분만 빼면 그러하다. 나의 아빠는 내가 16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는데, 아빠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오랜 기간 동안 알코올 중독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고 지치게 했던 병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 아빠에 대한 낡은 기억은 물꼬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간 잊고 있던 오래된 기억이 가슴 깊은 곳에 아직 생생히 머물러있다는 것을 보았다. 이런저런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이 품고 있었는지도 모를 이야기들이 난데없이 툭툭 드러나기도 한다. 그 이야기가 결국 당신이고, 당신의 삶을 훨씬 더 생기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이다.


 우리는 누구나 특정 시기에 관한 상처와 흉터를 가지고 살아간다. 상처에 살이 돋아난 모습이 보기 싫을지도 모르고, 상처 난 기억을 결코 이해하거나 용서하고 싶지 않아서 회피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글이든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스스로와 그 주변을 이해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던 나 자신을 돌아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용기 있게 상처를 직면하는 순간 더 이상 그 기억은 머릿속에서 방황할 때만큼 거대하게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2년 전 나의 글쓰기는 절반의 페이지에 빼곡히 채운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들로 충분했다.


 습작은 습작으로 남겨졌다. 정작 쓰려고 했던 천사의 빛과 주인공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는 오간데 없이 가족에 대한 서술만 주욱 이어지니 더 이상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어려웠다. 그것도 모자라서 나는 예상치 못하게 오래된 책장 뒷 면에 그득히 쌓인 벽 먼지와 마주했다. 습작의 결과란 어지럽게 정리되지 않은 기억들 뿐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낡은 기억을 다시 차근차근 더듬으면서 과거 경험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나에 대해서 파고드는 일은 없다. 그리고 이러한 두더지 같은 면모가 결국 우리를 살아있게 만들고, 당신의 글을 더욱더 빛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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