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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요리가 쉬워졌다

by 이광

나는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까지만 해도 요리에 '요'자도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요리에 관심도 없었고 해먹을 시간도 없었다. 뭐를 좀 만들어보겠다고 한 번 한 적이 있었다.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부엌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끝에 음식을 해서 어떻게든 먹긴 먹었는데 문제는 치우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뭐를 만들어 먹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다. 그때부터 요리하는 남자를 보면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요리하는 여자도 멋있기는 마찬가지다. 어떻게 레시피도 안 보고 뚝닥 요리를 해내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나도 언젠가부터 요리에 관심이 생겼다. 그것은 이전의 글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점점 나이가 들어가시는 어머니와 부쩍 줄어든 대화를 다시 이어나가고 싶어서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요리였다. 처음에는 어렵게 생각했지만 쉽게 알려주는 유튜브 채널이 늘어나면서 그들이 하는 대로만 따라 하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요리에 자신감을 준 인물은 백주부(백종원)와 어남선생(탤런트 류수영)이었다. 유튜브 채널에서 요리법을 찾다가 알게 되었는데 보고 있으면 누구나 실패 없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의 팬만 사용해서 만드는 파스타였다. 그전에는 파스타를 집에서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파스타의 맛도 나가서 먹는 것보다 더 나을 거라는 보장을 할 수 없을뿐더러 집에서 만드는 일은 번거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남선생이 파스타를 만드는 것을 보니 마치 라면 끓이는 것처럼 쉬워 보였다. 라면처럼 파스타를 해 먹는다면 전혀 번거로운 일이 아닐 것이고 언제든지 가볍게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스타를 집에서 만들면 보통 냄비와 프라이팬을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프라이팬 하나만으로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일단 설거지거리 하나가 줄뿐만 아니라 조리도구를 늘어놓고 요리하는 티를 내지 않고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용기를 얻어 다가오는 주말에 곧장 따라 해 봤다. 먼저 팬에 엄지와 검지로 오십 원짜리 크기만큼의 면을 쥐어 일일분으로 계산해서 넣고, 물, 소금 약간, 간 마늘, 약간의 올리브 오일을 한꺼번에 넣는다. 그렇게 10분 정도 끓인 다음 팬에 육수를 약간만 남기고 나머지 육수는 국자로 떠내서 그릇에 담아둔다. 불을 켠 상태에서 면에 토마토소스를 넣고 섞어 주면 토마토 파스타가 되고 크림을 넣으면 크림 파스타가 된다. 아니면 베이컨이나 새우, 소시지를 넣어 응용할 수도 있다. 면을 젓가락으로 돌돌 말아서 그릇에 담고 후추와 파슬리 가루를 솔솔 뿌리면 완성이다. 이것이 내가 원래의 레시피를 나만의 방식으로 최대한 간편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마치 라면 끓이듯이.


언젠가부터 토요일 오전을 요리하는 시간으로 정해두고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음식을 만들고 있으면 어머니께서 옆에서 재료 다듬기나 계량하는 일을 도와주신다. 그러면 훨씬 빨리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만든 것들을 나열해 보면, 메추리알 조림, 연근 조림, 우엉조림, 잡채, 양배추 김치, 오이소박이, 파김치, 코다리 찜, 미역국, 동태탕, 된장국, 청국장찌개, 김치찌개, 홍합탕, 콩나물국, 각종 냉국 등등이 있다. 한 번은 당근이 선물로 들어왔다. 많은 당근으로 뭘 만들어볼까 검색하다가 당근 라페라는 프랑스식 당근 샐러드를 만들었다. 채 썬 당근에 레몬즙, 올리브 오일, 후추, 소금, 파슬리 가루를 넣어 버무린 후에 냉장고에 넣어 두고 먹는다. 만드는 방법이 간단한데도 맛은 매우 훌륭했다. 또 언젠가는 오이장아찌를 만들었는데 워낙 빨리 없어지는 바람에 세 번을 더 만들기도 했다.


주말에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어머니와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도 좋아하시고 주말이 다가오면 이번에는 무엇을 만들 거냐고 물으신다. 처음에 몇 번은 음식의 간을 조금 세게 해서 재료를 넣고 또 넣다 보니 양이 점점 불어나 나중에는 의도와 다르게 푸짐한 잔치음식이 되어버린 적도 있었지만 그 뒤로는 간을 맞출 때는 항상 처음에는 싱겁게 했다가 마지막에 소금이나 소스를 조금 더 추가해 간을 맞춤으로써 실패를 줄일 수 있었다. 뒷정리하는 것도 점점 빨라지면서 음식 만드는 것이 그렇게 번거로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족이 맛있게 잘 먹으면 왠지 마음이 뿌듯해지고 음식 하느라 들인 시간과 정성이 그 자리에서 보람으로 환산되는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럴싸한 요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식사 때 먹을 반찬이나 국 정도 만드는 수준이지만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다. 어떤 음식을 만든다 하더라도 더 이상 '나는 못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만 봐도 큰 발전이라 할 수 있다. 늘어나는 소스통을 볼 때 '이러다가 언젠가 반찬가게 하는 거 아니야?'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하지만 이 정도가 딱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더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소스통을 늘리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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