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칼의 노래>

충무공 이순신은 인간이었다.

by 흐르는 강물처럼

신영복 선생님은 <나무야, 나무야>에서 광화문 네거리에 외롭게 서있는 충무공 이순신 동상을 바라보다 장군이 지나가는 엿장수에게 하는 말을 엿들었다.

당신은 광화문 네거리에 서 있는 충무공 동상 속에는 이순신 장군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밤중에 ‘구리 이순신’이 그 무거운 입을 열어 지나가는 엿장수에게 구리 갑옷을 벗겨달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부릅뜬 눈으로 큰 칼 짚고 서서 경복궁과 청와대를 지키는 일을 이제 그만두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한다고 하였습니다. (95쪽)


세종대왕과 더불어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 전투에 사용할 수 있는 전선은 단지 12척에 불과했지만, 그 12척으로 300척이 넘는 적을 이긴 사람이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그런 그를 광화문 네거리에 세워두는 건 그의 행적과 삶을 기념하기 위해서지만, 그는 그런 걸 원치 않았다.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김훈 선생은 소설 <칼의 노래>를 통해 왜 이순신 장군은 경복궁과 청와대를 지키는 일을 그만두고 어디론가 불쑥 떠나고 싶어 하는지를 설명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멈출 수 없었던 감탄은 소설 속 주인공 이순신 장군의 심리 묘사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의 혼령을 뒤집어쓰고 김훈 선생이 이순신 장군이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의 주된 골격은 <난중일기(亂中日記)>만이 아니라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선조실록(宣祖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장계(狀啓: 조선시대 왕명을 받고 외방에 나가 있는 신하가 자기 관하의 중요한 일을 왕에게 보고하거나 청하는 문서)>, <유시(諭示: 조선시대에 왕이 신하 및 백성들에게 내린 훈유)>, <교서(敎書: 임금이 내린 명령서)>, <행장(行狀: 죽은 사람의 행적과 성품에 대한 기록)>에 담긴 이순신 장군이다.


김훈 선생은 얼마나 꼼꼼하고 치열하게 이순신 장군에 대한 기록을 찾아 읽고 정리하며 그의 삶을 마음속 하얀 종이에 그려 나갔을까? 난중일기에서 김훈 선생은 이순신 장군이 중언부언하지 않는 치열한 기록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단다. 수사를 배제하고 사실에 입각하여 매일매일 바다의 날씨까지 꼼꼼하게 살피며 적과 아군의 형편을 기록한 이순신 장군의 필적을 "무인다운 글쓰기의 전범"이라고 정의했다. 소설 첫 장면인 백의종군(白衣從軍: 조선 시대, 직위를 잃거나 자발적으로 관직을 버린 상태로 군복(흰옷)을 입고 군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말하며, 잘못을 저지른 관리가 책임을 지고 만회할 기회를 얻는 형벌 중 하나)부터 마지막 장면인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 이순신 장군은 치열했다. 멀리 내다보지 않았다. 자기 앞에 놓인 그때 그 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쳤다. 김훈 선생이 마음에 그린 이순신 장군은 치열한 인간이었다.


이 세상에 위로란 본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장독(杖毒: 장형(杖刑)으로 매를 심하게 맞아 생긴 상처의 독)으로 쑤시는 허리를 시골 아전들의 행랑방 구들에 지져가며 남쪽으로 내려와 한달 만에 순천에 당도했다. 내 백의종군의 시작이었다. (14쪽)

일본군은 잔인했다. 살해한 적은 코를 베어 전과를 보고하는 데 사용했는데, 살아있는 조선 사람이 눈에 보이기만 하면 인정사정없이 닥치는 대로 죽여 코를 베었다. "피난민들은 다만 얼굴 가운데 코가 있기 때문에 죽었다. (15쪽)" 의금부는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이후 조정의 기동 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음으로써 조정을 능멸했고, 임금을 기만했다고 말했다. 이길 수 없는 전투를 위해 출격할 수는 없었고, 속절없이 죽어갈 병사들이 불쌍해서 임금에게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존중해 달라고 부탁했다. 무능력한 임금은 이순신 장군이 한없이 필요했지만, 동시에 유일무이한 존재로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홀로 지켜내는 이순신 장군을 한없이 두려워했다. 서울로 향하는 함거에 오른 이후 삼도수군통제사 자리는 원균에게 돌아갔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 통제영에서 삼 년 반 동안 확보한 군비, 곧, 조선 수군 총군비의 팔 할은 하룻밤 하룻낮 전투에서 칠천량 앞바다에 수장되었다. 백의종군 중 이순신은 "방책 없는 세상에서, 목숨이 살아남아 또다시 방책을 (29쪽)" 찾기 시작했다. 수도 한양까지 진격한 일본군으로부터 달아난 임금은 급히 서둘러 다시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했다. 통제할 수 있는 수군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수군을 통제하라고 명령했다. 임금이 내린 명령에 이순신 장군이 답했다.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신 이 올림 (53쪽)"


내가 적을 죽이면 적은 백성을 죽였고 적이 나를 죽인다면 백성들은 더욱 죽어나갈 것이었는데, 그 백성들의 쌀을 뺏고 빼앗아 적과 내가 나누어 먹고 있었다. 나의 적은 백성의 적이었고, 나는 적의 적이었는데, 백성들의 곡식을 나와 적이 먹고 있었다. (100쪽)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을까? 일본군은 점령한 한반도 곳곳에서 조선의 백성들이 힘들여 마련해 둔 곡식을 강탈하여 전쟁물자로 사용했다. 전쟁물자가 부족한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을 몰아내거나 모조리 잡아 죽인 후 그들이 조선의 백성으로부터 빼앗은 곡식을 다시 빼앗아 전쟁물자로 사용했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의 끝자락에는 아무런 잘못 없는 백성들이 모여 있었다. 백성을 위해 전쟁을 해나가야만 했지만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빼앗긴 백성들의 곡식을 다시 빼앗아 사용해야만 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이순신 장군은 고뇌했다.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칼이 닿지 않고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저쪽에서, 세상은 뒤채며 무너져갔고, 죽어서 돌아서는 자들 앞에서 칼은 속수무책이었다. 목숨을 벨 수는 있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았다. (106쪽) ... 내가 임금의 칼에 죽으면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고 내가 적의 칼에 죽어도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다. 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득히 넓었고 나는 몸 둘 곳 없었다. (121쪽)

백의종군한 이순신 장군이 수중에 남아있던 전선 12척으로 300척이 넘는 일본 수군을 상대하여 승리를 거둔 명량해전 이후 일본군은 이순신이 태어나 자란 고향 아산으로 육군을 보내 셋째 아들 이면을 살해했다. "면은 어깨로 적의 칼을 받았다. 적의 칼이 면의 몸을 세로로 갈랐다. 죽을 때, 면은 스물한 살이었다. 혼인하지 않았다. (123쪽)" 셋째 아들 면이의 죽음 소식을 들은 날 이순신 장군은 "몸 깊은 곳에서 치솟는 울음을 이를 악물어 참았다. 밀려내려 갔던 울음은 다시 잇새로 새어 나오려 했다.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131쪽)" 그런 슬픔을 억누르면서 이순신 장군은 계속해서 다가오는 해전을 위해 하루하루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준비해 갔다. "싸움은 싸움마다 개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싸움이 [그]에게는 모두 첫 번째 싸움이었다. (146쪽)"


죽은 면이 꿈에 나타나는 밤이 계속되었다. 꿈에서 깨어나는 새벽에 식은땀이 전신을 적셨다. 등판이 구들장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매일 밤 똑같은 꿈이었다. (158쪽) ... 살아 있는 아픔이 살아 있는 몸속에 박혀 있었으나 병의 실체는 보이지 않았다. 병은 아득한 적과도 같았다. 흐린 날들의 어깨 쑤심증은 내 몸속에 들어와 살고 있는 적의 생명으로 느껴졌다. (168쪽) ... 적과 임금이 동거하는 내 몸은 새벽이면 자주 식은땀을 흘렸다. 구들에 불을 때지 않고 자는 밤에도 땀은 흘렀다. 등판과 겨드랑과 사타구니에 땀은 흥건히 고였다. 식은땀은 끈끈이처럼 내 몸을 방바닥에 결박시켰다. 나는 내 몸이 밀어낸 액즙 위에서 질퍽거렸다. 잠에서 깨어나는 새벽에, 나는 내가 어디에 와서 누워 있는지 알지 못했다. 밤에 바다로 나아가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겨드랑이 밑에서 땀이 식은 한기에 소스라칠 때 내 의식은 식은땀과 더불어 내 바닷가 수영 숙사로 돌아왔다. (171쪽)

이순신 장군은 악몽에 시달렸다. 소화하여 흘러 보내야 할 기억들이 쌓이고 쌓이면 악몽이 되어 밤마다 우리를 찾아온다. 전선 주변 바다 표면이 붉은 피로 물든 장면을 수없이 바라봐야 했던 그, 살기 위해서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 나라와 백성을 빼앗으려고 발악하는 적들을 수없이 죽여야만 했던 그, 모두가 걱정하는 와중에도 걱정하지 말아야 했던 그, 모두가 포기한 순간에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했던 그, 모두가 도망칠 때도 홀로 한반도의 남해를 지켜냈던 그의 마음속에는 잊고 싶고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이 가득했다. 현대 의학은 악몽에 시달리는 이순신 장군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진단한 후 조기 전역시켰을 거다. 몸과 마음 사이 괴리 현상을 이순신 장군은 도대체 무엇으로 극복했을까?


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희망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언어로 개념화되는 어떠한 미래도 생각하지 않았다. 희망은 멀어서 보이지 않았고, 희망 없는 세상에서 죽음 또한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지만, 살아 있는 나에게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이 분명했다. (186)

이순신 장군은 분명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임금을 지켜야 했고, 나라를 지켜야 했고, 백성을 지켜야 했고, 임금과 나라와 백성을 위협하는 일본군을 살아있는 한 모든 것을 바쳐 조선 땅에서 몰아내려 했다. 그래서 흉년이 든 겨울 수많은 격군과 사부가 병들어 죽고 굶어 죽어갈 때도, 이순신 장군은 먹었다. "부황든 부하들이 굶어 죽어가는 수영에서 나는 끼니때마다 먹었다. 죽은 부하들의 시체를 수십 구씩 묻던 날 저녁에도 나는 먹었다. (207-8쪽)" 어떻게든 살아있어야 했다. 살아야 있어야 한 번이라도 더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고, 한 번이라도 더 전투에 참가해야지 임금과 나라와 백성을 하루라도 더 지킬 수 있었다.


어느 날, 적들이 모두 떠나버린 빈 광양만 바다의 적막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 견딜 수 없는 적막보다는 임금의 칼에 죽는 편이 오히려 아늑할 듯싶었다. 적들이 홀연 스스로 빠져나간 그 빈 바다의 텅 빈 공간, 적이 안개처럼 스스로 물러가서 더이상 아무런 조준점도 내 앞에 남아 있지 않는 그 빈 바다를 상상할 수 없었다. (309-310쪽) ... 내 모든 것이 집중되었다. 그날 저녁에, 내 숙사 토방에 걸려 있던 면사첩을 끌어내려 불 아궁이에 던졌다. 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 중심은 가볍고 소슬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러져 죽는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버린 빈 바다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었다. (314쪽)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일본은 조선땅에 들어와 있던 일본군에게 전원 철수 명령을 내렸다. 이순신 장군은 철수하는 일본군에게 어떻게든 많은 피해를 입히기 위해 노량에서 또 한 번의 수중전을 감행했다. 이미 죽을 각오를 내린 마음으로 새벽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했다. "이제 죽기를 원하나이다. 하오나 이 원수를 갚게 하소서. (336쪽)" 굳이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도망가는 적을 하나라도 더 잡으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순신 장군은 전쟁 종결 후 자기가 감당해야 할 삶의 다음 단계를 예견하고 있었던 거 같다. 그랬기에 한 명이라도 더 죽인 후 자신 또한 바다에서, 적들의 시체가 가득한 바다에서 삶을 마감하려 했고, 결국 그렇게 했다. 근접전 중 적이 쏜 총알이 이순신 장군의 왼쪽 가슴을 뚫고 들어왔다. 이전과는 다른 고통에서 그는 순식간에 다가올 죽음을 직감했다.


내 시체를 이 쓰레기의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졸음이 입을 막아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바람결에 화약 연기 냄새가 끼쳐왔다. 이길 수 없는 졸음 속에서, 어린 면의 젖냄새와 내 젊은 날 함경도 백두산 밑의 새벽안개 냄새와 죽은 여진의 몸냄새가 떠올랐다. 멀리서 임금의 해소 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냄새들은 화약 연기에 비벼지면서 멀어져갔다. 함대가 관음포 내항으로 들어선 모양이었다. 관음포는 보살의 포구인가. 배는 격렬하게 흔들렸고, 마지막 고비를 넘기는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선창 너머로 싸움은 문득 고요해 보였다. (341-2쪽)


이순신 장군, 그는 묵묵했고, 성실했고, 단호했고, 한결 같았고, 지극했다.


2025.09.10.(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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