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사람이 많은 시간을 들여, 그것도 한 해 여행의 절반이 넘게 유타로 가는 까닭은 사는 곳에는 없는 유타가 지닌 특별한 매력 때문이다. 덜컹거리며 기우뚱기우뚱 굴러가는 자동차에 몸을 맡기고 가노라면, 때로는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에 취하고, 때로는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흙먼지에 가려 희미한 풍경에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한다. 황톳빛 사암이 빚어내는 낯선 모습에 이끌리다가도 어느 순간 짙은 회색 물결이 넘실대는 골짜기에 사로잡혀 온종일을 보내고도 모자라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자동차 여행만으로도 다양한 매력을 지닌 곳이기는 하지만, 차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만 볼 수 있는 곳들도 많다. 따지고 보면 걷는 길이 훨씬 더 많고 보다 더 은밀한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동안은 넉넉하지 않은 시간 때문에 대부분은 자동차 여행에 집중해왔다. 짧은 거리를 걷지 않은 것은 아니나 기껏해야 두어 시간 안팎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걷는데 하루를 썼다. 8마일의 그리 길지 않은 하이킹 코스기 때문에 걷는데만 힘을 쓰면 네 시간이면 넉넉하게 걸을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가면서 둘러보고, 길섶에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멈춰서 살피면서 노량으로 가다 보니 꼬박 하루를 보내고서야 트레일 입구로 나올 수 있었다.
코스 정보
/거리: 8.0 miles /등반 고도: 787 feet /난이도: Moderate /선호도: 5 starts /시즌: Year Round /좌표: 38.582910, -110.802778
특징
리틀 와일드 호스/벨 캐니언은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Capitol Reef National Park)과 고블린 밸리 주립공원(Goblin Valley State Park)에서 가깝다. 고블린 밸리 주립공원과는 불과 30분 거리에 있으며,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과도 한 시간 반 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다. 넓게 보면 한 구역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공원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이 그 주변 지역에도 비슷하게 보이는 것을 보면 이곳에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리틀 와일드 호스 캐니언은 주변 지형과 비슷하고 벨 캐니언은 슬롯(slot) 캐니언으로 주변의 지형과는 다소 다른 면모다. 고블린 밸리 주립공원 입구에서 트레일 헤드까지 가는 길은 포장이 되어있으므로 손쉽게 갈 수 있다.
주변에 볼만한 경치가 많아 시간을 넉넉하게 쓰면 다른 어떤 곳보다도 알찬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주변에 캠프 그라운드가 즐비할 뿐만 아니라, 디스퍼스드 캠핑 스폿이 무수히 많기 때문에 캠핑 애호가라면 군침이 돌만한 곳이다. 어떤 이들은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의 여행 가치를 좀 낮게 평가해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 생각하기도 한다. 굉장히 안타깝다. 오히려 이곳은 다른 어떤 국립공원보다도 여행할 만한 곳이 요소요소에 숨어 있으므로 한번 다녀갈 것을 적극 추천한다. 이들과 관련한 여행 글을몇 편 쓴 것이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들은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고블린 밸리는 첫눈에는 별 볼일 없는 곳으로 생각할 만큼 눈에 띄는 것이 별로 없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원 안으로 들어가 천천히 살피다 보면 아기자기한 고블린들이 고물고물 모여있는 특이한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더구나 고블린 밸리에서 캐피톨 리프로 가는 길가 풍경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들 만큼 독특하므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살펴볼만하다.
함께 걸어보자
트레일은 평범하게 시작한다. 이곳은 가족 단위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아주 어린아이를 둘러업거나 손을 잡고 오는 이가 많다. 그만큼 트레일은 난이도가 높지 않아서 아이들을 둘러업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다. 편평하던 길이 조금씩 오르막으로 바뀔 무렵 , '어서 와, 여기는 처음이지?' 하듯이 골짜기 바닥 한가운데 미루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서있다. 이 트레일을 들고나는 길 한가운데 있어서 마치 이곳의 상징물처럼 보인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트레일이 시작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길은 조금씩 울퉁불퉁해지고 주변의 산세와 바위의 모습은 흥미진진해진다. 아이들은 재미있어라 바위를 기어오르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면서 자연을 즐기고, 어른들은 걷기에 바쁘다. 어느 누구도 힘든 내색을 하는 이는 볼 수 없다. 당연하겠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누군들 즐겁지 아니할까? 몸이야 조금 고되고 땀도 나겠지만, 그야 대수는 아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늘 대수는 마음에 달려있다. 좋아하는 일이고, 중요하거나 긴요한 일이라면 대수롭게 여기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누군들 대수롭게 여길까?
어느덧 골짜기는 좁아져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제법 슬롯 캐니언의 모습을 닮았다. 아직은 야트막하고 경사가 급하지 않은 바위들이라 사람들은 길로 가기보다는 바위 위로 걷기를 즐긴다. 겉이 까칠까칠한 사암은 이럴 때 진가를 발휘한다. 설렁설렁 바위를 타도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바위를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유타에 흔한 붉은 바위들은 대부분 이런 사암이다. 사암지역에 가면 꽤 높직한 바위를 쉽사리 오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곳이나 무턱대고 올라서는 곤란하다. 걸을 수 없는 곳들이 있으니 항상 시작하기 전에 표지판이나 안내문을 숙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곳에 따라서는 관리가 느슨한 곳도 있지만, 꽤 엄격한 곳들이 많다. 이런 곳에서 잘못 알고 이런 행동을 하다가 레인저 눈에 띄면 여지없이 벌금을 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걷는데 신경을 쓰다 보니 주변이 조용해지는 줄도 몰랐다. 길이 나뉘면서 대부분 사람들은 벨 캐니언 입구로 갔기 때문이다. 덩달아서 길도 좁아지고 바위도 높아져 이제 바야흐로 슬롯 캐니언이구나 생각했는데, 이 구간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길지 않은 구간이면서도 슬롯 캐니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들은 모두 볼 수 있다. 이런 곳을 걸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자연의 힘은 대단히 크면서도 때로는 섬세하다는 것이다. 그저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다가 때로 얼기도 하면서 조각됐을 골짜기의 흔한 바위 조각들이 세심하고 정성스럽게 다듬은 예술가의 조각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무늬와 곡선들은 오히려 사람의 솜씨를 넘어섰다. 그럴 것이다. 사람들이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예술을 하거나 글을 짓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 조금 더 확실해진다.
골짜기가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풍경들이 마치 파노라마 영상처럼 옆으로 지나칠 때마다 자연은 신기하기보다는 차라리 신비롭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느 하나라도 똑같은 부분이 없이 천차만별인 바위들은 그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이랄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하나의 커다란 바위 덩어리에서 빚어졌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그들이 누군가의 의도되지 않은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도 믿어지질 않는다.
더더구나 놀라운 것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이런 환경에서도 생명체들이 서식하거나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람에 날린 씨앗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든 떨어진 곳에서 조건이 맞기를 기다린다. 쉽사리 싹을 틔우지 못하면 몇 년이고 버티고 버티다 땅이 조금이라도 촉촉해지면 재빨리 세포를 분열시켜 새로운 생명을 싹 틔운다. 넉넉하지 않은 수분을 이용해 서둘러 줄기를 키우고 가지를 뻗고 잎을 내보내 생존에 필요한 영양소들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강인하고 질기 궂은 것이 생명이다. 어떤 종류의 생명이든 차별받지 않고 살아있을 권리는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환경과 조건과 여건이 다르다고 손가락질하거나 구별하고 나누어 분리해 차별하는 사람들의 습성은 이제 부끄러운 일이 되어야 한다.
두리번두리번 걷다 보니 풍경이 달라졌다. 제법 가파란 언덕을 올라서니 좁다란 골짜기가 끝나고 널찍한 들판이 나왔다. 그리고 들판의 가장자리에 솟아있는 바위산들을 따라 난 좁은 길을 따라 걷는다. 트레일은 이제 반환점을 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겠지. 한 가지가 너무 오래가면 지루해지기도 하고 더 피로를 느끼기도 하는데, 때맞춰 들판이 열렸다.
이런 모양의 바위들이 많은 곳을 가본 적이 있다. 그것도 한 곳이 아니라 아주 여러 곳이다. 그렇다, 유타의 험지가 품고 있는 바위 모양 가운데 꽤 많은 바위들이 이렇게 생겼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캐피톨 리프 국립공원의 바위들이 그렇고, 캐니언 랜즈의 니들스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인디언 크릭의 바위들이 그렇다. 그뿐이겠는가? 모압 지역의 돌산은 대체로 이런 모양새를 하고 있다. 앞서 지나온 사암들과는 결이 좀 다른 바위들이다. 특히 인디언 크릭의 바위는 높이가 꽤 높아 암벽등반가들의 놀이터가 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이온 캐니언의 골짜기와 바위산들의 생김새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유타를 특징 짖는 또 한 가지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잇따르는 병풍바위들은 또 다른 골짜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지나온 길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는 길이 열리고 그 길 양편엔 깎아지른 듯한 바위들이 즐비하다. 짐작이 맞다면 곧이어 본격적으로 슬롯 캐니언이 시작될 것이다. 이마엔 슬슬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할 만큼 적당히 덥다. 그늘을 벗어나면 햇살은 쨍쨍 내리쬐지만, 아주 뜨겁지는 않아 걷기에 딱 알맞다. 때맞춰 바람이 불어주면 좋겠지만, 마음대로 되질 않는 것이니 투덜댄다고 될 일은 아니다. 어쨌거나 좋다!
마치 슬롯 캐니언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한 길이 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 겨우 한 사람 지날 공간밖에 열려있지 않은 구간도 있고, 마치 위에서 화살이라도 쏘듯이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구간도 있다. 불과 몇 마일 되지 않는 길인데도 이처럼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푹신한 모래길을 걷기도 하고, 바위를 기어오르기도 하는가 하면 물을 건너기도 한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과 마주치면 피하기도 어려워 좀 넓은 곳에 서서 마주오는 사람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가야 한다.
요즈음 다녀온 슬롯 캐니언 가운데 애리조나의 앤틸로프 캐니언과 유타의 벅스킨 걸치가 있다. 그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앤틸로프 캐니언이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해서 골짜기로 들어오는 빛에 따라 사암의 빛깔이 달리 보이는 신비로운 곳이라면, 벅스킨 걸치는 웅장하고 장대하면서도 길이가 길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는 그들의 가운데쯤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그 둘의 특징이 한 곳에 다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바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길을 걷다 보면 힘든 줄도 모르게 어느덧 출구를 만나게 된다. 들어갈 때는 어서 오라는 것처럼 보이던 나무들이 이젠 잘 가라고 인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참, 사람의 마음이 이렇다. 어렵고 힘들지 않으면서도 매우 흥미로운 트레일은 이렇게 끝이 난다. 이 나무를 지나 조금만 더 걸으면 주차장이 나온다. 시작과 끝이 분명하게 보이는 트레일,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다양한 자연현상과 그와 마주하는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걷기였다면 다음에 한 번 더 온다 한들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