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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Jun 02. 2022

딸에게쓰는편지75;<나의해방일지>오!빛나는해방의시간

 

뙤약볕 속 모진 노동, 그리고 짧은 휴식시간.

갑자기 바람이 불어 모자가 허공을 날라 도랑 건너에 안착한다.

미정이 일어나 건너를 보고, 엄마와 오빠 창희가 이쪽이 빠르니 저쪽이 빠르니 군소리를 한다.     


“있어봐.”     


쳐다보던 구씨가 신발을 고쳐 신고 일어난다.     


“제가 갔다 올게요.”     


그제야 창희가 일어나보지만 이미 구씨는 도랑 반대편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여기(반대편에) 있는데...”    

 

창희가 어이없어하며 말해도 구씨는 묵묵히 걸어 올라간다.

그리고 돌아서더니, 달린다!     

창희가 보기에 도저히 뛰어 건널 수 없는 넓이의 도랑을 넘으려고 구씨는 달린다. 아니 날아오른다. 비행기가 이륙하듯이 날아올랐다가 착지하여 미정의 모자를 집어든다.     


“날 추앙해요.”

“추앙이 뭔데?”

“응원하는 것. 너는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것.”     


불가능해 보이는 건너기. 구씨는 그 불가능이 가능함을 증명해서 뭐든 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자신이 미정을 추앙할 것임을 몸으로 맹세한 것일까?     


사랑하는 딸!

이 장면은 최근 종영한 <나의 해방일지> 4화의 마지막 장연(이자 5화의 첫 장면)이야.

오랜만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였고, 그 중에서도 가장 멋지고 인상적인 장면이었어.     


“영화(드라마, 이야기)는 현실과 꿈(판타지) 사이의 긴장이다.”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는 지나치게 현실적이거나 판타지적이어서 긴장감이 없지. 긴장감이 없으니 활력도 없고 참신하지도 않아. 구차하거나 황당하거나.     


내가 이 장면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서 비로소 판타지적인 요소가 활짝 드러나기 때문이야. 지극히 현실적이 이야기 속에서 “추앙하라”는 등의 비현실적인 대사로 기회를 엿보다가, 여기서 완벽한 판타지를 현실 속에 꽃피우지.(길게 얘기할 순 없지만, 마블 영화 식으로 ‘판타지를 현실처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판타스틱한 시간을 만들어낸다는 것! 이게 중요해. 그런 점에서 <나의 해장일지>는 정말 멋진 판타지 드라마야.)     


현실은 대체로 우호적이지 않지. 우리를 억압하고 족쇄를 채워. 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꿈을 꾸고 판타지를 만들지만, 그렇다고 현실의 나를 해방시키진 못해. 나는, 내 몸은, 현재 현실에 저당 잡혀 있으니까.     


드라마 속의 구씨(손석구)는 두터운 갑옷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지. 흔들리는 마음을 달래려고 시간만 있으면 술을 마셔. 고슴도치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웅크려 있는 사람이야.    

 

그런데, 그렇게 처절할 정도로 자신을 닫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거야. 복면가왕이 자신을 진면목을 공개하듯이, 불현 듯 신발 끈을 묶고 달리기를 하더니 환히 자신을 드러내지. 갑옷을 벗어버리고, 찬란한 속살을 활짝 피워내. 꽃을 피우듯. 새가 날 듯.     


짧은 순간이지만 구씨는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해방을 맛보고, 나는 그 해방을 순간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어. 작가 박해영과, PD 김석윤과, 배우 손석구와, 관객인 내가 하나로 통하는 순간이 온 거지. 브라보! 그럼 된 거 아닌가?     


그러면 된 거 아닌가?

그런 해방의 시간이 1초면 어때? 1초가 차츰 5초가 되고, 30초 1분이 되고, 3분 5분이 되면 좋잖아. 그렇게 늘어나지 않아도 하루에 단 3초만 해방의 시간이 있다면 우린 그래도 살아갈 만 하지 않나?    

 

“난 사람이 너무 싫어.”

“난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던 사람이 구원을 받듯이, 우리도 조금씩 해방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발 한발...


그러기 위해서는 발걸음을 내딛어야 해. 구씨가 껍질을 벗고 날아오르듯이, 잠깐이라도 나의 본모습을 드러내야 해. 나의 맨 살을 일광욕 시켜야 해.     

그 일광욕을 통해서 나의 증오심과 열등감과 울분과 짜증을 말려버려야 해.

그러다보면 다 사라지고 하나만 남지.


판타지 드라마답게 <나의 해방일지> 마지막 대사는 그런 미정의 상태를 말해고 있어.

모든 삶의 찌꺼기가 사라지고 남은 아름다운 결정체, 사랑.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어.”     


이 마지막 대사를 허황되고 뜬금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드라마의 판타지를 믿지 않는다고 봐야지. 하지만 구씨가 뜬금없이 끼어들어 하늘을 날아오른 그 순간부터, 이미 드라마의 결말은 정해져 있던 것 아닐까? 봇물이 터지면 막을 수 없듯이, 사랑과 자유와 해방을 바라는 우리의 꿈 역시 막을 수 없는 거니까.     

한 순간이라도 해방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응원을~~!

     --- 딸에게 빨리 해방의 날이 오기를 바라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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