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성을 마주하다
불면의 기간에는 욕구가 선명해지는데 스스로가 힘이 있다고 믿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동안 금기시했던 다양한 욕구가 올라왔다.
제일 처음은 화였고 다음으로는 공격성이 올라왔고 그다음은 성욕이었다.
분노, 공격성, 성욕 같은 욕구는 생기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누르고 또 누르며 살아왔다. 엄청난 힘으로 눌러오던 것을 번아웃 이후에 누를 힘이 없어져버리고 스스로의 힘을 믿게 되자 마구 튀어나왔다.
불 같은 화를 마구 표출하는 것은 나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화 다음에 찾아온 공격성 또한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그동안 공격성에 대한 내성이 하나도 길러지지 않았고 이건 내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거친 언행들을 무서워했다.
‘누구 하나만 걸려라. 다 죽여버리겠다.’ 싸우고 싶었다. 부수고 싶었다. 흠씬 패고 싶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갑자기 공격적인 이미지들이 팝업창처럼 나타나곤 했다. 공격성이 나를 향하면 운전을 난폭하게 하거나 길을 건널 때 제대로 보지 않고 그냥 건너버린다거나 밥을 먹지 않는다거나 독한 술과 담배를 피우는 일탈 행동을 했다(원래 술은 잘 못 마시고 비흡연자입니다).
아이를 낳기 전 불면의 시기에는 여러 가지 해결방법이 있었다. 수면제를 먹거나 마사지를 받거나 목욕탕에 가거나 드라이브를 하거나 심장이 터질 때까지 뛰었다. 하지만 24시간 나의 관심과 케어를 필요로 하는 아이가 생기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거의 없었다.
일단 집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아이도 너무 어리고 코로나 상황도 계속됐으므로. 하루 종일 아이를 먹이고 놀아주고 재우면 하루는 너무 금방 갔다. 아이를 안고 베란다에서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멍해지고 아득해졌다. 이렇게 하루가 가는 것인가..
그래서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와 아이가 밤잠을 시작하는 9~10시경에는 꼭 밖으로 나와서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차 안에서 블루투스 마이크로 노래를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목이 아파서 부르기 힘들 때까지 불렀다. 하지만 이걸로는 불타오르는 내면의 공격성이 잠잠해지지 않았다.
이 엄청난 공격성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매일 독한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
독한 술을 스트레이트로 마시면 가슴이 좀 진정되었다. 술에 취해 이완이 되고 복잡한 것들에서 조금은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수면제 없이도 잠들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수면제를 복용한 밤에는 잘 깨지 못한다. 그럼에도 2-3시쯤 아이가 울면 내가 분유를 타서 먹였는지 빈 젖병이 아침에 보인다. 그런데 내가 먹인 것은 전혀 기억에 없었다. 순간 무서웠다. 내가 수유하다가 팔에 힘이 풀려 아이가 떨어지면 어쩌나, 아이가 먹고 토했는데도 내가 발견을 못해서 잘못되면 어쩌나. 기억이 없다는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자는 날에는 수면제를 먹을 수가 없었다.
4일 연속 양주를 마셔대니 월급보다 많은 돈을 썼다. 육아휴직 중에도 적은 금액이지만 월급이 나오는데 이걸 4일 만에 다 써버린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날은 인사불성이 되어 경찰차를 타고 귀가한 적도 있다. 마구 발산하고 나니 현실적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돈을 그렇게 펑펑 쓰면 가게에 부담이 간다. 그리고 간이 좋지 않은 나에게 술을 마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호기심에 시작했어도 담배 중독이 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나아지지 않으니 내가 하지 않은 일들을 하면 괜찮아질까라는 생각으로 일탈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보는 가족들은 나의 돌발행동과 일탈에 대해 걱정하고 무서워했다. 특히 친척 중에 알코올 중독으로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것을 본 남편은 나의 이런 일탈을 굉장히 무서워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가장 무서웠던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대로 정말 미쳐버릴 것 만 같았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