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말거’의 진실

by Rudolf


얼마 전에 내가 쓴 글 중간에 들어간 말 ‘믿거말거’에 대해 어느 분이 물었다.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무슨 뜻이냐는 것이다.

재미있자고 만든 말인 듯하지만, 설명이나 제대로 함 해봐라…….

‘믿거말거’, 무슨 뜻일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대략 두 가지로 좁힐 수 있었다.

하나는 ‘믿거나 말거나’의 야릇한 준말. 또 하나는 ‘믿고말고’를 그냥 그렇게 표현한 말. 그런데 이 두 가지 해석은 사실 정반대의 뜻을 내포한다.


첫째, ‘믿거나 말거나’에 대한 소고(小考)


‘믿거나 말거나.’ 영어로는 ‘believe it or not’, 라틴어로는 ‘crede aut non’, 한자로는 信不信由稱(신불신유칭).

1918년 미국의 시사만화가 로버트 리플리(Robert LeRoy Ripley, 1893~1949)는 ‘뉴욕 글로브(New York Globe)’ 신문 1918년 12월 19일자에 풍자만화 ‘믿거나 말거나!(Believe It or Not!)’를 처음으로 게재했다. 그 내용은 운동경기에서 일어난 진기한 일에 대한 것인데, 이때 독자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야구선수 출신이었다.) 그 덕에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편씩 실리다가 나중에는 매일 연재하면서 전세계에서 일어난 온갖 기이한 사건들을 소개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29년 대형출판사인 ‘킹 피처스 신디케이트(King Features Syndicate)’에서 리플리의 만화를 미국의 300개에 이르는 신문에 동시에 게재하면서 그 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나오게 되고, 결국 단편영화로도 만들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그 ‘믿거나 말거나’에 그렇게 열광했을까? 영어에 ‘take it or leave it’이라는 표현이 있다. 어떤 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선택하라는 뜻이다. 이때 제시하는 쪽은 사실 아무런 부담이 없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떤 쪽을 택하게 될까?

사실 ‘믿거나 말거나’는 미지의 사실이나 진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암시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 어떤 문제가 제시되었을 때 이를 받아들이는 쪽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받아들일까, 거부할까, 아니면 의심할까?

이러한 경우 처음에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 제시된 내용의 진위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내용이 뒤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일단은 잠시라도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다음으로는 문제를 제시한 사람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또한 어떤 상황에서 그러한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 잠시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 이야기의 바탕이 무엇인지도 따져 보아야 한다. 어떤 의도인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를. 게다가 이것은 좀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주도권이 어디에 있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척해야 하는 것인지, 게다가 심지어 상대방에게 역공을 해야 하는지를. 그런 다음 그 문제를 제시한 사람의 상황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떠한 처지인지를. 그러면서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즉 그 이야기가 나온 배경을 말이다. 그래야만 그 상황을 이해하고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제시한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점. 사실은 여기에 모든 것이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 속을 어찌 알랴. 열 길 깊이 우물보다 더 깊은 사람의 마음을.



인간의 뇌에서는 전두엽이 주로 추론과 판단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대뇌피질 왼쪽 반구에 ‘브로카(Broca) 영역’과 ‘베르니케(Wernicke) 영역’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베르니케 영역이 주로 언어의 이해를 담당한다.

대화를 할 때 약간 의문스러운 것이 나오면 고개를 갸웃하는 분들이 있다. 혹 여러분은 어느 쪽으로 고개를 갸웃하실까? 왼쪽? 아니면 오른쪽? 베르니케 영역이 왼쪽에 있다고 하는데……. 혹시 오른쪽으로 갸웃하면 잘못된 것 아닐까? 이것은 우문우답. ^^

사실 ‘믿거나 말거나’는 뇌의 특정한 부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평소에 어떤 부분에 더 호감 또는 경향이 있는지 말이다.

어느 누구든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믿거나 말거나’의 경우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반드시 선택해야 할 상황이 된다면? 그것도 바로 즉시. 게다가 그 결정에 따라 엄청난 결과가 뒤따르게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갑자기 긴장감이 쫘악 흐른다. 등골이 송연해지기도 하고. 그리고 머리칼까지 쭈뼛 선다.

아이고, 이건 너무 나갔다. 그저 재미로 하는 ‘믿거나 말거나’로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흐르면 안 되지. 에비! (저리 가, 저리!)


철학에서 진리는 참된 것으로 인식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진리에 대한 인식은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오류의 가능성도 늘 있다. 따라서 ‘믿거나 말거나’는 진리에 대한 불확실성과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믿거나 말거나’는 단순히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것만이 아니라,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신뢰와 의지에 대한 문제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주변이나 경험으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인 뒤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판단을 내린다. 따라서 불확실성과 위험이 뒤따르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는 어느 무엇보다도 상호신뢰와 자신의 확고한 의지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신뢰와 의지는 인간의 철학적 문제 가운데에서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신뢰와 의지는 인간 사회의 상호작용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게다가 인간은 다양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상대방의 신뢰를 얻고, 또한 상대방에게도 신뢰를 보여준다. 이것은 사회적인 규범과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믿거나 말거나’는 결국 진리와 신뢰 및 의사결정 등 다양한 철학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겉보기보다는 꽤나 심도 있게 고찰할 필요가 있는 명제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은 항상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문제들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좀더 진지하게 탐구할 필요도 있겠다. (이거 너무 나간 거 아냐?)

사실 ‘믿거나 말거나’는 어떤 것이 참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을 때, 사람들마다 자신이 믿으려 하는 경향대로 나간다는 사실을 대변하는 말이 아닐까? 물론 이러한 상황이 되면 사실과 거짓을 판단하기 어려워지며, 이에 따라 큰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예를 한 가지 들어보겠다.



유령선의 등장


1872년 12월 4일 오후 1시경, 영국 상선 데이 그라티아(Dei Gratia) 호가 북대서양의 아조레스 제도와 포르투갈 사이에서 떠도는 범선 한 척을 발견했다. 배가 몹시 흔들리며 제대로 항해하는 것 같지 않아서 무슨 이상이라도 있는지 신호를 보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표류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 배는 영국의 메어리 셀레스트(Mary Celeste) 호였다. 마침 그라티아 호의 선장이 그 배의 선장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까이 접근해서 세밀히 살펴보았지만, 그 배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 배에 올라가 조사해 보게 되었다. 그러나 배 안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식탁에는 아침식사와 따끈한 커피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선장실에서는 고장난 육분의만 발견되었고, 선적증명서는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구명보트는 하나도 없이 사라져 버렸으며, 항해일지를 확인해 보니 11월 7일 뉴욕에서 출항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항해일지는 11월 25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기록이 없었다. 따라서 그날 전후로 무슨 일인가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었다. 또한 그 배에는 식량과 물이 6개월치 이상이 남아 있었으나, 벽시계와 나침반을 비롯한 여러 항해도구는 부서져 있었다. 게다가 배에 실은 화물인 술통 중에서 9개가 비어 있었다.

그리고 항해일지를 통해 선장 부부와 두 살 된 딸, 그리고 7명의 선원 등 모두 10명이 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여러모로 조사한 결과 그 배는 이탈리아 제노바로 향하고 있었으며, 약 10일간 무인 상태로 거의 1,230km나 떠돌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그 배에 탄 사람들은 끝내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로부터 각종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이 사건의 진상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유령선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유령선에 대한 전설이 등장한 배경이다. 그리고 추리소설가 코넌 도일이 오랜 기간 무명으로 지내다가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해서 쓴 글 ‘J. Habakuk Jephson’s Statement(하버쿡 제프슨의 증언)’을 발표하면서 갑작스럽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그 이후 여러 소설이나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여, 그야말로 유령선의 모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도 그 배의 진상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강하게 사람들의 머리에 유령선의 이미지로 남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이 유령선을 비롯해서 우주인과 같은, 현재의 과학이나 학문, 상식 등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건들은 사실상 ‘믿거나 말거나’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나타난다. 약간은 상식에서 벗어나는 듯한, 그러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러면서도 진위를 알 수 없는 사건이나 이야기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믿거말거?’ 믿거나 말거나, 믿을까 말까……. 믿는다고 해서 손해 볼 것도 없고, 안 믿는다고 해도 그만이라면 상관없지만, 둘 중 하나를 꼭 선택해야 한다면……?

여러분이라면……?



또 다른 명제


‘믿거말거’를 ‘믿고말고’로 해석한다면?

‘아무렴 믿고말고.’

No problem.

It’s OK.

You are welcome!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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