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윗-리윗 인터뷰#2 : 류민지_작가, 페인터
류민지 Minji Ryu
작가, 페인터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 석사를 졸업하였다. 주요 개인전으로 킵인터치 《빛나는 것들》(2018), 위켄드 《Moving shapes》(2019) 등이 있으며 주요 단체전으로 사루비아다방 《제3의 과제전》(2015), 서교예술실험센터 《축적된 자리》(2021)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ryumj
홈페이지 https://rryumj.wixsite.com/portfolio
소담한 건물 5층에 위치한 류민지 작가의 작업실 계단을 오르는 길, 뻥 뚫린 난간 너머 옹기종기 모인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풍경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노크를 하니, 환한 얼굴의 류민지 작가가 문을 열고 맞이해주었다. 작업실 문 안으로 들어서니 벽 면을 빼곡히 메운 드로잉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일상적인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여주는 게
저의 취향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녀에게 있어 '일상'은 특정한 순간이라기보다 자신을 둘러싼 평범한 풍경에 심상과 감정이 반응하는 개인적인 체험에 가깝다. 이것을 포착하기 위해 그녀는 기억에 의지해 무수한 드로잉을 남기고 여기서 발견한 것들을 다시금 화폭에 옮긴다. 그녀가 쌓아 올린 시간으로 가득한 작업실에서, 그녀의 일상과 그 안에서 간직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에 거주하며 회화 작업을 하고 있는 류민지입니다. 저는 일상을 바라보며 느낀 감각을 기억하고, 그 안에 쌓인 것들을 회화로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평범한 일상의 풍경도 바라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일상 역시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가며, 스스로 바라보기 좋게 만들어나가려고 해요.
주로 일상을 소재로 작업을 하시는데,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있나요?
매일 보고 그린 경험이 축적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특별한 것보다는 평범한 것에 더 눈길이 갔고요. 그렇기 때문에 일상을 기록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첫 단체전을 할 때는 데일리 드로잉을 통해 매일의 순간 속에서 저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을 그리게 되었어요. 이렇게 매일 드로잉을 그리다 보니, 더 열심히 저의 일상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아요.
평소 일상에서 관심을 두는 시선이나 개인적인 취향이 작업 안에서도 드러나나요?
저는 공간을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식물과 한복도 좋아해요. 공간과 식물을 돌보는 것은 저의 일상을 가꾸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취미이고, 한복을 비롯한 옛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런 것들이 과거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지금도 언젠가는 옛날이 될 거라는 감상적인 생각도 들고요.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 아름다움과 특별함이 깃들어있다는 생각을 하고, 이것을 저만의 시선으로 발견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같은 풍경을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그리는 과정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매일의 기록에서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반복적으로 나오는 형태에 어떤 의미와 조형성이 있는지 탐구해요. 짧은 시간 손을 움직여 그려내는 동안 풍경이 캔버스 위에 올라갔을 때 더해져야 되는 질감, 색, 레이어가 떠오르기도 하죠. 기록을 제대로 보려 하다 보면 조형성이 따라오기도 하고, 그려놓은 풍경이 또다시 제 안에서 작용하기도 해요. 내가 직접 본 대상은 실재하는 것이지만 지금 이 순간은 나만이 겪은 것이니 여기서 오는 특수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바로 이 순간을 기록하는 게 쌓이면 어떠한 의미가 도출될지도 모른다는 믿음도 있는 것 같네요.
일상에서 포착한 감각을 화폭에 담아낼 때, 도움을 주는 본인만의 습관이 있나요?
제가 그린 그림들을 천천히 다시 보는 시간을 가져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모를 때는 처음 이 장면을 그리고 싶던 순간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해 왔다 갔다 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작업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기억하는 것을 그리는 것이 제 작업의 준비단계라 생각하고, 회화 작업 이전에 드로잉을 100장은 그려보려 해요. 제게 드로잉은 순간을 선명하게 떠올리게 하는 지표와 같아요. 드로잉을 하며 그릴 수 있는 형태와 그려져야 하는 모양을 찾는 시간을 가져요. 이렇게 무수한 드로잉을 하는 동안 제 안에 쌓인 감각적인 포착들이 집약해서 드러나는 것이 바로 회화 작업이에요.
작가님의 시선으로 본 일상을 캔버스에 옮기고자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일까요?
보는 것과 기억하는 것의 차이를 살피며, 그것이 어떻게 그림이 될 수 있는지에 집중하고 있어요. 회화를 통해 재현과 재현 아닌 것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싶어요. 모두가 봤을 만한 순간을 살짝 비틀어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감상에 대한 건 보는 분 몫으로 남겨두면 된다 생각해요. 설득보다는 마음의 중심을 따르며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통해 개개인의 다양한 기억을 이끌어내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의 그림은 순간을 사진처럼 묘사하는 게 아니라 제 안에서 떠오르는 형태로 기록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원본과 달라져버리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이런 과정들을 거쳐 나타나는 풍경이 오히려 각자의 기억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함께 풍경을 보지 않았더라도 그림을 통해 관객들이 자신만의 기억을 떠올릴 때가 재미있어요. 제가 사람들에게 느끼게 하고 싶은 건 경험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그림을 보면서 어떤 기억이 함께 떠올라도 좋겠다 싶은 생각도 들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 전시를 통해서는 어떤 시도를 하고 있나요?
이러한 지점을 효과적으로 관객분들에게 드러내기 위해 전시장의 설치에 신경을 많이 써요. 제 그림은 부드러워서 거친 공간에 가면 안 어울리기 때문에 벽면을 다듬는 데 신경을 쓰는 등 설치가 그림을 많이 받쳐 줄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요. 그렇기 때문에 전시 공간이 먼저 정해져야 작업을 수월하게 진행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작업과 공간이 상호작용하며 붙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설치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Moving Shape》(2019)는 설치 요소가 돋보이는 전시였는데요, 특별히 신경 쓰신 지점이 있을까요?
전시 자체에서 공감각적인 느낌을 충분히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림 자체를 공간과 엮어서, 공간이 그림으로 인해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를 바랐어요. 그렇기 때문에 연출적으로도, 전시장에 걸어 들어가면서 빛이 점점 없어지고, 맨 안 쪽 공간에 도착하면 빛이 갑자기 켜지게 했어요. 그림과 조명이 주는 인상이 함께 작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전시를 연출했습니다.
요즘은 어떤 풍경에 눈길이 가는지 궁금합니다.
작업실이 5층인데, 계단으로 오르다 보면 늘 4층과 5층 사이에서 쉬게 돼요. 저는 매일 이곳에 오며 맑은 순간과 어두운 밤 등 다양한 시간대에 장소를 봐요. 계단을 오르다 보면 ‘아, 아직도 오를 계단이 남았네.’ 하며 밖을 쳐다보게 되는데, 어떤 날은 풍경이 예뻐서 멍하니 서 있다가 들어가기도 해요. 지금 보시는 그림 속 풍경이 바로 작업실 창 밖 풍경이에요. 이 그림들을 도시라고 보시는 분도 있을 것 같고. 빽빽한 밀도와 뻥 뚫린 부분의 대비가 주는 감각을 추상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건물 하나하나를 자세히 그리기보다는 기억 속에서 보는 순간의 감각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매일 제 안에 쌓인 시간들을 그리다 보니 요즘은 작업실 창밖 그림이 많아지게 되었네요.
앞으로 시도하고 싶은 작업 방향성이 있나요?
그림의 체험적인 측면을 극대화하기 위해 작업의 스케일이 확 커져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제 안의 순간을 잘 전달하기 위해 그리지만 그게 재현이라고 할 만큼 특정한 순간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기에 사람들이 봤던 것 같은 순간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그러한 지점들이 결국에는 그림으로 보인 다는 생각을 해요. 일상의 풍경을 그리는 시도를 반복하며, 그 안에 스치고 지나가는 표현을 관찰하고 정제해나가며 저만의 그림을 완성해나가고 싶습니다.
Credit
기획 / 인터뷰 | 리윗-리윗(이재화 이현경)
편집 | 이재화
자료제공 | 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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