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윗-리윗 인터뷰#1 : 김아름_작가, 미세기화실 운영자
전시 리플릿에 드로잉 노트를 삽입하셨더라고요. 애니메이션의 원형이 되는 그림들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그림을 통해 고민의 지점이나 단상을 탐구하다가 작년부터 형태를 모으는 방식으로 드로잉을 하고 있어요. 여름 산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잎사귀 등 자연물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 편이에요. <비밀의 배> 때는 '배'가 등장하는 스토리를 어떻게 이미지로 표현할지 고민이 있었는데, 제가 몇 년 전에 원형이 되는 요소들을 스케치북에 그려두었더라고요? 제게는 드로잉이 작업의 원천인 것 같아요. 무의식적으로 그려나간 이미지가 나중에 좋은 소스가 되어서 평소에 잘 간직하는 편이에요. 계속 손을 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미지의 해골>은 누군가의 애인이고, 뮤즈였으며, 아내였던 한 여인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해 나가는 픽션과 현실 사이의 이야기다. - 김아름 작가노트-
최근 《STAGE MIX: AREUM KIM》(2021)에서 상영한 <미지의 해골>(2021)에서도 특유의 환상적인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사랑, 죽음, 이별에 대한 사유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비밀의 배>(2019)에 등장하는 여성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한 질문이 많았는데, 이 여성이 못다 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미지의 해골> 영상을 만들었어요. 한때 누군가의 애인, 아내, 뮤즈였던 한 여성이 억울하게 죽은 후 핑크 해골이 되어 다시 살아나는 애니메이션이에요. 이 작업을 시작할 때 죽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세계관을 만들어 나갔어요. 저는 상상력을 중요시 여겨요. <미지의 해골>에서도 '눈알 와인'을 마시면 망각의 기억이 되살아난다거나, 공포가 사라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미지마다 부여된 의미가 있죠. 이러한 상상을 하는 데에 책이나 시의 은유를 많이 참고해요.
종종 책의 인상 깊은 구절을 필사해요. 앤 섹스턴 시인의 『밤엔 더 용감하지』라는 시집의 <그런 여자 과(Her Kind)>라는 시가 인상 깊었죠. 여기 등장하는 여자는 손가락이 열두 개고, 정신이 나갔어요. 그리고 벽장, 실크, 셀 수 없는 오브제들을 지니고 있으며, 벌레와 요정에게 저녁을 차려줘요. 이런 설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마법적 요소를 제 작업에도 넣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해골이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를 줄곧 생각하고 있었는데 도서관에서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라는 제목을 딱 발견한 거예요. 영상에 나오는 대사도 여기서 참고를 했어요. 영상을 만들 때도 평소 수집한 책 글귀 등을 보면서 완성해 나가요. 이렇게 정해진 것 없이 우연에 따라 길을 찾아가는 것이 막판에는 저를 힘들게 하는 작업 방식이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알고 가는 것보다 모르고 가는 것이 더 재미있어요.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현실에 기반을 두기보다 세계관을 창조하시는데, 이때 영감을 받는 곳이 있나요?
2015년부터 무대 조명과 영상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조명을 통해 무대의 분위기가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것이 인상 깊었고, 캐릭터를 통해 장면을 만드는 법, 빛을 이용해 공간을 연출하는 법 등을 익혔어요. 무대를 이루는 구성요소들이 제 마음에 들어왔죠. 이후부터는 공간을 다룰 때 인물, 대사, 빛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또 건축 수업을 들으며 건축이 미술의 집합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시네마 4D 프로그램을 통해 영상 안에 공간을 넣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영상을 만들 때 항상 어딘가로 향하는 진입로를 염두에 둬요. 영상 안에서 다양한 구조물을 구현하게 되는데, 제 작업이 밋밋하다 싶을 때 보는 책이 『Siteless: 1001 Building Forms』라는 책이에요. 보고 있으면 그냥, 기분이 좋아져요.(웃음)
저는 화면 안에서 구현하는 공간도 일종의 무대라고 생각해요. 3D 애니메이션 안에서도 공간과 소품, 조명이 구현 가능하기 때문이죠. 이번에 팩션(Faction)에서 한 전시도 관객들이 함께 앉아 대화하듯 머물다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연출했어요.
최근 회화 작품에는 ‘손’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손이 주는 독특한 뉘앙스가 느껴지는데, 이는 영원성의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요?
삶과 죽음이 서로 교감하는 순간, 연결에 대한 이미지를 회화에 넣고 싶었어요. 저는 '손'이 뭔가에 닿을 때 감각이 첫 번째로 전달되는 기관이라 생각했고, 손을 꼼지락 거리며 신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그림에서도 손이 비나 눈을 맞거나, 뭔가를 감싸거나 만지는 포즈가 많은데, '죽음 이후 다시 태어난다면 내 손은 뭔가를 어떻게 느낄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 손을 그렸어요
겨울 뒤에 봄이 오듯, 순환하는 생명에 대한 감각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제가 만든 3D 캐릭터들이 입체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피규어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고 준비 중이에요. 작업에 등장한 물방울, 해골 같은 캐릭터를 입체로 만들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또 올해 마음이 맞는 작가들과 함께 전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전시를 통해 사랑을 주제로 완전히 긍정적인 세계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사랑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별도 있고, 삶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도 있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완전히 긍정적인 영원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한 거예요.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는 세계를 전시장에서 구축해보고 싶어요.
Credit
기획 / 인터뷰 | 리윗-리윗(이재화 이현경)
편집 | 이재화
자료제공 | 김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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