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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Nov 17. 2023

프롤로그: 자기만의 방, 그리고 음식

타국에 산다는 건, 당연하던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됨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선량한 시민이라도 그저 머물기 위해 정부의 허락을 구해야 하고, 멀쩡히 한 사람 몫을 하던 성인도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는 간단한 의사소통조차 되지 않아 어린아이 취급을 받기 쉽지요.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휴대폰 개통이나 통장 개설에도 ‘내 나라‘에 비해 몇 배의 힘이 듭니다.


하물며 집은 어떨까요. 제가 일본에서 경험한 바로는, 아무리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월세를 감당할 수입이 있어도, 입주 심사가 까다로운 것은 물론이고, 외국인이라면 문의조차 받지 않겠다는 집주인도 많아요. 그래서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한인부동산이나 셰어하우스를 이용하기도 하지요.


이번에 ‘자기만의 방’을 구할 때 저는 도쿄 생활 7년 차 직장인으로서 자신 있게 일본 부동산의 문을 두드렸지만, 여전히 마음 졸이게 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외국인은 받지 않습니다’라는 숱한 거절 메일과 두 번의 심사 끝에 찾은 원룸이 제 방이 되었어요.


A woman must have money and a room of her own if she is to write fiction.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
- 버지니아 울프


많지는 않지만 월급이 있고, 방도 생겼고, 소설도 첫 단락은 시작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일상 이야기를 연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엇보다 꾸준히 쓰기 위해서요. 주제를 고민하다 예전에 만든 브런치북 <코로나와 10개의 점심 레시피>가 생각났어요. 특히, 마지막 레시피에 아쉽다며 댓글을 달아 주신 분들 덕분에, <도쿄 혼밥 일기>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시작한 매거진 주제가 글쓰기여서인지 브런치팀에서는 저를 ’글쓰기 분야 크리에이터‘로 선정해 주었는데, 제가 누군가를 가르칠 입장이 아니라 죄송할 따름이에요.


지금까지 제게 요리는 대체로 타인을 위한 행위였어요. 누군가에게 먹이고 싶은 음식, 혹은 누군가가 원하는 음식을 주로 만들었으니까요. 저는 여행과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스스로 먹고 싶은 음식을 잘 떠올리지 못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혼밥 일기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쯤은 먹고 싶은 음식을 고민해 스스로를 먹이자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직접 만들 생각이지만, 가끔은 밖에서 먹거나, 사 오기도 할 거예요.


음식을 통해 전하는 제 주간 보고서의 수취인이 되어 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단,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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