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자우림 <샤이닝>
‘자기만의 방’ 인테리어 콘셉트는 화이트와 브라운이었습니다. 세입자가 바꿀 수 없는 벽지나 바닥의 색 때문에 원하는 느낌으로 꾸밀 수 없는 집도 많잖아요. 그래서 방을 고를 때 저는 공간이 본래 지닌 색감을 중시했어요. 계약한 방은, 들어서는 순간 두 창에서 쏟아지는 햇살과 차분한 목재 플로링에 반했습니다. 월세도 가장 저렴했고요(방음이 안 좋아도 그러려니 할 수 밖에 없는 이유죠). 일본에서는 누군가 거주 중인 방을 볼 수 없으니, 늘 비어 있는 상태의 집을 볼 수 있다는 건 장점이네요.
‘방은 흰색이랑 갈색으로만 꾸미고 싶어’라고 도쿄에 사는 친구에게 말했더니, ‘아, 무인양품 스타일?’이라고 단번에 알아차려 주었어요. 오랫동안 좋아했던 보라색, 혹은 관리하기 쉬운 검은색도 고려했지만, 요즘은 흙과 나무의 색인 갈색에 끌리더라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이 떠오르는 컬러이기도 하고요. 다만, 무인양품은 디자인만 심플할 뿐 가격은 생각만큼 심플하지 않아, 대부분 니토리와 다이소의 힘을 빌렸답니다.
꼭 필요한 가구만 사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나눔을 기꺼이 받으며 가전과 생활 용품을 채워 넣었어요. 가장 애를 먹인 것은 현대인의 필수 조건인 인터넷이었네요. 도코모라는 통신사와 계약을 했는데, 공사를 해주는 회사는 NTT이고, 인터넷 설정을 위한 접속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제공하는 프로바이더는 또 다른 곳이더군요. 공사 예약도 오래 걸렸지만, 프로바이더로부터 접속 정보를 받지 못하면 유선 인터넷도 와이파이도 쓸 수 없는데, 이 사실을 몰라 일주일을 헤맸습니다.
결국 방 계약으로부터 3주가 지나서야 미디어 중독자가 지낼 만한 환경이 갖춰졌고, 요리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조리도구와 식자재, 양념도 처음부터 갖춰야 해서 첫 메뉴는 너무 궁색하지도, 번거롭지도 않은 낫토밥과 가지미소된장국입니다(사실, 앞으로도 대단한 요리가 나오지는 않을 거예요).
햇반이나 소분해 둔 밥을 데운 뒤, 그 위에 잘 섞은 낫토와 날달걀을 올리고, 간장을 취향껏 톡톡 뿌리면 끝이에요. 이건, 레시피까지도 필요 없을 것 같네요. 간장계란밥 전용 간장을 뿌리면 더 좋겠지만, 제 주변 일본인 친구들도 다들 일반 간장을 뿌리더라고요. 끈적하면서도 부드러운 낫토와 날달걀이 탱글한 밥알을 폭신하게 감싸는, 독특한 식감이 특징이에요.
일본식 미소된장국은 된장에 파만 있어도 금방 끓여 먹을 수 있어 애용하는 메뉴인데요, 평소 가지를 좋아해 튀긴 가지를 끓여 내는 ‘아게나스미소시루揚げなす味噌汁’에 처음 도전했습니다. 가지의 고소함과 부드러운 식감이 제법 괜찮았어요. 육수를 낼 정성이 없어 일본의 다시다인 혼다시 분말을 사용한 저를 너그럽게 봐주세요(앞으로도 계속 쓸 거예요).
재료: 물 400ml, 식용유 혹은 참기름 3~4T, 미소 된장 1T, 혼다시 1t, 가지 1, 다진 대파 1T
1. 가지는 꼭지를 제거해 한입 크기로 썰고, 대파는 다진다.
2. 냄비에 기름을 둘러 가지의 모든 면이 노릇해질 때까지 튀기듯 익힌다.
3. 2에 물을 붓고 끓인 뒤 혼다시와 미소 된장을 넣고 잘 풀어준다.
3. 마지막으로 대파를 넣고 대파가 익을 때까지 끓여 주면 완성.
오늘 식사하며 들은 노래는 자우림의 <샤이닝>이에요.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
가난한 나의 영혼을 숨기려 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시작부터 가사가 심금을 울려요. 그러나 내 자리는 언젠가가 아닌 지금, 어딘가가 아닌 여기에 만들어야 하며,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을 품을 줄 알아야 함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