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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ka Oct 24. 2024

내 안의  아이에게

[인생의 단상]




어렸을 때 나를 지배했던 주요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맞벌이 부부의 무남독녀였던 나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방과 후 동네에서 친구들과 술래잡기며

고무줄놀이며 여러 가지 놀이를 하다 보면,

친구들이 엄마의 부름에 하나씩 빠져나갔다.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친구들을,

아이는 부러운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봤다.


최종 혼자 남아 집에 터벅터벅 걸어갈 때면

엄마가 집에 없는 설움이 어찌나 밀려오던지.


집에 가서도 밤늦게야 오는 부모님을

기다리느라 하루가 참 길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가.

그날도 집에 혼자 있던 아이는

너무 외로운 나머지

방벽에 ‘외롭다’고 끄적였다.

그 무렵에 위가 많이 아팠다.

약국에서 약을 지어먹었는데도

아이가 며칠을 아프다고 하니

엄마가 시간을 내서 시내 내과에 데려갔다.


진찰 결과는 의외였다.

심하게 체하거나 장염 같은 게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의 관심을 받기 위해 꾀병을 부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실제로 배가 콕콕 쑤시듯이 아팠으니까.


병원에서 나와 돌아가는 길이 적막했다.

아무 말 없던 엄마는 미안했는지

노상 포차에서 호떡을 사줬다.

사실 그때 아이에게 필요했던 건

뜨끈한 호떡이 아니라 따뜻한 한마디였을 텐데…


“딸, 엄마가 미안해.

매일 밤늦도록 집에 혼자 둬서 미안해.

늦으면 늦는다 전화도 안 해주고,

같이 잘 못 놀아 주고,

저녁에라도 따뜻한 밥 지어서

같이 밥 먹고, 숙제도 봐주고, 준비물 챙기는 것도

도와줘야 되는데, 뭐 하나 제대로 못 해줘서 미안해.

그동안 우리 딸 많이 힘들고

외로웠겠다. 엄마가 미안해.

앞으로는 집에 일찍 들어오려고 노력할게.

퇴근이 늦어지면 꼭 전화할게.

쉬는 날엔 놀이동산도 가고,

우리 딸 좋아하는 것도 사 먹자. 알겠지? 약속!”


엄마에게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아이가 너무 듣고 싶어 했던 말들.


사실, 그땐 너무 어려서 아이는 자신에게

어떤 위로의 말이 필요했는지조차 몰랐다.

가상으로나마 아이가 엄마로부터 듣고 싶었을 말을

써 내려가니 눈물이 난다.


십 수년을 내 맘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아이의 마음을

성인이 돼서야 알아차렸다.

아이를 조심히 불러 본다.


“아이야…“


외로움과 불안, 상처에 쌓여

장시간 방치돼 있던 아이의 눈빛이 서글프다.

불러냈지만,

그 눈빛에 어떤 말을 꺼낼 수가 없다.

그저 꼭,

아무 말 없이,

꼬옥,

안아준다.

오래,

꽤 오래,

안아준다.

토닥토닥,

아이의 머리와 등을

천천히 토닥인다.

아이가 숨죽여

가만히 안겨 있다.

아이가 아무 반응 없이

그저 안겨 있다.

아이 맘이 편안한 건지,

불안한 건지, 알 수 없다.

다소 경직된 아이의 몸에서

당혹감이 느껴진다.


미동도 없이 안겨 있는 아이의

정수리를 맡는다.

뜨끈뜨끈한 아이의 정수리에서

오래 묵은 시큼함이 올라온다.

냄새가 가엾다.

아이 혼자 삭이고 있던 외로움이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던 아이의 불안함이다.

세상 혼자였을 지독한 고독함이다.

아무 말 없어도 냄새로부터

아이의 마음을 읽는다.

그저 안아준다.

아이가 안김을 해제할 때까지

안을 생각이다.

시큼한 냄새가 코끝으로 전해올 때마다

가슴이 찌릿찌릿 저리다.


“그동안 얼마나 숨죽여 있던 거니?”


얼마나 안겨 있었을까.

아이가 운다.

큰 소리 없이,

흐느껴 운다.

자기 처지를 알아차린 건지,

처음 느껴보는 따스함이 눈물겨운 건지,

서럽게 운다.

모습도 보이지 않고,

얼굴을 파묻고 운다.

나도 따라 운다.

아이의 정수리가 더욱 뜨거워진다.

시큼함이 더욱 거세게 올라온다.

그렇게 한참을

아이는 운다.

나도 운다.


아이를 더욱 끌어안는다.

꼬옥,

끌어안는다.

내 가슴이

아이의 뜨거운 눈물로 범벅됐다.

눈물 콧물로 범벅된

아이 얼굴을 손으로 닦아낸다.

얼마나 울어댔는지

아이 얼굴이 퉁퉁 부어올라있다.

아이의 코끝이 새빨갛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 앞에 무릎을 꿇는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용서를 구한다.


“아이야, 미안해.

매일 늦은 밤까지

엄마를 기다리는 게 참 힘들었지?

이튿날 아침 눈 떴는데

네 곁에 아무도 없던 날들,

아침도 거르고 혼자 책가방 매고

등교할 때도 많았잖아.

물체 주머니를 챙겨가야 되는 날이면

마음이 괴로웠지?

아이가 문방구 아줌마한테 외상을

부탁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니?

문방구 아줌마한테 거짓말로

외상 한 게 하도 많아서

나중엔 아줌마를 피해 다녔잖아.

네 마음이 얼마나 불안했을지,

그때 몰라줘서 너무 미안해.


아이야,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널 잘 보살피지 못한 어른들 잘못이야.

도박에 빠진 아빠,

밥 먹듯 외박하는 엄마,

허구한 날 싸워대는 부모 밑에서

네가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었겠니.

나중엔 외박하는 엄마가

집에 안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지?

들어오면 그날은 살림살이가

다 부서지고 박살 나는 날이었으니까.

생활 능력도 없는 아빠한테서

매 맞고 사는 엄마가 널 떠나갈까 봐

어린아이가 얼마나 가슴을 졸였니.

아이야. 네가 준비물을 잘 못 챙겨간 거,

부모가 헤어진 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


갓 스무 살 된 남녀가 만나

부모가 될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덜컥 아이를 가져 낳게 됐고,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모르니,

그 어린것을 집에 방치하기 일쑤였어.

아빠란 자는 아이가 보는 눈앞에서

엄마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짓을 일삼았고.

아이를 데리고 도박장을 전전했으니

정상적인 가정이며, 부모라고 할 수 있겠니.

성숙지 못했던 철부지 부모의 미숙함에

이제 어른이 된 내가

어른들을 대신해 용서를 구할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주지 못하고

아이에게 보여선 안 될 행동들로

너에게 큰 상처를 줘서 정말 미안해.

어른들의 관심과 손길이 한창 필요할 나이에

애정을 채워주지 못해 미안해.

따스함과 사랑이 목마른 널

항상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이 한 번의 사과로 네 아픔과

상처가 어떻게 단번에 아물겠니.

시간이 오래 걸려도 되니

네 마음이 풀릴 때까지

울어도 좋고, 화를 내도 좋아.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더 이상 웅크리고 있지 말고

이제 좀 마음이 풀려

해맑게 웃고 있으면 좋겠다.


아이야,

그리고 고마워.

그럼에도

이만하면

잘 컸다.

잘 견뎌줘서,

잘 버텨줘서,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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