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 할 때.

혼자이고 싶었다.

by LC

해야 할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농장의 일은 곧 끝날 것이었다. 다음 농장이 어디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고, 이대로 '도넬리 리버 와인 농장'의 일이 끝나 버린다면 우리는 모두 구직자의 삶으로 되돌아 가야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곳을 떠나 새로운 일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팀원들 사이의 갈등과 그 사이에 낀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떨쳐 내고 싶었고,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호주와 그 이후의 일정에 대한 계획을 세워나갔다. 무엇보다도 혼자이고 싶었다.



잘 다듬어진 포도나무(오른쪽)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포도나무(왼쪽)


2주.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같은 농장에서 일하며 생활하는 여섯 명의 사람들(나, 스티브 형님, 유 형님, 마크 형, 기욱, 소피 누나 이렇게 여섯이 있었다). 불신과 이에 따른 갈등.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이 모든 것이 결부되어 서로에 대한 불만이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었고, 모두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는 일이 점점 줄어들더니 결국 셋, 둘, 하나로 파편화 되었다.


모두가 농장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드루먼에게서 연락이 왔다. 팀의 리더인 스티브 형님과 드루먼 사이에 '다음 농장'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전화 통화를 마친 스티브 형님이 말했다.


다음 농장에서는 2~3명만 일할 수 있어.


드루먼은 분명 리더 형을 포함한 두, 세명을 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리더 형은 일도 잘 하고, 말도 잘 듣는 성실한 타입이었고 무엇보다도 정직했다. 그랬기에 우리는 지금까지 농장에서 그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일했고, 일 한 만큼 보수를 지급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명은 누가 될 것인가? 나는 그 두 명이 마크 형과 나와 동갑인 기욱이 되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했고, 어쩌면 드루먼도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가 유 형님과 함께 팀에 합류하기 전부터 함께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드루먼도 그걸 염두에 두었으리라 생각했다(소피 누나는 나와 유 형님보다 2주 정도 늦게 팀에 합류했다). 스티브 형님도 분명 드루먼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겠지만 그렇게 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여기서 일 안 해도 되니까, 너네가 해라. 다른 일 구하면 되니까.


스티브 형님이 빠지겠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고, 다른 일을 구할 충분한 능력이 있으니 자신감도 있었을 것이다. 소피 누나와 스티브 형님은 농장에서 연인 사이가 되어 있었기에 소피 누나와 함께 드루먼의 농장으로 가겠다고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스티브 형님 입장에서는 마크 형과 기욱에게 미안했을 것이고, 드루먼의 입장에서도 그리 좋은 대안은 아니었을 것이다.(소피 누나는 유 형님과 같은 교회를 다니던 사람이었다. Bullsbrook 와인 농장에서 일할 무렵 교회에 갔다가 농장으로 돌아가는 우리를 따라와 드루먼에게 일을 시켜달라고 졸랐던 것이다. 드루먼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소피 누나는 푸르닝을 하지 않는 대신 나뭇가지를 정리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뭔가 말하고 싶어도 선뜻 말할 수 없는, 나는 이런 모호한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다. '누가 남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끝맺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숙소 밖으로 나와버렸다.외면하고 싶었다. 오렌지 나무 주변을 서성이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생각했다. 일과 여행,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일까를 생각했다. 숙소로 돌아가니 일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 되어 있었다.

LC, 같이 하자. 괜찮지?


마크 형이 말 했다. 마크 형, 기욱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남는 걸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거라는 짐작은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티브 형님이 빠진 팀'을 드루먼이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크 형에게 "형, 전 그냥 혼자 일자리 알아볼게요. 드루먼은 스티브 형님을 원할 거에요"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내가 그 상황에서 빠지겠다고 말해서 서로의 감정에 상처를 줄 필요는 없었다.

유 형님은 착잡한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곳으로 와서 혼자가 되어버린 유 형님.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유 형님을 챙겨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유 형님은 다른 팀원들로부터 "일을 좀 열심히 해 달라"는 말을 종종 들었지만 행동의 변화는 없었고, 지금은 이미 우리들과의 관계가 틀어져 버린 뒤였다. 유 형님은 착한 분이었지만, 일 앞에서 사람들은 냉정했다.


도넬리 리버 와인 농장에서 일을 끝내고 찍은 단체 사진. 이곳을 마지막으로 흩어 지게 된다.


우리는 모든 걸 정리하고 퍼스(Perth)로 돌아왔다. 스티브 형님은 드루먼과 만나 우리의 결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유 형님은 퍼스의 집으로 돌아갔고, 스티브 형님과 소피 누나도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러 돌아다니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스티브 형님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드루먼은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가 우리를 부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드루먼은 스티브 형님을 원한 것이지 나머지 우리를 원한 게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지금 다른 팀이 일을 하고 있으니, 다른 곳에 일이 생기면 연락을 주겠다.

드루먼에게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 이후로 드루먼을 만나지 못했다. 스티브 형님도 나도 모두 실업자가 된 것이었다. 일을 다시 구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약간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또 다시 시작이었다.






앞 이야기

- 마지막 농장에서의 논쟁.

- 눈을 다치다.

- 첫 번째 농장.

- I've got a 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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