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그리고 호주와의 결별 준비.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명의 워홀러.

by LC
"일 하다 보면 돈 욕심 생길걸?"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들은 이야기다. 나는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호주에 왔고, 여행 자금이 마련되면 호주를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길어봐야 두 달 정도 공장에서 일 할 것이라고.

내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렵게 공장에 취직됐고 돈도 많이 주는데, 더 일해도 되지 않아?"라는 이야기를 더러 해 왔고, 나는 "여행할 만큼의 돈만 있으면 된다"라고 하며, "돈보다는 '시간'이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라고 말하며 벌써부터 떠날 생각만 하는 건 좋지 않을 것이라 했다.




군소리 없이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힘든 것이라고 여겨지는 일, 다른 사람들이 꺼려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 일들이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거니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내 포지션에서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임하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슈퍼바이저는 내게 토요일에도 일을 하러 나오라고 했다. 금요일 저녁엔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고, 토요일 오전에 나와서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토요일을 온전히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면 괜찮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토요일, 네 명이 나와서 일을 했다. 오지 형과 내가 먼저 출근을 했고 그 뒤에 콩고에서 온 '칸쿠'와 독일에서 온 '미치'가 출근했다. 칸쿠와 미치. 그들이 주말에도 나와 일을 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 둘은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는 타입이었고, 슈퍼바이저도 그런 모습 때문에 그들을 믿었으리라.

말 그대로, 텅 빈 공장. 주말에 일을 하러 나온 사람은 키친 파트의 우리 넷 뿐이었다.


그렇게 주말에도 일을 하면, 내 통장에는 1200달러가 넘는 돈이 들어와 있었다(Net Pay, 텍스 제외).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일주일에 100만 원이 넘는 돈을 만질 수 있게 되자 기분이 묘했다. 돈 벌기가 이렇게 쉬운 건가? 농장과 비교하면 일의 강도는 절반 정도에 불과했지만, 돈은 거의 1.5배가량 많이 받다 보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고생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공장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돈 욕심'이 생겨나려 하고 있었다.

매주 토요일, 일주일에 한 번 씩 통장에 백 만원이 넘는 금액이 찍한다는 현실을 저버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시간)과 돈은 반비례의 관계에 있었기에 나는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야 했다.

'여기서 일을 좀 더 하다가 떠날까? 여행 기간을 늘리고 편하게 여행하면 되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욕심을 부릴 필요 없이 떠나야지. 원래 계획했던 대로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돈이냐 여행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내가 있었다.


결국, 타협점은 8주만 일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면 여행을 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충분히 모을 수 있을 것 같았고, 호주에서 하고 싶었던 서핑과 스카이 다이빙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8주라는 시간. 내가 처음 예상했던 기간보다는 길어진 것이었기에 다른 부분에서 일정을 조절해야 했다. 그것보다 더 길게 일하게 된다면 돈 말고는 얻는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워킹 비자의 만료 기간은 아직 8개월 넘게 남아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느덧, 11월도 다 끝나가려 하고 있었다.

이제 일을 해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남미로 떠나는 비행기표는 이미 끊어 놓았다. 두 달이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같은 직장의 동료로서 함께 일하면서 나름대로 정들었던 녀석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일하는 키친 룸(KItchen Room)에는 프로덕션 파트(Production) 4명과 키친 파트(Kitchen) 8명, 이렇게 총 12명이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함께 하면서 일하고 있었기에 서로 부대낄 일이 많았다. 서로 도와가며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가끔은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무엇보다도 키친 룸에는 세르비아, 콩고, 수단, 아프가니스탄, 스리랑카, 독일, 호주, 에티오피아, 뉴질랜드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들이 있었기에 그들이 가진 각양각색의 개성이 표출되면서 활기가 넘쳐났다.


12월 첫째 주에 접어들었을 때, 슈퍼바이저에게 '다음 주'부터 일을 나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호주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일을 하려던 것보다 2주나 지연되었지만 그만큼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만둘 것이라는 말에. 미겔은 "한국 가냐?"라고 물어왔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잘 가라는 말을 하며 하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그에게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는 수 십 년간 공장에서 일하면서 많은 워홀러들을 만났을 것이며,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을 떠나보냈겠는가. 캐주얼 워커(Casual Worker), 나도 그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에게 있어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명의 워홀러였을 뿐이다.

키친 파트의 동료들은 내가 일을 그만둔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해 주었다. 그들은 나의 '여행'에 대해 궁금해했고,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이제는 다시 보지 못 할 친구들이었지만, 잠시나마 같은 공간에서 호흡했던 친구들이었다.


이렇게, 공장의 일도 마무리되었다.

IMG_1787.png 공장에서의 마지막 날. 칸쿠가 내 가방을 들어 보이며 즐거워하고 있다.



앞 이야기

- 얻은 건 무엇인가? 돈이면 충분한가.

- 별미, 자연산 전복 라면.

- 셰어 하우스.

- 호주, 공장으로의 출근.

- 면접,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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