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금요일 오전. 희망을 찾기 위해 새로운 곳에 와 있는 나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전화기 너머의 그녀는 그날 당장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지만 갈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면접을 미룬 나는 '퍼스행 버스표'를 끊었다. '배신자', '양아치'라는 말을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형, 미안해요. 기욱아 미안. 가 볼게요.
프리맨틀의 동쪽에 위치한 소시지 공장, 돌소냐(DORSOGNA). 윤조 형은 돌소냐에서는 분명 주당 40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있고, 돈을 많이 모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며 나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다. 돌소냐는 퍼스 주변 공장들 중에서도 워홀러들에게 인기가 좋은 공장으로 소문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었다.
월요일 오전.
프리맨틀의 백팩커스에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버스를 타고 돌소냐로 향했다. 프리맨틀 시내를 빠져나가는 버스에서 다시 전화기가 울렸던 그 순간을 생각했다. 농장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 다시 걸려온 전화. 그녀는 몇 시에 면접을 보러 올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아침 6시에라도 면접을 보러 갈 수 있다고 말했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텐 어클락.
면접 시간은 10시였다. 여유 있게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리셉션에 가서 말했다.
" I have a interview today"
그녀는 투데이?라고 되묻더니, 수화기를 들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인사 담당자와의 통화였으리라.
잠시 후, 금발의 키 큰 여자가 걸어오더니 나를 보며 인사를 했다. 자신을 '다이애나'라고 소개했다. 우리는 회의실로 들어갔고, 그녀는 내가 쓴 지원서(애플리케이션/Application)를 보며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지원서의 내용들을 전부 과장해서 적어 놓은 것들이라 무엇을 어떻게 썼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질문을 해 왔고, 나는 짤막한 대답으로 응했다.
몇 가지 질문을 마친 그녀는 노란 종이를 꺼냈다. 계약서였다. 기본 38시간 근무. 오버 타임 매일 2시간 이상. 기본적으로 일주일에 48시간을 일 할 수 있다는 거였다. 거기다가 나는 Afternoon shift(오후 반)이어서, 오전 타임보다 임금이 더 높았다(오전 타임 시급 x 1.15). 거기다가 밤 10시가 넘어가면 1.5배를 더 지급해 주었다. 기본 시급만 21달러가 조금 넘는 정도였고, 오버타임 2시간엔 23달러, 야간 수당이 적용되면 시급이 30달러가 넘었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페이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한동한 어리벙벙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건강 상태에 대한 항목에 빠짐없이 체크하고, 여러 가지 조건들을 꼼꼼히 읽은 후 두 장의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하나는 회사 보관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가 가지는 것이었다. 이로서 고용 계약이 체결된 것이었다.
다이애나는 친절했다. 계약서 작성을 끝낸 뒤, 함께 공장을 둘러보며 여러 가지 설명을 해 주었다. 내가 일할 파트는 키친(kitchen, 주로 소시지 재료를 다루는 파트)이었다. 공장의 여러곳을 둘러보면서 전체적인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을 해 주었다. 그녀는 "내일부터 출근해"라고 말했다. 그 밖에 더 궁금한 것이 있냐는 물음에 아무것도 없다고,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공장을 빠져나오자마자 주급(Weekly pay) 계산을 했다.(호주에서는 대체로 '주급'으로 임금을 지급한다)
기본 노동 시간 38 x 21 + 오버타임 10 x 23. 단순 계산으로도 기본적으로 주당 1000달러 이상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아, 이제 돈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농장에서 일하면서 모든 돈으로 여행을 이어가기엔 약간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공장은 달랐고,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남미로 가는 비행기 표값. 호주를 떠나기 전, 호주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 그리고 호주에 오기 전부터 생각하던 '스카이다이빙'과 '서핑'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프리맨틀로 돌아가는 길에 마크 형에게 전화했다.
"형, 저 주당 50시간 정도 일할 수 있어요. 주급도 1000달러 넘어요! 대박이에요."
"그래 이 새끼야, 잘됐네. 잘 돼야지."
"나중에 크게 한 턱 쏠게요!"
짧은 대화.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 후회할 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그저, 빨리 내일이 오길 바랄 분이었다.
앞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