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야기.

나는 그곳에서 100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by LC
어젯밤에 꿈에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기분이 되게 좋더라.
오늘 왠지 느낌이 좋네.

수능 시험이 있던 날 아침, 시험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다.

그 친구는 그날 시험을 아주 잘 보았고, 소위 '수능 대박'이라는 걸 경험하면서 의대 진학에 성공했다.


꿈은 과연 예지몽이될 수 있을까? 흔히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하는 꿈. 나는 꿈을 믿는 편이 아니지만 가끔은 '믿고 싶어 질 때'가 있다. 그리고 호주에서 꾸었던 그 꿈,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그 꿈과 그날의 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퍼스에서 북쪽으로 1000km 떨어진 '카나본(Carnarvon)'으로 향하는 길. 지평선 끝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지만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밤은 깊어갔고, 우리는 로드하우스(RoadHouse)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새우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꿈을 꿨다.

대학교 후배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모둠별로 발표 주제 잡고 발표해야 하는데 우리랑 같이 하실래요?

나는 알겠다고 했다. 우리는 몇 차례 모임을 통해서 발표 준비를 마무리 지었고, 드디어 발표를 하는 날이 되었다. 아뿔싸, 내가 발표를 해야 하는 데 발표 당일 급한 일이 생겨 발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교수님께 전화를 했고, 발표를 다음으로 미루면 안 되겠냐는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은 흔쾌히 승낙을 하셨고, 나는 갑작스럽게 생긴 일을 마무리 지은 다음 발표를 잘 끝낼 수 있었다.

꿈은 이렇게 끝이 났다.


눈을 뜨니 이제 막 아침 6시를 지나고 있었다. 평소에 꿈을 잘 안 꾸던 나로서는 겨우 4시간, 그것도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꿈을 꾸었고 꿈의 큰 흐름들이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꿈속에서 왜 발표를 못했는지, 어떤 주제로 발표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전화가 왔고, 발표를 해야 했고, 갑작스럽게 미뤄야 했고, 허락을 받은 후 나중에 발표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평소에 친하다고 생각한 후배도 아닌, 그냥 얼굴만 아는 후배의 전화. 나는 꿈의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혹시 공장 어디선가 전화가 오는 것은 아닐까?' 왠지,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겨났고,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니 마음이 들떴다. 내가 즐거운 상상 속에 빠져있는 사이, 마크 형과 기욱이 깨어났고 우리는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오전 10시. 카나본의 농장들을 돌아다니며 농장주들을 만났다. 어디선가 전화가 올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기에 한 순간도 손에서 전화기를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농장과 농장 사이를 이동할 때마다, 전화기의 안테나는 사라졌다 생겼다를 반복했다. 안테나가 사라질 때면 조마조마한 마음에 얼른 다시 안테나가 뜨길 바랐다.


한 농장에서 농장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전화기가 울렸다. 지금껏 받아본 적 없는, 내가 모르는 번호였고, 일반 전화였다.

전화가 온 곳은 프리맨틀(Fremantle) 근처(정확히는 팔미라Palmyra와 멜빌MelVille의 경계에 위치)의 유명한 소시지 공장 '돌소냐(DORSOGNA)'였다. 전화기 너머의 그녀는 나에게 '오늘 오후 1시'까지 면접(Interview)을 보러 공장으로 올 수 있냐고 했고, 나는 "Ok"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가고 싶어 했던 공장이던가! 나는 절박했지만 면접을 보러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면접까지 남은 시간은 3시간. 1000km가 넘는 거리를 어떻게 3시간 만에 간단 말인가?

하루만 더 기다릴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뒤늦은 후회였다. 이미 나는 그곳에서 1000km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DSCN8940.png 퍼스에서 카나본으로 가는 길에 있는 주유소와 편의점.

앞 이야기

- 더 멀리 북쪽으로

- 가끔은 바다.

- 다시 구직자의 삶으로.

- 떠나야 할 때.

- 마지막 농장에서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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