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떠나지 않으면 그들을 평생 원망할 지도 모른다
카나본을 향해 오는 내내 머릿속엔 꿈 생각으로 가득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고, 오늘 하루 기분 좋은 일들만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나본의 날씨는 열대 기후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따뜻했다. 요트나 카약을 실은 자동차들이 항구를 향해 가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는, 기후도 풍경도 바닷가의 작은 휴양도시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런 곳이었다.
시티 비지터 센터(City Visitor Centre)에서 알려준 잡 에이전시(Job Agency)에 찾아가니, 농장에 직접 찾아가 보는 게 좋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며 지도에 농장들이 위치한 곳을 표시해 주었다. 카나본으로부터 뻗어나가는 대규모 농장지대, 그곳엔 170개가 넘는 농장들이 있었고 이제부터 농장들을 하나하나 방문해야 했다.
어느 농장, 누구의 농장에 일손이 필요한지, 농장주들은 다른 농장의 상황은 잘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추천을 해 달라고 부탁해서 추천받은 곳이라고는 농장지대 중간쯤에 위치한 '농작물 포장 공장(packing factory)' 뿐이었고, 그곳의 매니저는 대기자가 50명이 넘게 있다며, 맨 아래쪽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가라고 했다. 하긴, 땡볕에 일하는 것보다 시원한 냉장고 안에서 일하는 게 좋지.
농장들을 하나 둘 씩 찾아다니며 농장주들을 만나고 있을 때였다. 전화기가 울렸다. 온종일 '전화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 전화가 온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hello"
"Yes, this is LC speaking."
"I'm mrs..." (후략)
공장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오후 1시까지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 나는 기뻤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정말 가고 싶은 곳이었지만, 지금 당장 가고 싶다고 해도 3시간 만에 1000km를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크 형과 기욱은 못 갈 거라고, 어쩔 수 없으니 여기서 일자리를 알아보자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그곳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하나라도 희망을, 가능성을 찾아보고 싶었다.
기욱아, 형. 아까 카나본 공항 봤잖아요. 거기 한 번만 가보면 안돼요?
카나본 시내로 들어가면서 본 공항, 그리고 활주로에 서 있던 경비행기가 생각났다. 혹시, 퍼스로 가는 비행기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곳으로 가 달라고 졸랐다. 기욱은 공항으로 차를 몰았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운항하는 비행기는 없었다. 카나본 공항에서는 민간 항공기는 운항하지 않는다고 했다.
LC, 우리 퍼스는 잊기로 하고 온 거잖아. 여기서 새로 시작하자.
바로 어제, 퍼스에서 카나본으로 '떠나자'라고 했을 때. '퍼스'를 잊기로, 모든 미련을 떨쳐내고 새로운 곳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농장보다는 '공장'에 가면 더 빨리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버리기는 힘들었고, 내 가슴은 공장을 원하고 있었다. 나는 프리맨틀의 윤조 형에게 전화했다.
"형, 저 돌소냐에서 면접 보러 오래요."
"이야~ 잘됐다. 당연히 가야지!"
"네 형, 가야죠. 근데 저 지금 카나본에 있어요."
"뭐? 카나본? 왜 거기 있어? 일이 또 왜 그렇게 되냐."
"농장일 알아보려고 오늘 여기 도착했는데, 하필이면 오늘 전화가 오네요. 형, 그래서 말인데요. 저 대신 형이 면접 좀 봐 주면 안돼요?"
"나도 니 마음 알겠는데, 에전에 나 거기서 일 한적 있어서 사람들이 다 알아. 그냥 전화해서 사실대로 말해. 카나본에 있다고 하고, 내일 간다고 해."
"아..네, 알았어요 형. 어쩔 수 없죠.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방법은 없었다. 비행기라도 있었으면 타고 갔으련만, 카나본에서 지금 출발하는 비행기도 없었고 버스도 없었다. 버스는 새벽 2시에 카나본을 출발해서 오후 4시에 도착하는 14시간걸리는 버스 한 대 뿐이었다. 오늘 밤에 떠난다 해도 도착하면 토요일 오후 4시였고, 공장까지 가면 토요일 오후 6시가 넘을 것이었다. 내일도 면접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장에 사실대로 말하고 면접을 늦춰 달라고 하는 것 뿐이었다. 공장에 전화를 했고, 나와 통화했던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 오후 1시에 면접을 보기로 한 LC인데, 사실 내가 지금 카나본에 있어서 1시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면접 가려고 비행기도 알아보고, 버스도 알아봤지만 오늘은 교통편이 없어서 갈 수가 없어요. 면접을 내일이나 월요일로 미루면 안 될까요?"
돌소냐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는 것을 강조하는 걸 잊지 않았다. 내 말을 들은 그녀가 말했다.
"무슨 뜻인지 잘 알겠다. 다시 전화를 할 테니 기다려라. 그때, Yes or No를 이야기하겠다".
초조했다. 그렇지만 한 숨 놓았다. 그녀가 내게 'Yes'를 말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는 그 순간만큼은 꿈을 믿고 싶었다. 꿈속에서, 교수님은 내게 나중에 발표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고, 나는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만약, 꿈이 예지몽이라면 나는 'Yes'라는 답을 들을 것이고, 면접도 잘 마칠 수 있을 것이었다.
마크 형과 기욱, 그리고 나. 우리 셋은 다시 농장 컨텍(contact)을 하러 갔다. 카나본에 온 이상, 이곳에 온 목적도 달성해야 했고, 마크 형과 기욱은 여전히 일자리가 필요한 상태였고, 나도 카나본에 머물러야 할 지도 몰랐다.
농장들을 돌아다니고 있는 중에 공장에서 전화가 왔고, "Yes"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내일 오라고 하면 어쩌나라는 걱정을 했는데(새벽 2시 버스를 타고 퍼스로 가도 오후 4시 도착), 다행히 월요일 오전 10시에 면접을 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농장에서는 내일부터 일을 하러 오라고 했다. 캐시 잡(cash job)으로 일을 시켜 준다고 했고, 우리가 원한다면 농장에 딸린 숙소(Accommodation)를 써도 좋다고 했다.
우리는 카나본 시내의 백팩커스로 돌아갔다. 농장일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더이상 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퍼스'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호주에 오기 전까지 여행과 호주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떠나야 할 여행.
여행, 돈, 시간, 사람, 정(情) 그리고 불확실성. 모든 걸 생각해야 했다.
"농장도 컨택 됐고, 우리랑 같이 여기 농장에서 일하자."
마크 형이 말했다. 기욱은 아무 말 없이 담배 연기만 뿜어냈다. 백팩커스 마당에 심어진 야자수 나무의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나는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퍼스로 돌아 갈게요."
"퍼스에 미련 다 버리고 왔으면 여기 같이 있자. 여기까지 와서 니가 이러면 배신이다."
마크 형이 말했다. 마크 형의 심정, 상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지금의 선택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나는 나의 상황-호주에 머물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 여행을 위한 돈이 필요하다는 것 등-을 설명했다.
'공장(시간+돈)'이냐 '사람'이냐 하는 갈등 속에서 나는 퍼스행을 택했다. 공장에서 일을 몇 시간 시켜 줄 지, 돈을 얼마 줄 지를 몰랐지만 공장에 가 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떠나지 않으면 그들을 평생 원망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퍼스로 향하는 버스 티켓을 끊었다.
앞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