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공장으로의 출근.

소소함을 넘어서는 즐거움

by LC

퍼스 근교의 수많은 공장들. 지원서를 쓸 수 있는 곳은 모조리 다 썼지만 내가 퍼스를 떠나는 그날까지 아무도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날 외면한 줄 알았다.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지원서를 쓴 공장들 중에서 제일 가고 싶어 했던 곳에서 연락이 왔고 나는 그곳으로 출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새로운 생활의 시작. 많은 걱정거리들과 불안함은 사라졌다. 지금부터 내가 생각해야 할 것은 '언제 호주를 떠나느냐'하는 것이다. 떠날 타이밍을 잡는 것. 그것 만이 유일한 걱정거리였다.




첫 출근, 오후 4시.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공장으로 향한 나는 리셉션의 직원에게 일을 하러 왔다고 했다. 어느 파트냐고 묻는 그녀에게 '키친(Kitchen)'이라고 말했고, 잠시 후 키친 파트의 슈퍼바이저(Supervisor)가 나를 데리러 왔다.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우락부락한 근육이 금방이라도 작업복을 찢어버릴 듯 한 남자. 그는 자신을 '미겔'이라고 소개했다.

그를 따라 들어간 작업장. 소시지를 만드는 공장이라서 그런지 내부는 냉장실과 냉동실로 구분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반팔티를 입고 왔던 나는 추위에 떨면서 일을 배워야 했다. 미겔은 오래전부터 키친 파트에서 일 하고 있던 한국인 '오지 형'에게 나를 인계했고, 나는 오지 형으로부터 일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지 형은 돌소냐에서 1년 넘게 일하고 있는, 그 누구보다 신뢰받고 있던 사람이었다.


오지 형은 나에게 하루에 12시간 정도는 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서 일거리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12시간은 기본이고, 가끔은 13~14시간도 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후반은 사람이 적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고, 여러 가지 일을 다 해야 하는 멀티 플레이어라서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하루에 12시간.. 주 5일이면 60시간인데, 그럼 일주일에 도대체 얼마를 번다는 거야?'

많이 버는 만큼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돌소냐에서 일하면서 받게 될 돈은 내가 상상하던 것 그 이상이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100만 원 이상(Net pay). 얼떨떨했다. 이 돈이면 내가 호주에서 하려던 모든 것 - 서핑과 스카이다이빙. 그리고 호주 여행 - 들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5시가 지나자 오전반 사람들은 썰물 빠지듯 공장을 빠져나갔다. 왁자지껄했던 작업장에 감도는 잠깐 동안의 적막. 본격적으로 오후반이 일을 할 때가 온 것이었다. 오전반 사람들이 마무리하지 못한 작업을 우리가 마무리해야 했고, 여러 종류의 소시지들을 오븐에 넣기도 하고, 더러는 끓는 물에 담갔으며, 햄과 소시지를 냉장고에 넣어 두는 일도 해야 했다. 일을 끝내고 나면 마지막으로 모든 작업장을 거품 청소하면서 하루의 일을 마무리 지었다.


부지런히 일했다.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을 하거나 처리해야 할 작업 분량이 많아도 군소리하지 않고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했다. 일을 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농장에서 일하던 것과 비교하면 힘들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시원한 실내에서 일한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호주의 강렬한 태양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공장의 동료들은 잘 모르는 듯했다. 종종 무거운 고깃덩어리들을 옮기기는 일을 할 때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투덜대기 일쑤였고(특히, 수단에서 온 '자바'), 나는 그런 그들의 말에 웃으며 맞장구를 쳐줄 뿐이었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을 할 때 날아드는 수 십, 수 백 마리의 파리 때문에 미칠 지경이라고 했지만 이곳은 식품 공장이라서 그런지 파리 한 마리 없는, 쾌적한 곳이었다.


※ 사진 설명 ※ 필라델피아 햄(위/왼쪽)과 필라델피아햄을 끓는 물에 삶는 모습(위/오른쪽). 허니큐어햄과 거대한 C.O.B(아래/왼쪽). 헝그리잭스 베이컨을 올려두는 트롤리(아래/오른쪽). 마당에 가득차 있는 트롤리가 없을 때 까지 싣고 오븐 속에 집어 넣었다.


한편으로는 공장의 일은 단순하고 지루했다. 야간 키친 파트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12명이었고 우리가 공장의 모든 일을 마무리를 해야 했다. 힘쓰는 단순한 일은 내 몫이었다. 매니저는 나에게 힘쓰는 일, 단순한 일을 많이 시켰다.

헝그리 잭스(Hungry Jack's/버거킹의 호주 프랜차이즈 이름)에 납품하는 베이컨의 비닐을 벗기고 트롤리에 차곡차곡 쌓아 스모크 하우스에 넣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은 지루함의 극치였는데, 나는 하루에 2000개가 넘는 베이컨의 비닐을 벗겨야 했다. 필라델피아 햄(사람 머리보다 커다란 햄 덩어리. 봉 하나에 3개가 달려 있다)이 매달린 봉을 들어 올려 끓는 물에 담그는 일 또한 내 몫이었다. 모두가 다른 할 일이 있다며 '필라델피아 햄'을 거부할 때면, 매니저는 나에게 와서 그것들을 끓는 물속에 넣으라고 했다(나는 이것을 '필라델피아 햄의 저주'라 불렀다).


※ 사진 설명 ※ 콩고에서 온 칸쿠(위/왼쪽), 독일에서 온 미치(위/중간), 수단에서 온 필립(위/오른쪽), 칸쿠의 동생인 콩고출신 자바(아래/왼쪽). 저녁 식사 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칸쿠, 자바, 필립(아래/오른쪽).


소시지 공장에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소시지, 필라델피아 햄, C.O.B, 트리플 스모크 햄(T.S.H), 허니 큐어 햄(Honey cure ham) 등 여러 소시지와 햄을 맛보면서 '햄과 소시지'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토록 맛있는 햄이 있다니! 독일산 수제 소시지와는 다른 세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주말을 좀 더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무엇보다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다는 것이 소소함을 넘어서는 즐거움이었다.


첫 주, 화요일부터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토요일 아침 통장에 찍힌 돈은 1100달러(AUD)가 넘었다(세금 Tax을 제외한 금액). 나는 계산해 보았다. 어느 정도 일을 더 하면 '여행을 하는 데 필요한 돈이 모일까. 비행기 표값을 포함해서, 남미와 미국까지 여행을 하는 데 필요한 돈이 6-7000달러(USD)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공장에서 받는 돈은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래, 딱 8주. 두 달만 하자. 그러면 서핑도 하고, 스카이다이빙도 할 수 있겠지. 여행을 하는 데 필요한 돈도 충분히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공장 일을 하며 받은 임금(주급). 여행 준비를 하느라 일을 적게 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1446달러를 벌었다(세금 포함).


앞 이야기

- 면접,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

- 나는 배신자인가.

- 두 개의 일자리가 생긴 하루.

- 꿈 이야기

- 더 멀리 북쪽으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면접 후, 새로운 일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