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하이웨이. 빌-링스-웨이.
다카하시 아유무. 작가이자 방랑자,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하는 사람. 그의 책 <러브 앤 프리(Love & Free)>를 읽었다. 여행을 하면서 종종 읽던 그 책의 첫 번째 파트 'Journey 1'에 실린 첫 번째 글. Weekly life. 호주에 관한 이야기였다. 처음엔 이 짧은 글의 내용이 선뜻 와 닿지 않았지만, 호주에서 그 의미를 알게 되었고 나 또한 그런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각지의 '싸구려 임대아파트'에 일주일씩 머물며 여행을 한다. 지구 상의 다양한 장소에서 '일주일 동안의 삶'을 맛본다. 마치 일주일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니는 기분. 온통 가득한 바다, 낡은 주차장, 이웃한 빌딩의 벽, 고층 빌딩가의 야경, 초록이 넘치는 공원. 창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경치가 일주일마다 바뀐다는 건 진짜 끝내준다! - 다카하시 아유무, <러브 앤 프리> 중 일부.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 후, 셰어 하우스(share house, 소위 '셰어')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백팩커스에서의 생활도 큰 불편함은 없었지만, 프리맨틀 시내에서 공장까지의 출퇴근 문제와 비용적인 측면, 그리고 프라이버시 문제를 생각하면 셰어가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셰어 하우스를 구하고 나면 왠지 내가 상상하던 호주에서의 삶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바닷가에 접해있는 작은 도시 프리맨틀은 내가 생각하던 이상향에 가까운 곳이었다.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는 바다에 나가 서핑을 하거나 해수욕을 즐기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다이빙과 스노클링을 하면서 주말을 여유롭게 보내는 것. 이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프리맨틀(Fremantle). 퍼스에서 전철을 타고 불과 30분이 채 걸리지 않지만, 퍼스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작은 도시이다. 조용하고 차분함이 느껴지는 거리. 멋진 해안선에 넘실대는 인도양(Indian ocean)의 푸른 파도. 상큼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기분 좋은 도시. 이제는 이 멋진 곳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면 아드레날린이 마구 솟구쳤다.
퍼스의 도서관에 들러 렌트 광고도 찾아보고, 인터넷 사이트 '검트리(perth.gumtree.com.au)'에서 셰어하우스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면서 발품을 팔았다. 영어 실력도 늘릴 겸 한국인이 운영하는 셰어 보다는 호주 사람이 운영하는 방을 알아볼 요량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렸지만 방을 구하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방을 못 구한다고 해서 마냥 백팩커스에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프리맨틀의 백팩커스는 퍼스보다 비쌌다).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퍼참/퍼스 참을 수 없는 그리움)를 뒤적이기 시작했고, 공장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셰어 하우스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집 주인과 통화한 후, 그곳으로 향했다.
교외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단층 주택이었다. 싱글룸, 방 한 칸. 더블 침대 하나와 책상, 옷장이 놓인 방은 나 혼자 쓰기엔 충분히 넓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앞마당으로 통하는 통유리 문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전형적인 호주 주택가에 위치한 깨끗한 집이었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주당 125달러. 나는 맥시멈으로 주당 100달러 정도 하는 방을 알아볼 생각이었기에 예상보다 비싼 가격 때문에 조금은 망설이게 되었다. 무료로 머문 적도 있고, 청소부가 딸린 레지던스 호텔급 농장 숙소도 5달러를 주고 머물렀던 '농장 시절'이 잠시 떠올랐지만 그곳과 비교 우위를 논할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 하룻밤에 25달러인 백팩커스 도미토리에 비하면 싼 편이라는 생각에 "알겠어요. 여기서 살게요"라고 말했다.
집 앞에는 작은 정원이 있고, 뒤쪽 마당 잔디밭에는 나무와 화초가 자라고 있었으며 뒷마당 한쪽에는 작은 풀장이 있는 집. 외국의 TV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서양식 주택이었다.
좀 비싸긴 해도 하루 한 시간만 일하면 하루 방값은 빠지는데, '언제 한 번 이런 집에서 살아보겠나'라는 생각으로 상황을 합리화했다. 무엇보다도 큰 짐을 하나 덜었다는 생각에 속이 후련했다.
호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셰어 하우스였다. 리치 하이웨이(Leach Hwy)라는 큰 길가에 접해 있는 주택가. 내가 살게 될 집은 '빌링스 웨이(Billings Way)'에 위치한 집이었다.
주소의 어감이 좋았다. 리치 - 하이웨이. 부자(로 가는) 고속도로. 에 있는, 빌링-s-웨이. 지폐(가 마구 생겨나는) 길. 이곳에 살면 공장에서 돈도 많이 벌고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게 만족스러운, 그런 하루였다.
앞 이야기.